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에서 대기자를 지낸 엄광석씨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양반은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열린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당시 대통령 후보로 나선 '7룡'의 인터뷰를 했으며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노무현 대통령 후보 토론 진행을 맡았습니다. 이 양반이 2003년 12월 출판한 '<2002 대선 음모>(청어출판사)'라는 책에 보면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는 노무현이 먼저 제안했다고 합니다.

아래의 글은 '미디어투데이'의  이수가 기자가 상기에 언급한 책을 보고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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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동기 제공

대선을 48일 앞둔 2002년 11월 2일. 하루 전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34%, 정몽준 22.6%, 노무현 19% 지지율을 기록했고 당 안팎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여론이 부상했으나 노 후보측은 이에 부정적이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날 조선일보가 4면 박스로 <민주 "노·정 단일화" 압력 확산>이라는 4단 기사와 <노·정 신경전>이라는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를 본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선기획단장은 아차 싶었다고 한다.


"당시 민주당은 노무현 사수대와 후단협으로 갈라져 극심한 갈등을 보이고 있을 때였다. 노무현 사수파는 끝까지 밀고 나가면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5년 후가 보장된다는 생각으로 신당까지 추진하자는 입장이었지만, 단일화가 안되면 필패라는 후단협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었을 때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조선일보가 이렇게 치고 나온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 조선일보가 이제 앞으로 1주일간 노 후보에게 계속 단일화로 압박하고, 다시 1주일간은 단일화 거부라는 명목으로 노 후보를 공격하는 전술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선거는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노 후보를 만나 '차라리 잘 됐다. 이참에 조선일보의 전술을 뒤집어엎자. 조선일보를 엎어치는 것은 우리가 먼저 단일화를 제의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노 후보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고 하더니 저녁 때 선대위 회의를 열어 단일화 제의를 전격 제의했다."


이해찬 의원의 '조선일보 전술' 해석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현실적으로 동의하기는 힘들다. 조선일보가 그런 의도를 갖고 기사화했다는 점도 그래서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 기사가 단일화의 동기를 제공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민주당 선대위가 조선일보의 보도에 자극 받아 후보단일화 제의를 먼저 하게 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객관적 상황에도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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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097 에서 발췌


이를 뒷받침해주는 또 다른 기사가 있습니다. 바로 그 책의 저자 엄광석씨가 일요서울에 기고한 당시 후단협 진영의 주장들을 기사화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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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됐지만 노풍이 꺼지면서 3등으로 밀려났습니다. 당시 후단협은 오로지 정권 재창출만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일화밖에 길이 없다고 보고 정몽준을 꼬신 겁니다. 처음엔 경선을 하자고 했는데, 노 후보가 ‘야당을 할 깝세 경선은 않겠다’고 거부했습니다. 사실 경선을 했어도 노 후보가 이겼습니다. 저쪽(정몽준 측)은 돈은 있을지 몰라도 조직이 없어 안 됩니다. 그런데 노 후보가 자신이 없으니까 거부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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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511에서 발췌



후단협 인사의 '사실 경선을 했어도 노 후보가 이겼다'라는 (비록 예상이지만) 사실을 노무현은 몰랐을까요? 정치도박중독자라는 비야냥을 들을 정도로 정치도박의 필수요건인 정치 판세를  정확히 읽어냈던 그 노무현이 말입니다.



DJ의 발언을 빌면 노무현은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이길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이기는 것 그 이상을 후단협 논란에서 얻어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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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광주 경선 후 조순용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경선 결과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갖고 DJ 앞에 섰다. 조순용은 노무현이 광주에서 이긴 원인을 첫째, 둘째, 셋째하며 정리한 자료를 차례로 읽어 내려갔다. 그 때 DJ가 말했다. '이 사람아, 노무현이 이긴 건 조선일보와 싸워서 일등을 한 거야.' 유종필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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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511에서 발췌



저는 먼저번에도 언급했지만 노무현을 혐오함에도 불구하고 분당 그 자체는 찬성을 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근거입니다.


대선 전부터 분당 음모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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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12월 19일이었으니까 선거를 일주일 남겨놓고 한 협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추미애 의원 등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정권을 잡으면 정당까지 다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새로 개혁을 해야 한다. 당이 새로워져야 한다. 아무개는 골라내고, 누구는 새로 빼고, 앞으로 문성근, 유시민 이런 사람들과 정당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정몽준은 뭐냐, 그 사람은 잘 모르겠다. 새로 당을 만들면 정몽준은 그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 김행(당시 국민통합 21 대변인)의 말과도 일치한다.후단협 지도부의 한 사람이었던 유용태 원내총무는 직격탄을 날린다.“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후단협 멤버들을 원수로 생각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어떻게 해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까? 단일화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단일화가 누구 때문에 됐습니까? 후단협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후단협에 감사해야 합니다. 노 대통령은 편협하고 편 가르기에만 능한 사람입니다. 노 대통령은 배신자입니다.”그러면서 단일화 과정을 설명한다.

<중략>

이낙연 의원의 증언이다.“후단협이 노 후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대통령 감이 아니라는 둥,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언동을 했습니다. 특히 후단협의 몇몇 분들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 걸 당하면 누구나 견디기 힘듭니다. 단일화 이후에는 열심히 했다는 말일 텐데, 그래서 자기들도 공헌했다는 건데, 단일화 전까지는 모멸적인 언사를 쓰고 다닌 게 사실입니다.”자, 이 정도면 이제 둘은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갈라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하려고만 마음먹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던 분당(창당)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중략>

이해찬 의원의 증언은 더 솔직하다.“당시 민주당 최고지도부는 박상천, 정균환, 한화갑, 정대철씨 등이었는데 정대철 의원만 빼고 나머지 모두 노 후보 흔들기에 가담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들 지도부는 당내에서도 지탄을 받았습니다. 그런 지도부는 대통령과 협조도 안 되고 당정 협의도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 지도부를 갖고는 당을 이끌어 나갈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건은 이제 충분히 성숙되었는데 왜 그때 리모델링이나 탈당, 또는 분당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천정배 의원이 답한다.“그때 노 당선자는 1박 2일로 제주도에 갔는데, 21일 두 번 통화하면서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노 당선자가 ‘그런 흐름을 막을 수도 없지만, 그렇게 되는 사태를 원치도 않는다’면서 만류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프로세스, 즉 과정을 중시하는 분입니다.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는 당위성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그때 솔직히 말해, 대장(두목)이 그러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지, 분당(탈당)을 했어야 했습니다. 당시는 승리의 힘으로 충분히 정치적인 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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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511에서 발췌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