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통진당내 당권파는 만인의 공적이다. 보수언론은 물론이거니와 페북등에서도 당권파와 이정희에 대한 비난으로 넘친다. 돌아보면 '오세훈은 이정희의 미래'라며 극언을 퍼부운 내 입장에서 쎔통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당권파의 반론도 들어보자.


간단히 말해 참여당 계열에서 동일 아이피로 200명 이상이 투표한 '부정으로 의심할 만한 사례'가 제기되었으나 '조사위원' 박무가 은폐했다는 의혹이다. 그런 사례는 또 있다.


간단히 말해 진상조사위가 특정 진영만 집중적으로, 그것도 실정법까지 위반해가며 봤다는 이야기다. 길게 가지 말자. 걍 당권파의 억울함은 아래 두 기사에 잘 담겨있다.


역시 요약하면 첫번째, 현장 투표의 부실은 과거부터의 관행이었다. 두번째, 온라인 투표의 부정은 타 정파에서 더 많이 저질렀다. 세번째, 그런데 당권파만 욕먹고 있다. 이거다.

걍 요약하면 이번 사건을 총체적 부실투표로 바라보는 것은 그 이면의 권력 투쟁을 놓치는 셈이다. 그것도 상당히 치밀한 형태의 권력 투쟁이다. 그런데 여기서 묻자.

권력 투쟁이 나빠?

나쁘지 않다. 필자 누차 이야기했듯 당은 원래 권력 투쟁하라고 만든 조직이다. 고로 당내 권력투쟁 자체를 놓고 비판하는건 장사꾼들보고 돈 남는 장사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그렇지만 나로선 이번 권력 투쟁은 존내 못마땅하다.

왜?
참여당 계열이 주도해서?

그런 것도 있겠다. 그렇지만 당권파도 그에 못지 않게 미워한다. 그러니 사실 내 감정은 '고것 쎔통'이 더 가깝다. 이정희보며 '고봐, 내가 진작 나쁜 친구랑 어울리지 말랬지?'라며 약 올리고 싶은 마음도 무럭 무럭 일어나나...

그래도 할 말은 하자. 내가 불만인건 이거다. '과연 진보 개혁 진영은 민주주의를 할 능력이 있는가?'이다.

민주주의...한때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말이다. 그런데 이제 내게 그런 벅참은 없다. 난 이제 민주주의를 가치보다 효율적 자원분배 방법으로 바라본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보다 더 효율적으로 자원분배를 하는 제도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물론 일부에선 민주주의가 과연 효율적인 제도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이른바 우중, 조중동에 세뇌된 대중, 포퓰리즘등의 단어들이 그러하다. 

그럴까? 

이건 민주주의 이전과 비교하면 그 효율성이 드러난다. 민주주의 이전, 권력 투쟁은 거의 언제나 피를 수반했다. 심지어 성군이나 현자가 지배하고 있을 다시에도 그러했고 폭군이나 무능력한 군주가 집권했을 때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러한 가치적 측면만이 아니라 효율성에도 그러하다. 민주주의 이전, 자원의 재분배는 거의 대부분 전쟁이나 무력으로 이뤄졌다. 근대 이전 대중을 보면 한가지 재밌는 점이 있다. 그건 전쟁 발발시 대중들의 열광적 환호 분위기가 있었다는 거다. 왜 그랬을까? 다른거 없다. 드디어 자원의 재분배(가 아니라 독식)이 이뤄질 기회가 닥친 거니까.

그런데 민주주의가 그 효율성을 발휘하려면 한가지 전제가 있다. 그건 과정에 대해 승복할 수 있는가이다. 다수결이든 만장일치든 그 결과가 소수파를 배제하지 않고 나름대로 자원의 분배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주의는 그 나름의 장점을 가질 수 있는 것...여기까진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거다.

그러면 이제 핵심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까지 야권은 그 과정에 대해 합리적이었고 승복하는 문화를 갖고 있었는가?

아니다. 필자가 박스떼기의 추억을 제목에 단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 모두 기억할 거다. 최초로 국민경선을 한다고 호들갑 떨었던 민주당...박스 떼기니 뭐니하며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박스떼기 터지자 마자 필자의 마음에 든 생각은 이거였다. 

"박스떼기할 줄 몰랐어?"

