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통진당 운영위 중계를 거의 끝까지 보았습니다. 단상폭력이후에 계속된 구호가 밤새 머릿속에 맴도네요. 인터넷을 뒤지다 <맹신자들,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을 알게 되어 그저께 구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사회철학자인 에릭호퍼(Eric Hoffer)가 1952년에 쓴 것으로 주된 대상은 나치와 공산혁명가들입니다. 이런 사회활동가가 어떻게 대중을 조직하고 그 구성대중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맹신하게 되는가를 현상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은 그러한 맹신자들의 심리적 경향과 그런 경향을 강화시키는 환경적 특수성으로 맹신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2장에 나오는 잠재적 전향자를 한번 보시죠.

 

2. 잠재적 전향자

i) 인간사에서 불명예스러운 자의 역할

     - 가난한 사람

      - 극빈자

      - 자유를 얻은 빈민

      - 창조적인 빈민

     - 똘똘 뭉치는 빈민

ii) 부적응자

iii) 이기적인 사람

iv) 무수한 기회를 둔 야심가

v) 소수자

vi) 권태에 빠진 사람

vii) 죄인

 

이러한 outlier들의 특성을 생물학적 특성이나 개별적 상황을 이해하는 심리적 기질로 환원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는 거대담론 규모의 설명틀, 예를 들면 민중의 변화열망이라든지 NL, PD의 설명틀보다는 더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하다고 사회생물학적인 것으로 모든 것이 환원될 수도 없으면 그런 것을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과학으로 분자부터 심리, 그리고 사회의 동인까지도 설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리학에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에는 그보다 훨씬 광대하고 원척으로 설명이 불가한 분야가 많다고 믿는 편입니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의 특성을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의 분비를 조절하는 유전자의 차이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기존의 사회과학적 표준모델로 설명하기 힘든, 또는 결과론적 해석의 틀을 격파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방법이 될 거라고 봅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교련을 했는데요, 그때 정말 교련을 열심히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우리가 박정히 욕하면서 빈정거리면서 행진하고 총 수습하는 것을 정말 못 참아 했습니다. 정말 성실 그 자체, 주어진 교련의 목표에 최선을 다하고자 항상 우리를 설득하고 교련수업에 빈정거리는 우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었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총검술에 온 정신을 집중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대학생이 된 제가 신문을 보다가 놀라 자빠졌죠. 세상에.. 그 친구가 당시 엄청난 시국사건의 주인공이 되어 공안당국에 끌려갔다는 겁니다. 교련시간에 교련책을 무슨 정석교과서 보듯이 탐독하고 올바른 교련수업의 열렬한 수호자였든 친구가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친구는 인간에 대한 신뢰, 성실 이런 것으로 똘똘 뭉쳐진 놈이었데, 그렇게 엄청난 활동가로 바꾼 그 계기가 지금도 궁금합니다만, 호퍼의 주장대로 그 기저에는 그가 가진 심리적 기질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에 보면 나치 유겐트들이 나중에 골수 공산당원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방향은 다르지만 그 행동을 결정하는 과정은 같아서 그 양극단을 오가지 싶습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양극단을 오간 사람은 쉽게 관찰이 되죠.

 

이 책은 이후에도 자살폭탄 테러리스트 등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책이 되었다는데, 적어도 이 책의 설명틀이 우리나라에는 완벽히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당시 책이 나올 1950년에는 책이나 방송이 제대로 있지 않았겠죠. 주위 활동가에 포섭을 당한 세포가 다른 의견을 가지기 힘든 시점이지만ㄴ, 지금은 어제와 같이 당중앙위원회 회의 전체를 인터넷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시절입니다.

 

책은 124개의 짧은 꼭지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회과학적 분석 자료나 정량적 접근은 거의 없는 편이며 약간의 잠언적인 이야기를 툭툭 던지는 식입니다만, 그 하나하나 글들이 꽤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맹신자들은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서 움직인 산을 보고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p.96)에 특히 재미있습니다. 사람은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무한한 힘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저자의 시각의 쉽게 이해됩니다. 예를 들어 통진당에서 나타난 당권파 <비례대표의 사퇴>문제는 동지에 대한 모욕으로 환치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전략적인 수사라고 생각했는데 호퍼의 책을 읽어보니 당권파 상당수는 정말로 여론에 의한 사퇴는 진보당과 동지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모욕이라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어제 참관인들이 보인 그 초인적인 행동(하나의 흔들림도 없이 구호를 외치는 것)은 이해될 수가 없을 것 입니다. 따라서 개인의 정체성을 억압하고 조직의 규율에 따르게 함으로서 개인은 소속감과 연대의식(어떤 경우에도 동지들이 도와준다)을 얻고 조직은 그러한 개인을 연료(fuel)로 삼아 전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넷이나 iPAD가 없는 1950년에 쓰인 이 책이 지금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점도 많지만 그래도 단순히 또라이라고 몰아붙여서 맹신자들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봉인하는 나약함을 이 책은 나름 해소해줄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몇 구절 소개합니다.

 

p.110

- 현재를 비하하는 태도는 예견능력을 키워준다. 적응에 능한 사람들의 예언은 형편없다.

 

p.120

- 자신이 따르는 강령이 절대로 틀림없다는 확신이 맹신자들로 하여금 불확실성, 뜻밖의 상황,

   주변세계의 불편한 현실에도 꿈쩍 않게 해주는 것이다.

- 강령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가 아니라 얼마큼 확신을 주느냐에 따라 효력을 발휘한다. (중략)

   강령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해시키기보다 오히려 굳게 믿게 만들어야 한다.

 

p.136

- 증오는 모든 단결동인 중에서 가장 흔하고 포괄적인 요소다. (중략) 대중운동의 힘은 대개

   악마가 얼마나 선명하며 얼마나 생생하느냐에 비례한다.

 

 

지금과 같이 많은 정보가 공개되고 자발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 어제 통진당 중앙위원회에서 보여준 참관자, 특히 젊은이들이 보여준 태도는 상당히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아직도 수많은 사이비 종교단체, 다단계판매 사기꾼, JMS같은 조직이 있다는 것은 사물이나 문명은 아무리 변해도 사람들의 생리와 심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JMS에 헌신한 젊은 아가씨들의 동영상을 보면 이게 21세기에 가능한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퍼에 의하면 선전선동은 강압과 동반할 때 효과가 배가된다고 하는데요, 어제 동원된 청년 참관인들에게도 그들간의 상호감시(확인 또는 독려)가 있지 않았나 싶네요. 이전 운동할 때 생각해보면 개인별 <투쟁도> 그래프를 그려서 당일 당일 투쟁실적을 점검하고 경쟁하고 억압한 기억이 납니다. 도표가 쭉쭉 올라갈 때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죠. 나약한 조에게 비웃음을 던지면서요 ㅎㅎㅎ,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사분란하게 끝없이 구호를 외치도록 한 것에는 열정과 함께 자체 평가에 대한 노력도 있다고 봅니다.

 

이 책의 핵심은 18장 < 좋은 대중운동, 나쁜 대중운동>에 있습니다.  

이 책은 좌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우파의 지침서로 악용되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이 책은 대중운동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으며 그것이 올바른 역사의 진보로 일조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분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책은 우파가 볼 것이 아니라 대중운동에 관심있는 자유주의자들의 올바른 시각을 위해서 앍어 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2시간만에 후딱 읽기에 딱 입니다. 아무 곳이나 펴서 읽어도 좋습니다.

 

p.231  대중운동의 특성과 지속시간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은 아마도 지도자의 성품(품성?)이 될 것이다. 링컨고 간디 같은 불세출한 지도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