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로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

 1. 이정희가 조준호 조사 보고서를 읽고서 기자들 앞에서 강경하고 단호한 어조로 내뱉은 첫마디는 암만 생각해도 매우 골때리는 것이며 이 웃지못할 현재 진행형의 희소극의 시작점이 되기 때문에 한 번 더 반추해 볼 가치가 있다. 나는 티브이를 보지 않았으므로 언론에서 보고 들은 바를 토대로 대략적인 워딩을 옮겨 오기로 한다. "조준호 조사위는 해당 당사자에게 어떤 소명과 해명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으므로 무고한 사람들을 유죄로 만든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이 유죄를 단정할 수는 없는데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았으니 이 보고서는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모는, 한 마디로 그 자체로 모종의 악의에 의해 작성된 부실한 보고서이다. 조준호 리포트의 신빙성 자체가 의심스러우며 그런 고로 리포트 자체를 다시 검증해야 한다" 
 
 나는 조준호가 어떤 내부 협의 과정을 거쳐서 경선 부정과 부실 여부를 판독하는 검사관에 임명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먼저 짚고 넘어가할 것은 이정희는 여기서 리포트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지 적어도 조준호의 검사관 자격을 문제 삼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말에서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조준호에게는 검사 시작 단계에서는 선거부정 여부를 검사할 권위가 당권/비당권파의 갈등 구조 하에서도 큰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부여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봐도 조준호가 통진당 최대 주주인 민주 노총의 전 위원장 출신이라는 점, 유심노 와는 달리 출신 당색 자체가 옅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능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편은 아니지만 상대편도 아니'라는 점에서,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당권파 측에서도 조준호를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사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준호는 당권파의 기대를 무참히 뒤집는다. 사실 생판 그 쪽 바닥을 모르는 백면 서생인 나 역시도 조금 놀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객관적인 조사 임무를 맡은 검사관 자격이라고 해도 제 집 사정의 치부를 공중 앞에 무자비하게 까발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 집 허물은 조금이라도 덮어줄 여지가 있다 싶으면 덮어주고 가려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데 조준호는 그러지 않았다. 조준호 발표가 '총체적 부실 선거'라는 화끈한 레토릭으로 단호하게 정리되어 나올 줄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물론 조준호가 원래 포청천 같은 사람이라서 추호의 타협의 여지 없이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 선거 부실의 규모 자체가 원채 스스로도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라서 인지상정을 발휘해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겠지만. 


 3. 처음 제기되는 문제는 조준호가 원래 맡은 조사의 성격이 무엇이었나 하는 것이다. 뭉뚱 그려 거칠게 말하자면 '비례 대표 선거의 부정과 부실 여부를 일체의 숨김 없이 조사하라.' 아마도 이런 종류의 것이었으리라. 그렇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얼핏 보면 비슷해 보여도, 선거의 부실 여부를 조사하는 것과 선거의 부정을 조사하는 것은 매우 다른 성격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초등학교 반장 선거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선거의 부실 여부를 조사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무효표를 유효표로 잘못 계산했거나, 역으로 유효표를 무효표로 잘못 처리했는지가 가장 큰 목표가 된다. 이것은 투표함을 다시 열고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조사해 보면 되는 것이며, 그 결과도 쉽게 판독이 된다. 따라서 선거 부실 조사는 상당히 테크니컬한 성격을 띄게 된다. 반면 선거 부정의 조사는 그렇지 않다. 유효처리된 무효표가 무더기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집계원의 단순 실수인지 아니면 어떤 정치 세력의 사주를 받은 고의적인 조작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집계원이나 검표원에 관한 어느 정도의 강제 조사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선거 부정의 조사는 그러므로 테크니컬한 조사가 아니라 인적 조사의 성격을 강하게 띄며, 이런 조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실 조사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권한이 필요하게 됨은 당연 지사라고 볼 수 있다. 


