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정치에 대한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면 안되나?-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창립총회는 10 19일 오후 3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열렸다. 백낙청 선생의 인사말이 끝나고, 영상 자막으로 희망과 대안회원 소개가 시작되었다. 그러자마자 자칭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원을 자처하는 노인 70여명의 난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나 삿대질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애국가도 없이 태극기도 걸지 않은 채 진행하는 행사가 도대체 어딨냐" "너희들이 6.25 전쟁을 아느냐" "대한민국 국민이 맞느냐" "10년 속은 것도 억울한데 너희들이 또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냐"가 주 메뉴였다. 몇몇은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르기도 하였다. 이들은 대회 방해 자체가 목적인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존재가 배 큰(엄청 먹어대는) 애와 사나운 노인네라고! 정말 대처하기 곤혹스러웠다. 시간이 흘러도 진정이 되지 않자, 사회자와 진행요원들은 참석자들에게 강당에서 빠져나갈 것을 요청했다. 참석자들이 몽땅 빠져나가고 노인 훼방꾼만 남게 되자, 이들은 무슨 고지라도 점령한 듯 강당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수 십 번도 더 불렀다. 감격과 승리의 만세였다. ‘좌익들 회의를 무산시켰다면서! 물론 이 엽기적인 장면은 오마이뉴스 등을 통해 생중계 되었고, 진보 언론에서는 주요하게 다뤄졌다. 나중에는 주최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도 몇 명 왔다. 몇몇 주동 급 노인네는 진행요원들이 붙잡아(끌고 가서) 경찰에 넘겼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등 보수정치 세력이 아무리 후지다고 해도 이런 수준의 난동을 부추기거나 지지할 리가 없다. 이는 보수에게 혐오감을 조성하기에 딱 좋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공권력과 여론의 눈치를 보던 보수의 퇴행적인 존재들이 이젠 이 정도 망동은 용인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조중동의 보도 태도-함구하거나 축소 보도-를 보면 이 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이것이 무서운 것이다. 실제 다양한 층위에서 자칭 보수의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가장 힘센 존재들은 엄청난 재정적자와 통화량 팽창과 적당한 (재정)분식회계 등을 결합해서 경기지표, 재정지표를 좋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미래를 털어 먹는다. 그 아래서는 불요불급한 토건사업(예컨대 4대강 사업 등)에 기대어 수십 조원의 재정을 털어 먹는다. 그 아래서는 각종 처벌권, 규제권, 촉진권을 지렛대로 해서 재주 것 해먹는다. 은행이나 기업을 압박하여 각종 기금이나 재단(예컨대 미소금융 재단)이나 협회를 만들어 그 운영권을 꿰 차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다. 말초 중의 말초에 해당되는 아파트 입주자 회의에서도 과거에는 용인되지 않았던 반칙, 변칙이 고개를 치켜든다. [희망과 대안] 창립 총회장에서 벌어진, ('서북청년단'의 정서를 이어받은) 서북 노인단(?)’의 난동은 정권 교체를 계기로, 다양한 층위에서 고개를 치켜드는 보수의 반민주 몰상식 폭란의 하나이다. 빙산의 일각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쯤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희망과 대안] 창립 총회장에 간 것은 초대를 받아서가 아니다. 몇 년 째 사회디자인연구소 간판을 달고,  진보의 혁신을 통해서 희망과 대안을 찾는 노력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기울여 온 사람의 하나로서, 우리가 부여잡은 시대정신을 이름으로 박은 단체의 창립 총회였기에 간 것이다. (창립 총회의 핵심 구호 내지 부제가 한국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디자인 합니다였다) 또 하나, 민주당, 민노당 등 여러 정당과 정치조직에서 도통 희망도, 대안도 찾기가 힘들어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간 것이다. 솔직히 나는 국민참여, 시민주권, 민주통합시민행동 보다 '희망과 대안'이 시대정신을 비교적 잘 받아 안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경과보고와 창립선언문과 운영원칙()과 회원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국민이 기대고 의지할 곳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민주당이나 다른 야당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제대로 된 대안이나 전망을 내놓고 있지 못하며, 시민운동 또한 개별화되고 관성화된 운동으로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절망적 상황은 시민운동으로 하여금 정치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고 있으며, 단순히 특정 정당 정파에 대한 반대나 지지가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높이고, 더 심화시키기 위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감을 던져주고 있다한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진단이다.

 

그러면 [희망과 대안]은 어떤 행보를 하려고 할까? 창립선언문은 이렇게 말한다.

 

시민운동은 우리 사회가 방향과 중심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개별적인 노력을 넘어서서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의 깃발이 되는 사회적 메시지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풀 뿌리 운동의 성과에 기초해 정치를 아래에서부터 바꾸어나가며(중략) 우리 사회의 새로운 세력이 움트도록 돕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걸음 더 진전시킴으로써 변화를 일구어 내야 합니다(중략) [희망과 대안]은 시대를 고민하고 변화를 꾀하는 모든 세력들을 이어가는 거멀못이 되고자 합니다. 지금 절실한 정치.사회적 구심을 만들어 가는데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전체 1페이지 총 10개항으로 정리된 운영원칙()을 보니 첫머리에 있는 내용이 [희망과 대안]‘10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하며, 창립 이후 회원의 가입은 회원의 추천과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거쳐서 결정하며, 회원 모두가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전체 회의를 통하여 하며, 의사 결정은 합의제 정신을 기본으로 한다 어 있.

