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역시 1년 반 전(2010/10/10)에 당신 민노당의 북한 부자세습 비판 거부 결정을 보고 썼던 글입니다.

아마 현재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들을 판단하는게 요긴한(?) 자료가 될 것 같아서 제 블로그에서 퍼 왔습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제 원글(http://crete.pe.kr/24658)에 달려있는 댓글들도 한번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북한 부자세습 비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은 3대에 걸친 부자세습을 공표했고 세계각국은 시큰둥한 반응속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한반도의 긴장이 더 고조되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고 한반도의 주요축인 북한에게 쓴 소리를 자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와중에 남한에서는 민노당이 북한 김정일이 실행한 아들에게로의 권력승계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니 적어도 당대표수준에서 언급을 자제하겠다고 했고 그에 대한 비난은 감수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이정희 "北 비판하라는 <경향>, 국보법 법정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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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논쟁의 당사자인 경향은 물론이고 한겨레와 참여연대도 그리 민노당의 행보에 동조하는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기사 이들이 평소 보였던 다양한 진보적 입장들, 가령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 주한미군의 환경오염, 주일미군의 범죄문제들에 보였던 인권옹호, 환경문제, 민족 자존심문제들의 견해들을 생각하면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별의별 일들에 뭐하나 손을 들어주기 쉽지는 않을 겁니다.


얼마전까지 국내에서 벌어진 외교관들과 각종 고위관리들의 자제에 대한 취업 특혜에 분노하던 민노당의 모습을 보면 이번 민노당 대변인의 발언이나 당대표의 언급은 이율배반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왜 북한문제에 이렇게 조심스러운 입장이 되었는지 진보진영속에서조차 유별란 모습이라고 봐야죠.


그나저나 민노당에 나름대로(?)의 기대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저의 경우, 앞으로 민노당의 행보에 이번 북한 부자세습에 동조내지 최소한 침묵하기로 한 결정이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거라는 실질적인 염려도 앞섭니다. 아무튼 오늘 포스팅은 이런 현실적인 이해타산을 떠나 북한과 간접적으로나마 뭔가 사업(?)을 추진해 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 민노당에게 공감 겸 조언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평양에 수립중인 평양과학기술대학에 관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덕분에 워싱턴 주변에서 많은 목사님들이나 평양과기대 관계자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눌 할 기회가 있었죠. 북한 관련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민노당의 최근 입장처럼 북한에 많은 문제가 있는 건 인정하지만, 그런 문제들을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반대로 강력하게 북한의 인권문제를 비판하는 입장이죠. 왜 이런 일이 생기냐하면 북한 당국자들은 자신이 접촉하는 이들의 과거행적을 조사해서 북한체제, 특히나 김일성, 김정일을 비판하거나 북한인권문제를 비판한 경력이 있는 인사들과는 같이 일을 하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북한과 접촉을 할 경우 이 두가지 입장중에 한가지를 선택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비판하고 외각에 서거나 비판을 자제하고 뛰어들거나.


그런데 제 경우는 비판을 자제하는 것 자체가 무척 심정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니까 80년대 초반... 전두환 군사독재가 한창 물이올라서(?) 기세가 드높던 시절에 많은 민주인사들이 안기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았습니다. 이들에게 극심한 육체적 고통도 물론 힘든 노릇이지만, 정작 이들을 미치도록(?) 만든 건 육체적 고통말고도 다음과 같은 고통이었다고 합니다. 뭐냐하면... 나 혼자 여기서 이렇게 민주화를 위해 고문당해봐야 세상 사람들은 내가 이러고 있는 지도 모르고 뭐 하나 바뀌는 것 없다는 생각이랍니다. 거꾸로 매달려서 고추가루물이 코로 들어가는 그 순간에 정말이지 참을 수 없었던 건 허파가 찢어질 것 같은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이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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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거꾸로 현재 북한에 서구식 언론의 자유나 시장경제체제같은 거 말고라도.... 스탈린식의 일인독재에 분노하는 순수한(?) 공산주의자가 있다면 현재 민노당의 저런 입장 표명에 같은 한반도내의 공산주의자 입장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 생각을 해 보는 거죠. 사실 그냥 이번 북한의 권력세습문제는 추가 포스팅을 삼가하려고 했었는데 프레시안의 김기협씨의 글([세계] "<경향신문>과 이대근 씨! 권력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요")을 보고 참담함을 누를 길이 없어서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절대악은 아닐지 모르지만 견제세력의 씨를 원초적으로 말려버리는 현재의 북한식 수령제는 결국 그 땅에 사는 다수의 북한인민들에게 크나큰 고통이 됩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죠.