 4. 조준호가 조사를 며칠간 수행 했나?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이정희가 기자회견에서 요구하는 정도의 부정에 관한 조사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얼핏 생각해 봐도 조준호에게 그가 실제로 수행한 조사 기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강도 높은 조사권이 부여 되었어야만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준호의 조사는 개연적인 추측이지만, 애초부터 부정보다는 선거의 부실 관리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판독하는 것에 집중되었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조준호의 발표 어디를 봐도, 그 동안의 유/심의 레토릭 어디를 봐도 당권파 누구를 구체적으로 지칭해서 부정 선거의 당사자는 당권파다는 식의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부정 선거의 주범이 당권파라는 주장은 언론이 만들어 낸 프레임이지, 유/심/조준호 세 사람의 레토릭 속에 들어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일관적으로 주장했던 것은 "부정 선거의 책임이 당권파 니네들 한테 있으니까 당권파 니네들 비례 대표 후보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가 아니라, 비례 대표 당선인들의 부실 연루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이미 선거 결과가 신뢰성을 상실했으므로 그에 따라 그 선거의 영향을 받은 모든 경쟁적 비례대표 명부자들이 정치적 연대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4-1. 이 두 책임, 즉 부정 선거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부실 선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의 성격이 원래부터 다르다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태의 본질로 다가가는 출발점이 된다. 잠시 화제를 돌려 94 성수 대교 붕괴 사고로 시선을 돌려보자. 성수 대교가 갑자기 동강이 나면서 부분이 완전히 꺼져 버렸다: 통학 시간 여고생들을 가득 채운 버스가 추락했고 인생을 펴보지도 못한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이 사망했다: 사태의 최종적인 책임 소재는 누구에게 있는가? 사태의 책임은 어떤 식으로 물어져야 하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발생한 행위가 '누구' '' 인지를 가리는 것이다. 그리고 '' 가린다는 것은 사건 단순히 자연의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 인재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보면 '' 분명히 존재하지만 '누구' 선뜻 지정하기가 까다로운 경우가 발생한다. 성수 대교 사건이 그렇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 하나? 성수 대교 붕괴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많은 다양한 답변이 가능하다: 설계 자체에서 구조적인 결함이 있었을 수도 있고, 시공 과정에서 시공사가 설계도 대로 건설하지 않거나, 혹은 원래 예정된 건축재 대신 단가가 낮은 싸구려 부실 건축재를 썼거나, 혹은 완공 이후 시설 유지 보수를 소홀히 했다거나 혹은 감독 관청이 감독 책임을 소홀히 했을 수도 있다. 시공사와 감독 관청간의 이권적 유착 관계가 다른 원인을 제공했을 수도 있고, 이런 유착 관계를 잡아 내는 못한 검찰에도 책임을 물을 여지는 분명히 있다. 요컨대 성수 대교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설계 시공 유지 보수 감독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에 이르기 까지 사고에 관여한 무수히 많은 에이젼트들이 있고, 에이젼트들간에 존재하는 모럴 해저드, 유착 관계 기술적 무지, 탐욕 등등이 성수 대교 붕괴의 커다란 인과 관계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성수 대교 붕괴 사건의 경우에 모든 에이전트들의 귀책- 과실과 직무 태만 고의성 여부 등등 - 구체적으로 따져서 각각의 에이젠트에 따라 그에 맞는 '탓의 ' 책정하는 것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있다. 모든 과실과 실수, 고의의 태만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잠시 주의를 환기해 보자. 보통 근대법 체계의 책임 원칙은 귀책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귀책 개념은 어떤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타인에게 해악을 가하였다는 사실+ 행위가 행위자의 과실 혹은 고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성수대교 사건의 경우처럼 사건에 무수히 많은 에이젼트가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을 통해 조금씩 행위에 관한 책임을 분유해 왔다면 전통적 책임 개념 원칙에 따라서는 적절한 책임 분배를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는 있다

