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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standing Economic Suicide (By Robin Hahnel)

경제적 자살 이해하기 (로빈 하넬)

 

* 출처: <신좌파 프로젝트> / 2012227

http://www.newleftproject.org/index.php/site/print_article/understanding_ecomomic_sui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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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January column I explained that by stonewalling financial regulatory reform and imposing draconian fiscal austerity in the midst of the worst economic recession in eighty years ruling elites in Europe, the US, and Canada have us on track for what amounts to economic suicide, putting the North Atlantic region fast on the road to becoming formerly advanced economies. How can this have happened? Why would our ruling elites engage in such counterproductive policies?

 

1월 컬럼에서 나는 금융 규제 개혁을 방해하고 지난 80년 이래 최악의 경기침체 와중에 가혹한 재정 긴축을 부과하는 것에 의해 유럽, 미국, 그리고 캐나다의 지배 엘리트들은 북대서양 지역을 더 이상 선진적이지 않은 경제들이 되는 길로 신속하게 나아가게 하면서 경제적 자살에 상당하는 것에 이르는 진로 위에 우리를 올려놓았다고 설명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왜 우리의 지배 엘리트들은 그러한 반생산적 정책들을 시행하고자 했을까?

 

Collapse of the Political Center Left

정치적 중도좌파의 붕괴

 

Thatcher and Reagan launched the neoliberal counter revolution against regulated, mildly egalitarian capitalism in the early 1980s. But not until the political center-left had been turned into a willing center-right did the economic policies of the traditional political parties become barely indistinguishable.

 

대처와 레이건은 1980년대 초에 규제되는, 온건 평등주의적인 자본주의에 맞서는 신자유주의적 반혁명에 착수했다. 그러나 정치적 중도 좌파가 자발적인 중도 우파로 변신하기 전까지는 전통적 정당들의 경제 정책들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다.

 

In the US in the 1990s it was the “liberal” Democrat Bill Clinton who “ended welfare as we know it,” pushed Congress to pass NAFTA and bring China into the WTO, and ended any pretence of regulating the financial industry when he signed legislation repealing the Glass-Steagall Act separating high risk investment banking from federally insured commercial banking. Today it is the “liberal” Democrat Barak Obama who pivoted from a woefully inadequate fiscal stimulus in 2009 to offer up social security and Medicare for deficit reduction in 2011. It is Barak Obama who aided and abetted Wall Street’s successful efforts to take the teeth out of the Dodd-Frank Wall Street Financial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 of 2010 before he signed it. And it is Barak Obama who scuttled international negotiations to avert climate change in Copenhagen and opportunistically absented himself from the debate as Congress failed to pass any legislation whatsoever to address climate change.

 

1990년대 미국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복지를 끝낸이는, 나프타(NAFTA)를 가결하도록 의회에 압력을 넣고 중국을 WTO로 끌어들인 이는, 그리고 고() 위험 투자 은행업을 연방정부가 보증을 서는 상업적 은행업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글래스-스티겔 법령을 폐지하는 법안에 서명해 금융산업을 규제한다는 일체의 가장을 벗어던진 이는 리버럴한민주당원 빌 클린턴이었다. 오늘날 2009년의 지독히 부적절한 재정부양책에서 선회해 2011년 적자감축을 위해 사회보장과 노인의료보험제(Medicare)를 걸고넘어진 이는 리버럴한민주당원 버락 오바마이다. 자신이 서명해 발효시키기 전에 2010년의 도드-프랑크 월 스트리트 금융 개혁 및 소비자 보호 법령에서 이빨을 빼려는 월 트리트의 결국 성공했던 노력을 보조하고 선동했던 이는 버락 오바마이다.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한 코펜하겐 국제 협상을 무효화하고 의회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입법에 전적으로 실패했을 때 기회주의적으로 그 논란에서 발을 뺀 이는 버락 오바마이다.

 

The situation is no different in Europe. In Greece it was the Social Democratic government of George Papandreou who imposed fiscal austerity measure after fiscal austerity measure before he was finally forced to resign in November 2011. In Spain it was the Socialist government of Jose Luis Zapatero who presided over one fiscal austerity package after another when the economic crisis broke in 2008 until his party was overwhelmingly voted out of office in December 2011.

