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든 복잡하든 모종의 논리를 해체하다보면 n개의 명제로 파편화시킬수 있습니다.
 예들어, A1, A2, ... , An의 명제가 있으면 An의 근거는 An-1, An-1의 근거는 An-2, ... , A2의 근거는 A1이 됩니다.

 이때 A1의 근거를 An이라 두는 논리가 있다면 이때의 그 논리를 가리켜 '순환논리' 라 하며
 과학의 등장으로 비로소 순환논리는, 논리적 오류의 일종에 불과한 것으로 타락합니다. 예들어,

 A3
: 비의 구성성분은 대체로 물이다
 A2 : 비는 한때, 육수였기 때문이다.
 A1 : 육수의 구성성분은 대체로 물이기 때문이다 라면,

 과학에 있어 A1의 근거는 적어도, A3가 아닌 육수의 구성성분에 대한 정량/정성적 화학데이타이어야 합니다.
 순환논리는 육수의 구성성분이 대체로 물인 근거를 비가 내리면 육수가 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과학이 인간의 논리에 기여한 것중 최고는 바로, 형이상학의 늪에서 허우적대었을 A1을 형이하학의 뭍으로 구조해낸거죠
 
 그러나 형이상학의 늪에서 허우적대면서 양서류마냥 형이하학의 뭍에 한다리만 걸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A1을 가리켜 공리(axiom) 라 하며 대부분, 수학의 논리에서 빈번하게 존재합니다.
 사실 과학의 유익함은 우연히도, 공리에 대한 정량/정성적 화학데이타를 제공함에 있기도 하지요.

 현상을 시연할수없는 형이상학은 그래서, 지적유희를 제공하기는하나
 과학과 같은 형이하학처럼 감각의 불만족을 완벽히 충족시켜주지는 못하지요.



 심리학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찜찜함을 접두사 '진화' 만 붙여주면 그 찜찜함이 눈녹듯 제거되지요.
 과학이 종교를 멸시한다기 보다 종교논리의 A1을 공리가 아닌 정량/정성적 화학데이타에 있음을 종교가 보여주기만 한다면
 과학은 종교에서 더이상 감각의 불만족을 청원하지 않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