위험 책임 개념이 바로 자리에 대안으로 등장한다. 위험 책임이란 행위의 결과로부터 원인을 제공한 주체로 소급해 들어가는 전통적인 책임 구조가 이런 사건의 경우에 치명적인 한계점에 봉착한다고 보고, 발상을 전환하여 발생 가능한 위험에 대한 책임의 주체를 미리 규정해 두고, 위험이 현실화 되었을 경우에 주체의 과실 유무와는 상관 없이 연대하여 각 주체들이 일정한 연대 책임을 지게 한다 원칙이다.위험 책임의 원칙 성수 대교 사건에 빗대어 적용해 보자면,  건설 단계에서부터 이미 행위자들에게 귀책 여부에 상관 없이 일정 정도의 책임을 연대해서 지게 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사태의 소재를 정확히 구분해서 가릴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앞으로 비슷한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4-2. 성수 대교의 붕괴 사고와 이번 통진당 선거 부정/부실 사건은 바로 이런 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 한 사태에 수많은 에이젠트들의 행위가 인과적으로 개입되어 있고, 그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점이 매우 어렵다. 만약 이번 사태의 관건이 부정 선거 연루자를 색출하는데 있다면, 엄격하고 철저한 조사가 필요할 것이고, 이정희의 말마따나 해당 혐의자에게 부정 선거를 한 해당 행위자로서 정당의 내부 심판대에 세우기 위해선 구체적인 입증 증거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태의 본질이 여기에 있나? 본질은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대형 사고가 났다는 것이고, 그 피해가 막대한 이상 그에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이상 그에 연관된 모든 행위 주체가 연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가 이번 사건의 포인트이다. 


5. 이 두 레토릭의 차이, 즉 '부정 선거의 책임에 의거한 개별적인 징벌적 사퇴'인가 아니면 '부실 선거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해 관계인의 연대적인 사퇴'인가를 구분하지 않고서는 이 사태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 레토릭의 차이가 이해될 때만이, 이정희의 저 첫마디가 얼마나 대중 기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명확히 드러날 수 있다. 이정희가 형사법의 책임 원칙을 끌어 들어와서 자신이 속한 계파를 옹호하는 방어 논리는 부정 선거의 책임에 의거한 개별적인 사퇴의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비당권파가 부정 선거의 책임을 당권파, 특히 이석기를 주축으로 한 당권파 비례 대표 당선자들에게 억지로 돌리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어떠한 소명 기회도 주어 지지 않았고 그들이 부정 행위에 연루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검사측 입장에 있는 조준호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죄 추정 원칙에 의거하여 이석기 김재연은 무죄이고, 따라서 이들에게 비례 대표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은 억지라는 것이다. 


