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이 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남의 자식들과 경쟁하고, 더 편하고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겠지요.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후손을 남기는 것이 삶의 목적인 모든 생명체들의 공통속성이기도 할겁니다. 이런 본능은 인간들로 하여금 상속이라는 제도를 만들도록 하였고, 본능에서 유래한 이 제도는 인간 사회가 아무리 현대화되고 문명화되어도 끄떡없이 유지되고 있지요.  

북한의 3대 세습이라든가 남한에서 재벌들이 3세 4세를 이어가며 극성을 떨고 있는 것도 결국 그런 생물학적 본능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인간이 이룩한 사회라는게 아무리 고상을 떨어봐야 별 볼 일 없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따지고보면 사교육열풍이라는 것도 그런 동물적 본성이 매우 적나라하게 반영된 사회 현상일테구요. 

근대적 민주주의의 등장 이후 정치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가 분리되었고, 정치적 지위를 자식에게 상속시키려는 시도는 많은 나라에서 금지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지위의 상속은 상속세등의 강력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라 봐약겠죠. 그 중 한국은 유별나게 경제적 지위를 상속시키기 위한 노력이 매우 강력한 나라일겁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자신의 동물적 본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였던 편법 상속 문제로 나라 전체가 얼마나 큰 홍역을 치렀는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상속이라는 개념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자식들이 상속권을 놓고 다툰다는 바이블의 아브라함 이야기나 순임금과 우왕의 고사만 봐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시대 훨씬 이전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죠. 동양의 오래된 전통인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은나라때부터 이미 존재했고, 그것은 상속을 정당화하기 위해 도입된 장치라는게 역사학계의 정설입니다. 수천년전 은나라 때 의 제사 풍속이 면면히 살아남아서 오늘날 한국인들의 당연한 일상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역사라는게 참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상속개념을 사회시스템으로 구현한 것이 바로 봉건제도이겠죠.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한 지배시스템을 상속과 결합시켜 체계화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주나라는 왕 제후 대부 사(士)라는 계급으로 나누어 지배층을 체계화하고, 이들은 모두 왕의 혈족들이었습니다. 장남이 왕권을 상속받고 차남들은 제후가 되고, 마찬가지로 장남이 제후권을 상속받고 차남들은 대부가 되고, 이런 과정을 거쳐 말단 지배계급인 사(士)까지를 왕의 방계 혈족들로 구성하는 복잡한 상속시스템이 바로 주나라의 종법제도이죠. 그렇게 왕의 혈족들이 주나라의 모든 정치경제적인 지배권을 장악했고, 그 아래에서 수탈당하던 하층 계급들을 민(民)이라고 불렀습니다. 은나라에서 받아들인 제사 풍속과 주나라의 종법 제도를 섞어 유교이데올로기로 체계화한 사람이 그 유명한 공자이고, 공자가 즐겨 쓰던 군자(君子, 왕의 아들)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주나라의 종법제도를 알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거겠죠. 

그런데 기가 막히는 것은 3000년전의 그런 말도 안되는 주나라의 종법시스템이 바야흐로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고스란히 재현될 기세라는 거겠죠. 차이점은 왕이 혈족들에게 나누어주는 분봉의 대상이 비옥한 곡창지대에서 기업으로 바뀌었다는 것이고, 과거처럼 거추장스럽게 왕이나 귀족같은 정치적 지위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뿐입니다. 봉건제도의 궁극적 목적이 정치적 권력이 아니라 경제적 지배권의 상속이라면, 왕의 혈족들이 지배하던 주나라와 재벌의 혈족들이 지배하는 현재의 대한민국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점도 없습니다. 

혈족들이 대규모 기업집단을 소수의 지분만으로 사적으로 지배하고, 새로운 혈족이 태어나 장성하면 기업하나 만들어주고 전력투구로 밀어주고, 그렇게 시장의 승리자로 만들어주는 관행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재벌가 딸들이 커피와 제빵시장을 장악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죠. 코스피나 코스닥 상장 기업들을 보세요. 유명한 알짜 기업들은 모두 특정 가문의 혈족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유한 유전자가 기업 경영의 최적화에 맞춰 진화된 것도 아닐텐데,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기업은 현대국가에서 생산력의 핵심이고,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매우 중요한 조직입니다. 국가구성원 대부분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런 중요한 조직을 지배하고 경영할 사람들이 그저 어떤 부부의 잠자리에서 우연하게 생성된 유전자 조합으로 결정된다니 말이 되는겁니까?  그런 봉건적이고 원시적인 경제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이, 북한의 3대 세습을 무슨 자격으로 손가락질하며 고상떨 수 있는건지 한번 물어보고 싶어지죠. 주제 파악 좀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부모의 재산을 자식이 상속받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본능에 반하는 것이고, 소유 재산의 상속을 막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죠. 그러나 기업의 지배권은 절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며, 더더구나 그것을 자기들 맘대로 상속까지 하는 것은 봉건국가에서나 가능할까 말이 안되는거죠. 소수의 지분으로 자기 회사인것처럼 사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데, 그것을 상속까지 시켜주는 것을 국민 모두가 두눈 멀거니 뜨고 지켜보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습니다. 솔직히 주나라의 무지몽매한 농민들보다 더 한심한 국민들이에요. 주나라 민초들은 못살겠다고 반란이라도 일으켰지, 이게 당체 뭐하고 있는건지.

저는 그래서 정부와 유력 정당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정부 지분이 대주주보다 많은 기업들은 즉시 지배권을 접수하라. 경영권이 힘들면 이사회 의장이라도 좋다.
2.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정부가 나서서 소액 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지배권을 접수하라. 필요하다면 법 만들어라.
3. 그 중 경영 능력이 검증된 재벌 혈족들은 경영권을 보장해주되, 공적인 감시와 지배권에 굴복시켜라.

저는 이것을 주장하고 그 과업을 완수할 싹수가 보이는 정당이라면, 지지는 물론 얼마 안돼지만 제 전재산을 기부할 용의도 있습니다. 한번뿐인 인생을 봉건국가의 국민으로 사는 거 솔직히 쪽팔리는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관장사에 낙동강 벨트가 가장 중요하다는 작자들, 애국가 부르는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작자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 참 고역입니다.  

사족 - 글쓰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어투가 과격해졌는데, 제가 원래 좀 그렇습니다. 양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