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세계대전 독일의 홀로코스트 범죄 행위에 가담한 한 장교가 회고록에 이렇게 써서 세상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 상부의 지시를 착실히 이행했을 뿐이다."


 

직업윤리........의 필요성에 대하여 518 광주 학살 현장에 해병대가 있었다면......이라는 제하의 옛날 썼던 글을 자펌 형태로 올린다. 직업윤리.... 그래 의사들도 저 거추장스런 히포크라테스의 선서 따위는 집어치우고 착실히 월급쟁이 생활을 하자.







 

+ 518 광주학살 현장에 해병대가 있었다면


1980년 518 광주 학살의 역사적 사실을 반추하다 보면 내 머리 속에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 밝혀진 조건반사처럼 부마 사태(*1)가 떠올려진다. 그리고 이내 518 광주학살 현장에 공수부대가 아닌 해병대가 있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떠올려지고 이내 내 머리 속에는 인류 역사에 기록된 참혹한 사건들의 상세로 헝크러진다.

 

역사에서의 '가정'만큼 싱거운 것이 없다지만 만일 부마사태에서 해병대가 공수부대와 같이 투입되지 않고 '공수부대'만 투입이 되었다면 518 광주에서의 학살 현장은 아마도 8개월 전에 발생하였던 부마사태의 현장인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발생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518 학살현장은 없어 우리 역사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군 부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참으로 비극적인 역사적 사실은 오롯이 우리 역사에 기록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518 학살 현장에는 없었고 부마사태에는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흔히 이 차이를 스탠리 밀그림(*2)의 '부당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인용하면서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군 조직의 차이(*3)를 들어 설명하려고 한다. 나는 그런 심리학자들의 설명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그 차이를 '직업 윤리의 존재 유무'에 있다고 생각한다.


518 학살 현장에 없었고 부마사태 현장에는 있었던 그 직업 윤리라는 것은 바로 '직업 군인의 군인으로서의 소명'이며 그 소명은 '군인은 국가를 보존하고 그 국가를 보존하는데 필수 요소인 민간인을 보호하는 것'이다.


내가 틈틈히, 직업 윤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고용경영주 제도가 반드시 세습경영인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맥락이다. 한국 진보의 거두라는 조봉암의 독직 사건에서부터 최근의 이명박 정권에서의 수많은 독직 사건까지 직업 윤리를 부정하는 사건은,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의 뿌리깊은 '사농공상'의 계급의식의 존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훗날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박구일은 부마사태에 선두 투입된 해병대 7연대 연대장이었고 그는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에게 이렇게 지시한다.(*4)


"시민들이 때리면 맞아라. 돌을 던지면 맞아라. 어떠한 경우에도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단, 어떠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총은 빼앗기지 말라"

 

당시 현장에 투입된 한 해병 장교는 자조적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와 전경들에 비해 우리는 그런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다가 상부의 그런 지시를 받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몸으로 때우는 것"

 

문득, 해병대의 모토와 공수부대의 모토가 대비되어 뇌리를 스치고 간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안되면 되게 하라"


뭐, 공수부대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해병대의 모토가 '존재의 이유'를 자각시킨다면 공수부대의 모토는 왠지 '결과지상주의를 장려한다는 것' 말이다. 물론, 혹자는 특수한 목적을 띈,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군 부대의 모토를 가지고 별별 시비를 다 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민간인에 '민간인을 죽이면 군인인 내가 죽는 그런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설사, 시위가 극도로 격렬해졌다고 해도 말이다.

 


*1 : 부마사태 : 부마 민주화 항쟁이 공식 명칭이지만 518 민주화 항쟁이라는 명칭 대시 518 학살이라는, 역사에서의 그 주범을 부각시킨 용어를 쓰는 목적과 같은 목적으로 쓴다.


 

*2 : 스탠리 밀그림 : 꽤 오래 전에 미몹에 어느 분이 포스팅한 것으로 인간이 얼마나 명령에 맹목적인가를 보여준 실험 결과이다. 그 분 포스팅을 찾아서 읽으시거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자세히 나오므로 검색해 보시길 ^^


 

*3 :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차이점은 군대의 조직 특성인 수직적 구조인 것은 동일하지만 해병대는 소규모 전투에 더욱 적합하도록 편제되어 있다. 즉, 사병이 소규모 부대를 통솔할 수 있다는 것으로 부마 현장에서는 '의식있는 해병대원'이 다른 사병들의 충동적인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심리학자들이 '바당한 권력에의 복종'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내용이면서 조금은 다른 맥락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표현과 홀로코스트의 주범 중 한 명이었던 어느 독일 고급장교가 자서전에서 술회한 것처럼 '나는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다'라는 것을 상기시킨다면 박구일 당시 해병대 연대장의 지시가 해병대원들의 양심적 행동(또는 이성적 행동이라고 판단되는) 위에 있었고 그 지시가 부마사태에서 시민들을 구타했던 공수부대와 달리 몸으로 때웠던 이유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4 : 작년인가? 2010년에 부마사태에 대한 군부대의 비밀 문서가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근거해 한겨레에서 읽은 기사를 (지금 검색해보니 찾을 수가 없어서) 기억에 의하여 구술한 것이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