조금만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상상해보면 박스떼기는 너무나 당연한 선거행위였다. 후보별로 경선 참가단을 모집한다는 규칙이 합의된 이상 당연히 모든 후보는 모집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더 정확히 말해 국민경선 제도는 '누가 누가 더 경선 참가단 잘 모으는가'를 놓고, 그 능력에 따라 어드밴티지를 준다는 제도이다. 그렇지만 손학규, 이해찬 측은 갑자기 '경선참가단 모집 경쟁' 자체가 국민경선 취지에 어긋난다는 황당한 이유를 들어 일정을 중단시켰다.

물론 박스떼기 과정에서 일정 탈법도 있었을 것이다. 장담컨대 모든 제도는 나름의 부작용이나 편법을 불러오기 마련이므로 중요한건 그 정도가 과연 서로 합의할 수 있는가이다. 가장 전통적인 '본인확인후 오프 라인 투표'조차 정확한 투표인수와 투표수를 측정할 수 없고 대리나 공개 투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국민경선이야 말해 무엇하랴. 결론적으로 그 정도를 예측하고 합의 여부가 중요했다. 

그랬나?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이건 정동영의 박스떼기가 아니라 민주당내 주체들이 민주주의의 절차와 결과를 수행할 능력 자체가 부재했음을 뜻한다. 아직도 필자 말이 이해가 안된다면 그냥 이것만 물어보자. '이해찬, 손학규 진영은 박스떼기를 하지 않았다고 장담하는가?'

저 질문에 예스를 한다면 당신은 정말 순진하다. 난 그렇지 않다는데 얼마든 걸 수 있다. 아무튼 이건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열받는건 이거다. 저쪽 동네는 피튀기게 싸우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조직은 균형을 찾고 규칙은 지켜진다. 그런데 이쪽 동네는 허구헌날 싸우고 나뉘고 서로 욕 못해 안달이다.

왜 그럴까?

그 패턴이 일정하다는데 주목하자. 민주주의 절차에 대해 항상 가치를 우위에 둔다. 진성당원제는 그 이념과 당 형태에 맞는 '효율적 방식'이 아니라 '당 권력을 당원에게'라는 추상적 가치가 우선된다. 정반대인 '국민 경선'또한 '후보 선출권한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가치로 정당화된다.

그런데 정반대로 보이는 두가지 방식 모두 그 내용은 '권력투쟁의 방식'이다. 어떤 제도가 도입되든 당내 주체들은 그 제도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구현할 것이므로 명분과 실제에서 괴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중요한건 명분을 구현해야 한다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괴리가 '허용범위'에 있는가, 그리고 그 허용범위를 서로 합의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대한 합의가 바로 명분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가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이쪽 진영은 늘 이점에서 실패했다. 그래서 명분 찾아 냉온탕처럼 진성당원제와 국민경선을 오간다. 그것까지야 그렇다고 치자. 늘 일정한 패턴이 반복된다. 일부에서 거창한 명분을 들어 새로운 선거 제도를 들고 나온다. 명분과 실제가 괴리되면서 이긴 쪽에선 '닥치고 지지' '닥치고 조중동 이용 반대' '닥치고 조직 보위'를 내세우는 반면 진 쪽에선 '민주주의파괴'를 내세우며 역전을 모색한다. 이 모든 진통의 수습책으로 다시 명분을 내세워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고 그 결과 다시 명분과 실제는 괴리되며 이긴쪽에선....

그래서 안타깝게도 통진당 진통을 바라보는 내 감정은 냉소다. 저 진통을 거쳐 뭔가 발전을 이룬다면 난 열렬히 당권파를 공격하겠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과연 이번 진통을 거치면 통진당은 자신들의 능력을 초과한 것으로 입증된 '선거 제도'를 개선할까? 당권파가 물러나면 현장 선거에서 박스 오가는 '관행'이 사라질까? 인터넷 정당을 표방한 국참 계열이 당권을 쥐면 '동일 아이피 다수 투표'가 없어질까?

더 나아가 과연 이후엔 진쪽에서 '부정투표'를 들어 공격하는 일이 사라질까? 통진당만 그럴까? 민통당에선 이후에 지구당 위원장이 '익명'으로 선거부정을 폭로하고 이를 인터넷 언론이 받아 특정계파나 인물에게 불리한 보도를 흘리는 반칙이 사라질까?

다시 묻겠다. 과연 이 쪽 동네는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할 마인드는 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