6. 이정희의 이런 논리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에 해당한다. 즉 상대방이 하지도 않았던 주장을 했다고 가정하고, 그 허구의 주장을 반박하는 전형적인 기만의 논리이다. 동시에 이정희의 이 주장은 이번 사태의 본질이 부정이 아닌 총체적 부실에 있다는 점 - 즉 설사 그 부실의 원인이 특정 정치 세력의 사주와 결합된 것이 아니라, 집계원이나 검표원들이 동시 다발적이고 중대한 대규모의 실수, 혹은 선거를 제대로 관리 감독할 시스템 조차 갖추지 못한 초보적인 관리 실수에 있다고 할지라도, 일단 대규모의 부실 선거 정황이 포착된 이상, 경쟁적 비례 대표 명부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점 - 을 고묘히 호도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7. 이정희의 이 논변은 동시에 자신이 계파가 애초에 묵시적으로 인정했던 조준호의 조사권의 권위을 간접적으로 스스로 부정함으로서, 한 정당의 내부 정치 구도 안에서 갈등 조절 메카니즘이 제대로 유지 되기 위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기본적인 권위의 기반을 스스로 붕괴 시켜 버리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이정희의 첫 기자 회견부터 시작되어 이정희의 사퇴와 사무총장 장원창의 쿠데타, 그리고 오늘의 두 비상 대책위 체제에서 흐르는 일련의 흐름이 보여주는 통진당 내부의 극미한 무정부성, 정당 내부 권위의 철저한 붕괴 상태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여기 어떤 분은 통진당 내부에 갈등 조절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메커니즘 - 즉 중간 지대의 조정 권위-에 관한 일정한 통찰력을 보여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메터니즘의 실패의 원인을 유시민에게 돌림으로써 반쪽짜리 통찰에 머물고 있다. 사태를 이렇게 의도적으로 세팅한 쪽은 유/심/조가 아니라 이정희이다. 이정희가 기만적인 논리를 써서 '보고서 자체가 부실한 것'라는 말로 간단하게 조준호 보고서의 신뢰성을 비토했을 때, 통진당 내부의 통합을 유지할 수 있는 정당 내부의 제도적 권위의 메커니즘은 이미 무너진 것이다. 사태를 이렇게 전개시킴으로서 추후에 어떤 주체에 의해, 어떤 내용의 보고서가 작성되더라도, 정치적 입장과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상대 세력들 역시도 딱 그 한마디의 동일한 논리에 의해 조사자의 권위 자체를 간단히 무너뜨릴 수 있게 되는 명분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간 지대 없는 대결 사태의 종착역은 사실상의 정당 내부의 내전 상태 밖에 없다는 것은 애석하게도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8. 한 정당의 내부 정파가 이정희를 비롯한 당권파가 보는 식으로 비례 대표 제도를 자신의 정파적인 이익을 관철시키는 도구로만 바라보게 되면, 민주주의 자체가 결국은 치명적인 위험에 처할 수 밖에 없다. 비례 대표 제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존의 거대 정당이나 새로 영향력을 획득한 신생 정당에게 부여된, 국회 의원을 정당 마음대로 뽑게 해주는 정당에게 부여된 우선 특권인가? 비례 대표 제도는 정당 내부의 각각의 분파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재생산 시키는 도구인가? 이런 거지같은 생각이 횡횡하는 한, 그런 거지같은 민주주의 관념이 판을 치고 있는 나라의 유권자들은 정당의 패권적 지배 행태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9. 국민이 아닌 정당에게 국회 의원 선출권을 위임한다 의미에서, 비례 대표제도는 흔히 말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representative democracy) '대의성', - 즉, 개별적으로 사고하는 개인들의 무수히 많은 집단적 의견을 소수의 사람들에게로 모아주고 단순화 시켜준다는 의미의 대의성 -에 다른 의미의 대의성, '정당을 국회 의원의 직접적인 선출 기관 자체로 만들어 준다' 보다 추상적 의미의 대의성을 첨가시킨 것이다. 쉽게 말해,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해 만할 인물을 유권자가 직접 뽑는게 전통적 의미의 대의제 민주주의라면, 인물이 아니라 유권자가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해 만할 정치 세력에게 대표를 뽑을 수 있는 권리 '이양' 주는 것이 비례 대표제도의 핵심이라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서 자신이 속한 지역구에서 사람의 대표만을 뽑을 있었던 일반 유권자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통해 수십 명의 국회 의원을 선정할 있는 가능성을 가질 있게 된다. 요컨대 일반 유권자 입장에서도 정당 입장에서도 비례 대표제는 이득을 가져다 있는 제도인 것이다

이렇게 비례 대표제도 안에는 기본적으로 유권자- 정당 간, 정당 - 비례 대표 국회 의원 간의 2중적인 대의 관계 존재한다고 있다. 그렇다면 비례 대표제에는 장점만이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런 이중 대의성으로 특징되는 비례 대표제에는 간과할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있다. 이렇게 물어보자: 우리는 우리가 지지하는 정당이, 일반 유권자들에게 위임받은 선출권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어떻게 아는가

