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씨의 소설중 늙음을 (아주 구체적으로) 소름끼치게 표현한 단편이 있었다.
한페이지쯤에 걸쳐 거의 서사적으로 묘사된 늙은 육체의 추함은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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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잃은 초로의 여인이 어떤 점잖은 중늙은이를 만나 로맨스 그레이에 대한
환상에 잠시 사로잡혔다가  서로간에 육체의 추함을 견딜수 없을것이라고  판단하고
그 꿈을 접는 이야기이다.

아직 내가 늙지를 않아서인지 우리 친인척을 포함하여 내가 접한 노인들은 
추했다.  아무리 외양을 잘 다듬고 만지더라도 늙음은 어느 순간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낸다.  

주름잡힌 목....깊게 패인 주름살....센 머리....구부정한 자세.....노인 냄새와 저승꽃.....틀니.....
수전증에 걸린 손과 자꾸 흘리는 밥알.....
정신이 아무리 명경하더라도 육체의 추함은 카버할수 없다.
최근 정신을 놓은것 같긴 하지만..... 김지하의 최근 사진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진다.

 희망과 대안이라는 단체의 출정식이 일부 "노인"들에 의해 무산되었는 모양이다.
이 경우 "노인"이라는 단어 앞에 굳이 극우니 뭐니 붙일 필요가 없다.
 노인이라는 자체로 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추한것이 덩어리져 움직이면 더 추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나도 늙는다는 것때문에 늙음을 용인하고 미화하고 싶지 않다.
의학이 발달하여 수명이 길어진다는것은 어찌 보면 인류에 대한 신의 잔인한 보복인것 같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의 어떤  여신이 모래알수만큼의 수명을 선물받아 영원히 죽지 못하고 지상을 떠돈다는 이야기는
죽음에 가까워졌을때  가장 추한 모습이 되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


(막상 나도 늙으면  이런 생각이 분명히 바뀔것 같다. 사람은 원래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