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올린 글이라 반말입니다. 그리고 망한글이고요.[...]

그래도 한번 읽어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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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주자격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를 읽었다.
이 책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내용을 일반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책이라 할 수 있다.

읽기 전에는 상당히 병신력[...]이 충만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고보니 그렇게까지 병신같은[...] 책은 아니었다.
다만, 어떤 관점에 사실을 끼워맞추려는 시도랄까, 비약 같은 게 좀 느껴지기는 했지만..
이 책의 내용을 모두 다 평가하기는 내 수준상 조금 힘들 것 같고,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1. 민족주의 비판

이영훈 교수는 우리의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조선시대에만 해도 없었으며,
식민지시기를 거치면서 발견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 예로 조선시대에만 해도 민족이란 말이 없었으며,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으로 신성시한 것도 최남선이 최초였다...고 이야기한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민족주의에 비판받을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족주의가 식민지시기에 '발견'된 이유는 무엇일까?
독립운동을 위해 필요했던 측면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민족 단위로 차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임금 차별이라든가, 조선인에게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은 점 등...
그밖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은 민족주의 자체가 근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만큼,
민족주의가 '발견'된 것은 이영훈 교수가 말하는 식민지적 근대화의 필연적 결과가 아닐까?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을 들으면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말이 항상 연상되는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이 애초에 발명된 것이라 할지라도 만들어진 후에는
나름대로의 실체를 가지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것을 깨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책이나 박상훈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니
함부로 단언할 순 없지만, 만들어진 개념이니까 무조건 깨야 한다는 건
전혀 대안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것 아닌가?

조금 다른 이야기로 샜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식민지시기의 민족주의가 나타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으며,
그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민족주의를 비판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민족주의 역시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영훈 교수 역시 대안이 되기엔 한참 부족해보인다. 
(왜 부족한지는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2. '식민지근대화론'

일단, '식민지근대화론' 자체가 정치적으로 왜곡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라이트들은 어떤지 몰라도, 최소한 이영훈 교수는
간단하게 일제의 식민 지배를 미화시키지는 않는다.

'식민지근대화론'이란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일제의 목적은 '영구병합'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수탈을 자행해 민심을 잃는 것보다는
조선을 일본화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조선에 일본의 법과 제도 등을 이식하여
근대화시키려했다는 것이다.
이영훈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의 토지와 자원과 공업시설은 점점 일본인의 소유가 되지요.
바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식민지적 수탈이지요.
빼앗아 간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하여
한반도의 자원과 공업시설을 일본인의 소유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동화정책에 따른 실질적인 수탈의 무서운 결과를 보게 됩니다.
이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근대화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일제의 조선 지배를 미화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수탈과 차별이 어떠한 매커니즘을 통해 벌어졌는지를
제대로 보자는 것이 식민지근대화론이지요.
문자 그대로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진 근대화였습니다.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94p 중에서


이영훈 교수의 주장이 fact에 근거했다는 전제 하에서,
그의 '식민지수탈론' 비판은 상당히 타당해보인다.
신용하 교수의 주장도 실증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고...

그리고 그의 '식민지근대화론'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질적 변화이다.
식민지 시기에 단순히 경제적 성장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떤 질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조선사회의 사람들이 바뀌고,
사회와 경제의 구조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수긍할만한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3. '자유'와 서유럽적 가치, 그리고 성리학적 세계관

이영훈 교수는 인간의 본성인 '자유'를 침해했다는 측면에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유'라는 가치는 성리학적 세계관에서는 생겨나기 힘들고,
서유럽에서 이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이영훈 교수는 지나치게 서양 중심적인,
그리고 성리학을 비하하는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뒤에서는 근본주의적인 면이 강한 성리학의 전통 때문에
해방 후에 사회주의를 폭넓게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싶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약간의 병신력이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사회주의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경제학에 뿌리를 두겠지만,
상당히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 거대이론인만큼
그렇게 단선적으로 해석이 안 될까 의심스럽다.

그렇게 말하면 성리학은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바탕으로 하는만큼,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안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주의나 성리학에도 다양한 측면이 있는데,
그런 걸 무시하고 근본주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둘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허접해보이는 추론을 하는 것은
다소 무리로 보인다.


4. 친일파 

이영훈 교수는 조관자 교수의 논문을 빌려
이광수를 비롯한 일련의 친일파들의 심리를 파악하려 한다.