지역구 투표로 선출되는 국회 의원의 경우,  기본적으로 타당 후보와의 경쟁 구도를 통해 그의 정치적 판단력과 신념, 정치적 지향성, 삶의 내력 필요한 정보들이 언론에 노출되고 검증될 있는 반면, 비례 대표 국회의원들의 경우에는 후보들이 정당 내부에서 어떻게 추려지고 어떤 원칙에 따라 선정되는지, 일반적인 유권자들은 길이 없다. 사실 유권자들에게 정당의 비례 대표가 선정되는 방식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는 비례 대표의 순위를 정하는 것은 정당 내부의 역량과 지도부의 정치적인 결정에 맡겨도 된다는 그동안의 대중의 암묵적인 동의를 통해서 가능했던 이었다

비례 대표 제도의 원래의 도입 취지에 충실하여 지역구 대표제를 통해서는 충족되기 어려웠던, 다양한 직능 대표성을 가진 참신한 정치 신인들이 정치 무대에 올라오면 좋겠지만, 현실은 이념에서 그리 가까운 것 같지 않다. 정치력이나 정치적 덕성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더라도 단지 정치 자금을 있는 여력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비례 대표 우선 순위에 배정될 수도 있고, 단지 지배 정파의 우두머리와 가깝고 충성심이 강하거나 혹은 단지 언론에 노출되어서 대중적 인지도가 단순히 높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순위의 명부에 배정이 수도 있다. 이런 사례가 매우 흔하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휠씬 더 놀랍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도, 과거 현재 불문하고 지배 정당 내부에서 비례 대표 선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온 것은 민주적 의사 결정 방식이 아니라  정당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보스의 의중이었다는 우울한 사실이다. 새누리 민주 할 것 없이, 견고한 지지도를 갖춘 강력한 대권 후보를 갖춘 지배적인 정당일 수록, 비례 대표는 물론, 지역구 후보의 공천 결정 과정에서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 과정이 한켠으로 밀려 나고 그 자리를 보스의 의중이 차지해 왔다는 사실은 비례 대표의 운용방식이 얼마나 낡고 시대에 뒤떨어져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10.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통합 진보당이 도입한 비례 대표 명부제의 선출 시스템이, 자체로 놓고 봐서는 기존의 새누리- 민주 양당이 가지고 있었던 비례 대표 선출 시스템 보다 분명히 진일보하고 민주적인 면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이번 사태는 진보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해 왔던 소수의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개혁/진보/통일/정치적 자유/관용에 방점을 두고 진보당에 두번째 정당표를 던져 왔던, 포괄적인 진보의 가치를 취했던 거의 모든 지지자들을 하나 같이 깊은 회의의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다


11. 이 회의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무기력감의 원인이 대체 무엇인가? '당권파가 저지른 선거 부정과 부실 때문' 이라는 답변은  상황을 휘어 잡고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력감과 분노의 반의 반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상황이 진보/개혁 진영에 주는 무기력감과 분노의 원인은 부실/부정 선거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이후 일군의 정치 집단이 보여준 정치적 행태와 사고 방식 자체에 존재한다. 즉 한편으로는 제도 자체를 자신의 패권적인 정치와 계파 권력 확대의 수단으로만 사용하려는 부류가 진보 진영에 우리의 우군으로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최소한의 상식에 근거한 제도에 호소하여 자신의 권력적인 기반을 넒혀 가려는 정치성이 아니라, 어떠한 제도와 상식, 그리고 어떠한 내부적 권위라도 - 비록 그것이 타자가 부여한 것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참여하여 산출한 권위일지라도- 자신의 세력 유지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폐기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믿는 정치성이, 우리 안에 오랫동안 도사리고 있었다는 우울함, 그리고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다.  


12. 부실과 부정 선거의 틈바구니 안에서 스멀스멀 솟아오른 정치적 분노와 무기력함의 짙은 안개가  정치 상황을 둘러싸고 있다. 만약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면 안개를 소구하는 병적 원인들은 앞으로 끈질기게 진보 정치를 짓누르는 족쇄가 것이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투명하게  안개를 규정하고 자각하고 기술하는 , 진보 정치의 재구성의 첫 출발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