암컷이 만드는 난자는 수컷이 만드는 정자에 비해 훨씬 크다. 이런 점 때문에 암컷이 임신을 하도록 진화할 가능성이 큰 듯하다.

 

포유류의 경우 암컷이 임신과 수유를 한다. 따라서 통상적으로 암컷이 부모 투자(parental investment)를 더 많이 하게 마련이다. 즉 암컷이 수컷에 비해 자식을 위해 생리적으로, 행동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암컷의 자식 투자가 더 크기 때문에 암컷들 사이의 번식 성공 변이에 비해 수컷들 사이의 번식 성공 변이가 더 크게 마련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한 마리의 수컷이 수백 마리의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자식을 전혀 못 보는 수컷들도 많이 생긴다. 반면 암컷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큰 편차가 생기지 않는다.

 

지위는 번식 성공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수컷들 사이의 번식 성공 변이가 더 크기 때문에 지위는 수컷에게 더 중요하다. 하렘 체제를 유지하는 종의 경우 으뜸 수컷(alpha male)이 되느냐 여부에 엄청난 것이 걸려 있다. 반면 암컷들은 지위가 높아진다고 해도 수컷만큼 큰 이득을 보기 힘들다. 물론 일부일처제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암수 차이가 줄어든다.

 

인간 아기의 경우 울음의 기능은 뻔하다. 그것은 부모에게 도움을 구하는 신호다. 어린이의 경우에도 울음이 이런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도움을 구하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즉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능력을 남들에게 드러내는 것은 서열 경쟁에서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서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울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서열 경쟁은 남자에게 더 중요하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에 비해 울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크다.

 

이것이 남자가 울지 말아야 할 진화론적 이유에 대한 하나의 가설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것은 내가 생각해낸 가설이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라면 누구나 쉽게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설이다. 그리고 나는 아래 논문도 읽어 보지 않았으며 이 문제에 대해 진화 심리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했는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EVOLUTION OF GENDER DIFFERENCES IN ADULT CRYING

by CARRIE J. LANE

https://dspace.uta.edu/bitstream/handle/10106/535/umi-uta-1460.pdf?sequence=1

 

남자가 울지 말아야 할 진화론적 이유가 여자에 비해 더 크다면 남자는 대체로 여자에 비해 덜 울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잘 우는 남자는 “여자 같다”고 생각되거나 불리게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또한 “여자 같이 잘 우는 남자”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서 경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잘 우는 남자는 만만한 남자다. 여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잘 우는 남자 즉 쉽게 자신의 무능력을 노출하는 남자는 배우자 감으로서 자격 미달인 남자다.

 

만약 모든 문화권에서 남자가 여자에 비해 잘 울지 않는다면 내가 제시한 가설과 부합한다. 만약 모든 문화권에서 잘 우는 남자가 여자 같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제시한 가설과 부합한다. 만약 모든 문화권에서 잘 우는 남자가 경멸 당한다면 내가 제시한 가설과 부합한다.

 

“계집애 같다”, “사내답지 못하다”, sissy”, “wuss” 등의 말이 조롱하는 말인 이유 중 하나가 울음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성주의(feminism) 이론가들 중에는 “여자의 지위가 낮기 때문에 여자 같다는 말이 조롱하는 말이 되었다”는 가설을 제시하는 이가 있을 것 같다. 이 가설이 옳다면 여자의 지위가 높을수록 여자 같다는 말은 조롱하는 말이 되기 힘들 것이다.

 

반면 내가 제시한 가설이 옳다면 여자의 지위와 여자 같다는 말은 별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든 매우 불평등한 사회든 여자는 무능력한 남자를 싫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덕하

2012-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