1955년 4월 14일 북한주재 헝가리 대사관에서 헝가리 외무성으로 보고서가 하나 올라갑니다. (보고서 링크)


1955 년은 이미 북한은 김일성 1인독재체제가 공고해지던 시기입니다. 이말이 무슨 말이냐하면 김일성은 아첨꾼에 의해 둘러싸여있고 현장의 목소리는 당 수뇌부에 일체 다다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이 보고서에 보면 기가 막힌 내용이 하나 나옵니다.


아시겠지만, 해방이후 북한이 남한에 비해 도덕적 우위를 점한 이슈 하나가 토지개혁입니다. 남한에 비해 신속하게 이루어진 토지개혁을 통해 북한정부는 농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고 일제시대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이 낮아진 세금(수확물의 23~27%)은 남한의 미군정이 실시한 귀속농지 불하 조건(현물 20% 15년 분납시 자신의 소유가 됨) 보다는 나빴지만 당시 남한의 일반적인 소작료 (소출의 30~40%) 보다는 월등히 유리한 조건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긍정적인 정책인 거죠. 일제시대 고율의 소작료와 비교해 보거나 남한의 일반적 소작조건보다 우월한 조건이니까요. (출처: 정청세, ‘해방후 농지개혁의 사회적 조건과 형성 과정’ 석사학위 논문, 연세대학교 대학원)


그런데 김일성 1인독재가 공고해지면서 해괴망칙한 일이 벌어집니다. 1954년 200만톤에 불과하던 곡물생산량이 졸지에 300만톤으로 과장보고가 됩니다. 이후 소련과 동구권 정부의 지적으로 최종적으로 230만톤으로 곡물통계가 수정이 되기는 했지만, 현장에선 전혀 딴판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말이 뭔말이냐하면 실제 소출량에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있지도 않은 과장된 곡물생산량에 근거해서 세금이 부과되었다는 겁니다. 덕분에 23~27%라는 공식 세율은 허수아비가 되어버리고 일부 지역에선 소출의 50%까지 세금이 부과됩니다. 덕분에 농민들의 자살이 속출하게 되기도 합니다.


북한의 수령이 무슨 신통력이 있는 존재도 아니고 결국 정책을 수행하다보면 사람인 이상 실수도 하고 오류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오류를 누가 지적해주겠습니까? 결국 정치적 반대자들이 총대를 매게되는 거고 그렇다면 정치적 반대자들이 꼭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건 아니죠. 견제라는 것이 결국은 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조건이란 얘기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1인독재체제의 수립과 더불어 정치적 반대자들의 철저한 숙청은 이후 북한 인민들의 삶이 아주 고단한 형태로 바뀌게 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어 버린거죠.


적어도 북한에서 1인독재체제의 성립과 이후 대를 이어 수령의 직위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형태는 북한 민중의 삶의 질을 체계적으로 낮추는 장치가 됩니다.


여기다 대고 "북의 권력구조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이정희 민노당 대표의 발언이나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어가며 "북한세습은 그 자체가 절대악은 아니다."라는 김기협씨의 발언에 정작 북한 인민들을 향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실논리나 현장논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적인 문제들이 난무하는데 이상적인 주장만 붙들고 있어도 곤란하기는 하죠. 하지만 어떤 경우 정말 사안을 길고 깊게 보지 못하면 역사의 흐름속에서 크나큰 판단착오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일제말에 각 학교마다 2명의 학생을 정신대로 보내지 않으면 해당 학교를 폐교하겠다는 방침이 총독부로부터 내려옵니다. 당시 중앙여고 교장이었던 황신덕씨 역시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내죠. (출처) 당시 조선에선 단 1개 학교도 정신대를 보내지 않았다고 폐교된 학교가 없습니다. 상황논리로 보자면 해답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우리 학교 하나 폐교 당한다고 일제의 노동력 착취정책에 0.01%라도 흠집이 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제자들을 설득해서 정신대로 보내는게 정답같아 보이겠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놓고 보면 정답은 결코 상황논리에 있지 않은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번 북한 부자세습 문제의 기준은 북한 인민들의 복지가 우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사의 흐름속에서 길게 본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