조관자 교수에 따르면 이광수는 '그러한 야만의 조선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일본인처럼 깨끗하고 질서 있고 용감하며 협동하는 문명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길이야말로 조선 민족이 재생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이광수는 조선 '민족'을 위해서 친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는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대다수의 지식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
뭐, 동의할 수는 있는데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영훈 교수는 그렇게 역사의 주체는 개인이며,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 말하는데
이광수의 연설을 듣고 태평양 전쟁이라는 명분 없는 전쟁에 나가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이 아닌가?

이광수가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일파들은 결국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함으로써
조선 민족들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시스템에 도움을 줬다.
조관자 교수의 말이 옳다고 해도 이광수는 확신범 이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친일파들의 멘탈리티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저러한 심리가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리고 최정희의 <야국초>를 통해서 협력과 저항의 애매모호함을 이야기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병신같은 소리였다.[...]
최정희의 <야국초>는 1942년 어느 조선인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일본군 지원병 훈련소를 방문하여 견학시키면서
아들이 나이가 차면 일본군으로 보낼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최경희 교수는 그 이면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그 어머니는 간호부라는 직업을 가진 신여성으로서
사회적 지위가 있는 어느 조선인 유부남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만,
아기를 임신하자 남자는 배신하고 맙니다.
어머니는 낙태의 유혹을 이기고 아들을 사생아로 낳지요.
어머니가 그 아들을 일본군에 보내려고 하는 것은
그 아들을 비열하고 무책임한 조선의 사생아가 아니라
정직하고 책임 있는 제국의 아들로 바치고자 하는 뜻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배신한 조선의 남자에게 복수하는 겁니다.
결국, 이 소설은 단순한 친일 선전문학이 아니라
남성과 제국의 횡포에 속절없이 순응하며 희생할 수밖에 없는
식ㄱ민지 여성의 절망과 죽음을, 나아가 작가 최정희 자신의 정신적 죽음을 그린 것입니다.
제가 전율을 느낀 것은 최경희 교수의 섬세한 분석이 이 대목에 미칠 때였습니다.
다시 말해 협력은 절망이고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항이 아닙니까.

                                                                     -이영훈, <대한민국 이야기> 106p 중에서

이 부분을 보면서 든 생각은...'당연히 아니지 -_-;'랄까.
뭐, 다 나름대로의 사정이란 건 있는 법이니까 이해야 할 수 있지만...
조선인 유부남 한 명이 배신했다고 조선이란 국가 자체가
비열하고 무책임한 국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갑자기 일본이 정직하고 책임 있는 제국이 될 수도 없고...
그리고 협력이 절망이고 죽음이었다고 저항이 되나?
그럼 일제 밀정으로 활약하다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죽은 김달하 같은 사람들은
무슨 전설의 투사 쯤 되는 건가?  

협력과 저항이 칼로 자르듯 단순하게 구별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따위 예를 들면서 협력과 저항이 애매모호하다니..

개인적으로는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였던 배정자를 생각하면
약간 씁쓸하기도 하고, 역사라는 게 복잡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친일파들이 선택한 방식은
결국 조선인들을 억압하는 시스템에 가담하다는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읽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을 생각하면,
이영훈 교수야말로 친일청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보다도
협력과 저항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고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미 군정

간단하게 이야기하겠다.
이영훈 교수에 따르면 미군정은 노동운동을 결코 무조건적으로 탄압하지 않았으며,
'노동운동으로부터 정치세력을 분리하여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진정한 대표기구로 만들려고 했'지만,
'미군정의 그러한 시도는 전평이 극좌노선의 불법적인 투쟁을 감행함에 따라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질문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노동운동이라는 게 전평을 비롯한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요구일까?
더구나 해방 직후의 공간은, 이영훈 교수 자신도 인용했듯이
'소용돌이의 정치'라 할만한 것이 아니었던가?
소용돌이와 같은 영향력을 가진 중앙정치에 무관심한 상태로,
노동운동이 비정치적일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좀 납득하기 힘들다.
그리고 9월 총파업 같은 것도 경찰의 과잉진압이 계기가 되어서
그렇게 거대한 시위가 되지 않았던가?
그런 점을 생각하면 별로 동의는 가지 않는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정리해야 될 이야기가 많지만
역량의 부족과 귀찮음[...]을 느끼며 여기서 접는다.
기회가 되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읽고
나름대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다.

나는 역사에 밀착해서 살아왔다. 역사는 목동의 피리소리에 맞추서 춤추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싸움하는 소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