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유시민 그리고 김문수가 함께한 서노련 사건을 우연히 알게되면서 시작된, 한국 현대사의 감추어진 한 축이었던 좌파와 노동운동사를 더듬어 가다가 일제 시대의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 아나키즘 운동에 대한 탐구의, 일종의 결과물>

 


요즘은 군대가 좋아서, 그래서 쌍팔년도의 군대와는 많이 틀려져서, 자대 고참에 의한 구타나 단체 기합 등이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쌍팔년도에 군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구타 한두번 쯤은 당해보았을 것이고(물론 예외없는 법칙 없다고 그 쌍팔년도 군생활에서 나는 구타 한번 당하지 않았지만 ^^) 또한 단체 기합을 받으면서 발은 관물대 상단에 그리고 양손은 깍지끼고 내무반 바닥에 놓고 기합을 오랫동안 받고 난 후, 고참들이 내지르는 이런 말을 한두번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역시,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니까?"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자신이 고참이 되어, 자신이 쫄따구였을 때 당한 기합과 똑같은 기합을 쫄따구에게 선사한 후 내무반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며 습관처럼 이런 말을 한두번은 읊조렸을 것이다.


"역시,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 라는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니라니까?"

 

요즘은 상대적으로 덜 쓰는 우리 민족을 조선 팽이에 비유하는 이 표현은 '엽전' 또는 '엽전 근성'이라는 표현과 같이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표현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조선 팽이, 그리고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라는 속언의 유래는 대충 세가지로 추측이 되고 있다.


첫번째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속국이 되다시피한 조선의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청나라의 지배 논리로서 만들어 냈다는 설,

두번째는 일제 시대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비하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설,


세번째는 우리 민족 스스로 하는 꼬라지에 대한 반성 내지는 비야냥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세가지의 유래 중 어느 것이 맞던지 간에, 우선 고려해볼 점은 우리나라의 민족성에 대한 고찰이다. 우리나라 속언 중에 '잔대가리 굴린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이 잔대가리는 최소한 문화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중국과 일본에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대륙 기질이니 섬나라 근성이니 하면서 중국의 민족성이나 일본의 민족성을 규정하는데 그런 민족 단위의 민족성에 '반도 기질'이라는 특이한 기질이 있다. 이 대륙 기질과 반도 기질 그리고 섬나라 근성은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기회주의'라는 나쁜 항목에서 각 기질을 고찰해 보면 대륙 기질과 섬나라 근성에서는 그런 기회주의를 발휘할 기회가 없는 반면에 반도 기질은 상대적으로 그런 기회주의를 발휘할 기회가 많다.

 

구체적으로 서술하자면, 일본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 동안 전란을 거듭한 일본의 역사에서 바다로 둘러 쌓인 지정학정 특징 때문에 외부의 힘을 빌릴 위치에 있지 않은 일본은 결국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만이 처절한 역사 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기회주의를 발휘할 겨를이 없다. 반면에 중국의 경우에는 약소국들과 이민족으로 둘러쌓인 지리적 환경 때문에 역시 외부의 힘을 빌릴 기회를 찾는 것이 용이하지 않으며 따라서 역시 처절한 역사의 경쟁에서 자신의 실력을 쌓는 것만이 역사 경쟁에 승리하는 것이다.

 

반면에 반도 국가인 한반도에서는 외부의 힘을 빌리기가 쉬우며 이 외부의 힘은 아주 빈번히 자신이나 또는 적이 가지고 있는 역량보다 훨씬 더 많이 역사의 승부의 분기점에서 승패를 좌우하고는 한다. 나당연합이 그 구체적인 역사적 산물이며 조선의 개국이 또한 그러하며 구한말 이 땅의 정치인들이 친일, 친미, 친중 그리고 친러파로 나뉘어 합종연횡 했던 역사가 또한 그라하며 일제 강점 시기에 이 땅에 친일파가 유독 많았던 이유가 바로 그렇다.


결국 한반도에서 역사의 승패는 자신의 실력보다는 외부의 변수에 의하여 더 결정적으로 나뉘어졌으며 이런 역사적 사실은 하나의 풍토로 자리잡아 조선의 지배층 뿐 아니라 조선 민중에게도 내려져 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반도에서는 기회주의가 대세를 이루었으며 결국 외세의 힘을 빌리려는 '사대주의는 필수적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주의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는 속언이 그 유래와는 관계없이 설득력 있게 생명력을 유지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는 주장이다.

 

이런 역사적 기술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이 것이 전부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라는 속언을 이런 역사적 상황, 그리고 기회주의가 팽배할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이 것만으로 역사의 수레 바퀴에서 사라진 수많은 민족과는 달리 굴절이 심하고 상처받은 역사투성이기는 하지만 오천년을 이어온 민족에게 과연 '조선 팽이'라는 속언으로만 규정이 지어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일제 시대의 아나키즘의 역사를 알게 되고 또한 아나키즘에 대하여 개념적인 공부를 하게 되면서 알게된 체 게베라의 '복종에의 분노'라는 말을 접하면서 이런 조선 팽이는 비록 유교에 의하여 순치가 되어, 민중의 힘은 사그러질 때로 사그라져서, 오백년 동안 그렇게 가렴주구를 당하면서도 민란다운 민란 한번 일으키지 못한 조선 민중에게, 체제에 반항하는 방법이, 특히 청나라의 속국이 되다시피하고 더욱 더 나라를 빼앗긴 일제 시대에는 더욱 더 당시의 정부에 복종하지 않는 일종의 불복종이 순치된 조선 민중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즉, 조직적으로 항거를 할만한 힘과 역량을 상실당한 조선 민중에게는 체 게베라의 '복종에의 분노'라는 말처럼 순수히 복종하기에는 너무도 분노스러울 정도로 가혹적인 사회의 체제에서 당시 정권들의 정책들에 대하여 천천히 그러나 생명이 아깝기 때문에 결코 반항심을 겉으로 들어내지는 않는 그런 불복종, 그러니까 오늘날의 아나키즘 정신의 일부인 불복종이 조선 민중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체제에 대한 반역 행위였으며 그런 민중의 행위가 결국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는 속언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까?....하는 판단이 현재까지 일제의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를 배우면서 내가 내린 판단이고, 나는 내 판단이 맞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 반증으로, 우리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참여율이 너무 낮다는데 있다는 것으로 이런 불복종의 오랜 습관이 이제 체질화되었다는 것이다.

 

맞아야지만 도는 조선 팽이, 그 숙명적인 운명 속에서 과연 조선팽이가 자신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에 반항하는 방법은 '불복종' 말고 또 무엇이 있었을까? '조선 팽이는 맞아야 돈다'라는 속언 속에 어린 우리 민족의 비하에 대한 불쾌감보다는 끊이지 않는 외세 침략에 악착같이 생을 유지했던 우리 조상들의 '한 맺힌 삶'이 그려져 차라리 슬퍼진다.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