 

이로 미루어 보면 다른 정당, 시민주권 모임, 민주통합시민행동 등과 달리 [희망과 대안]은 회원 확대 의지가 거의 없다. 또한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는 거의 다룰 수 없고, 정치적 파장이 큰 행보 역시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시민사회의 사정으로 미루어 이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일이다. 따라서 현재의 조직 구조와 합의 수준(운영원칙)으로 보면, 내년 지방선거 시기에 어느 당에도 소속되지 않은 괜찮은 후보에게 시민 후보라는 딱지(품질 인증)를 붙여주는 일이 정치적 행동의 최대치가 아닐까 한다. 정책을 강조하고, 괜찮은 정책을 얘기하겠지만, 아마도 그 정책을 받지 않을 정당은 진보개혁 진영에는 없을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희망과 대안]이 표방한 문제의식 및 포부와 실제 할 수 있는 사업은 상당한 모순 관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창립선언문의 문제의식과 담대한 포부로 보면 [희망과 대안]회원들도, 이 조직에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는 시민들도 이 정도의 정치적 역할에 만족할 것 같지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희망과 대안]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현재의 조직으로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그 문제의식및 포부를 구현할 수 있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서라도 그 역할을 했으면 한다.  알고도 안한다면 무책임한 사람이다

 

내가 감히 말하건대 지금 진보개혁 진영의 핵심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첫째, 현실적으로 제반 정치조직들의 확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즉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이 주도한 영국 노동당 식의 혁신을 연출할 수 있는 이념적, 정치적, 문화적 역량이 그 어느 정치조직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기존 정치조직의 대중적 기반(민주당의 호남향우회, 민노당의 노조원 등)과 조직 문화를 크게 변모시킬 만한 새롭고 건강한 대중세가 보이지도 않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기존 정치조직에 들어갈 것 같지가 않다.

 

둘째, 지구상에는 강.호수에 흐르는 물(지표수)보다 지하수가 100배 이상의 수량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국의 정치 역량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기존 정치조직으로 결집되어 있는 역량보다 훨씬 많은 역량이 마치 지하수 형태로 한국 사회 저변을 흐른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민단체 혹은 시민사회 지도급 인사들은 이 지하수의 일부 일 것이다. 한국 진보개혁 진영이 반역의 역사를 끝장내려면 수량도 많고 수질도 좋은 이 엄청난 지하수를 퍼올려 강을 만들고, 이 강이 수량과 수질이 변변찮은 기존 지표와 합류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지하수를 개발할 역량이 기존 정치조직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셋째,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당, 국민참여정당(), 시민주권모임 등 제반 정치조직의 연합 정치가 절실히 필요한데, 이를 구현하기가 너무나 힘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김대중 같은 지배 주주가 있다면 수혈을 하든, 지분(공천권 등)을 조금 떼어주는 방식으로 연합정치를 구현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에는 그런 지배 주주가 없다. 그러므로 민주당 지도부가 기득권 양보 등을 통한 통큰 연합정치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못한다고 보아야 한다.

 

반면에 민노당, 진보신당 등은 이번 선거에서는 득표를 얼마 못해도, 이를 발판으로 다음에는 더 많은 득표를 하고, 동시에 당의 위상을 점진적으로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이 거의 사라졌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실탄도 탕진하고, 고령화되고(젊은 세대가 인입되지 않고),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 오랫동안 못 먹어도 고!’를 불러대게 만든 낙관적인 전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역량에 비해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므로 서 연합정치를 사실상 거부한) 소수 정당들로 하여금 연합정치에 전향적으로 나서게 하는 심리적 토양이 아닐 수 없다.

 

[희망과 대안]으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시민사회가 엄청난 지하수를 분출 시킬 수 있는 구멍 몇 개를 뚫을 수 있는 가능성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이념적 혁신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정치적 책임 내지 지난 시기의 정치적 업보로부터도 자유롭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기득권에 집착하는 사람이 없다. 선수(후보, 특히 광역후보)로 나설 사람은 적어도, 공정한 심판을 볼 사람은 많다. 선대위원장 내지 선대위 고문을 할 사람도 많을 지도 모른다. 이는 시민사회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창립선언문에서 강조한 거멀못역할의 시각에서 본다면 약점이 강점으로 될 수도 있다.

 

요컨대 [희망과 대안]으로 상징되는 시민사회가 아직 정치화 되지 않는 역량을 많이 결집한다면, 즉 한국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정치적 지하수맥을 좀 개발한다면, 그래서 대중적 지지세가 높다면 연합 정치를 주도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적 지지세는 높은데 후보를 탐하는 사람이 적어야 연합정치를 주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좀 속되게 비유하자면 민주당이 코리언시리즈에 진출한 1위 팀이라면, 나머지 정파들은 [희망과 대안]으로 상징되는 시민사회의 심판 하에 플레이오프 전을 벌인 후 어떤 곳에서는 동일한 심판 하에 코리언시리즈를 벌이고, 그것이 필요 없으면 따로 따로 나가는 그런 구도 말이다. 물론 정치공학 보다 중요한 것은 진보의 철학, 가치, 비전, 정책의 혁신 일 것이다. 이는 열린우리당, 참여정부, 대선, 총선 등 지난 시기 제반 정치조직 및 시민사회의 주요 정치.사회 활동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1987년, 1997년, 2002년을 계기로 만들어진 민주, 진보, 개혁의 짙은 그늘을 대중의 눈으로 냉철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현실 권력을 잡아 맘껏 휘두르려는 욕망은 약해도, 대의 명분에 대한 집착이 강한 시민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적극적 역할 없이는 거꾸로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출 길이 없어 보인다.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느낌은 들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