 

유럽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리스에서 거듭 재정긴축 조치를 부과한 것은 201111월 마침내 어쩔 수 없이 사임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이끌었던 사회민주당 정부였다. 스페인에서 2008년에 경제위기가 발발했을 때부터 201111월 압도적인 표차로 [중도우파 야당인 국민당에게 - 역자] 패했을 때까지 연달아 일괄적인 재정긴축정책을 시행한 것은 호세 루이스 자파테로가 이끌었던 사회주의 [사회노동당 -역자] 정부였다.

 

It is hardly surprising that Tory Prime Minister David Cameron in the UK and Conservative Prime Minister Stephen Harper in Canada have embraced “blame the victim” fiscal austerity as the policy response long favored by conservative politicians. What has changed over the past decades is the extent to which only rhetoric, but not policies, change when center-left governments replace center-right governments. Now, even when we vote overwhelmingly for “change you can believe in,” what we get instead are the same policies enriching the 1% at the expense of the 99% -- during good times as well as bad. The bottom line is poor and middle class people no longer have a major political party who even attempts to act in their interest anywhere in the North Atlantic region. Center-left political parties now behave as center-right parties used to behave, no matter what kind of populist rhetoric they resort to during election season.

 

영국의 보수당 수상 데이비드 카메론과 캐나다의 보수당 수상 스티븐 하퍼가 희생자에게 책임을 묻는재정긴축을 환영한 것은 하등 놀랍지 않다. 재정긴축은 보수 정치인들이 오랫동안 애호해 온 정책 응답이었으니 말이다. 중도좌파 정부들이 중도우파 정부들을 대체해 온 지난 몇 십 년 동안 변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수사(修辭)이다. 압도적 다수가 믿을 수 있는 변화를 위해 표를 던지는 현시점에서조차도 우리가 대신 얻는 것은 호경기 동안이든 불경기 동안이든 99%를 희생하고 1%를 부유하게 하는 바로 그 같은 정책이다. 확고부동한 사실은 북대서양 지역 어디에서든 빈자들과 중간계급 성원들은 그들의 이해관심을 대변하려는 시도를 하는 주요 정당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중도좌파 정당들은 이제 노회한 중도우파 정당들처럼 행동한다. 선거기간 동안 어떤 종류의 포퓰리즘적 수사에 의지하든 그렇다.

 

Multinational Corporations No Longer Care

다국적 기업들은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

 

But if I am correct that failure to enact meaningful financial reform and launch a massive fiscal stimulus will doom the formerly advanced economies in the North Atlantic to stagnation and decline relative to other regions, why are our major corporations fouling their own nest? Part of the answer is blind free market ideology. Part of the answer is an economics profession that has studiously unlearned lessons taught by the greatest economist of the twentieth century, John Maynard Keynes. And part of the answer is insatiable greed run amuck. But beyond all these contributing factors lies a more fundamental answer to the conundrum: The nest they are fouling is still our nest, but no longer theirs.

 

그러나 유의미한 금융개혁이 실행되고 대규모 재정부양이 개시되지 않을 경우 북대서양 지역의 이전 선진 경제들이 정체에 빠지고 다른 지역 경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쇠퇴하리라는 내 분석이 틀림없다면, 왜 우리의 주요 기업들은 그들 자신의 둥지를 망치는가? 답의 일부는 맹목적인 자유시장 이데올로기이다. 답의 일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가르침을 고의로 염두에서 지워버린 경제학자들이다. 답의 일부는 미친 듯이 설치는 탐욕이다. 그러나 이 모든 기여 요인들 너머에 그 수수께끼에 대한 더 근본적인 답이 있다: 그들이 망치고 있는 둥지는 아직 우리의 둥지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그들 자신의 둥지는 아니다.

 

Thanks to three decades of corporate sponsored globalization supported by both center right and center left parties -- giant corporations are now free to (1) locate production wherever wages, labor standards, environmental standards, and corporate taxes are lowest, (2) sell products produced elsewhere in the high income markets of the North Atlantic region, (3) collect royalties on “intellectual properties” from every corner of the globe, (4) leverage their global lending business through the roof with a guaranteed taxpayer bailout in their back pocket whenever a financial crisis threatens, and last, but not least, (5) rely on an overwhelming military force paid for by the American taxpayer to squash any who dare to threaten to take any of these “freedoms” away from them. So what if the North Atlantic region declines in relative economic power? So what if the middle classes in Europe and North America shrink to the size of middle classes in the rest of the world? So what if the dream that one’s children will have better economic lives dies for the 99%?

 

일사불란한 후원을 받은 -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양자 모두에 의해 지원받은 - 30년에 걸친 세계화 덕분에, 거대 기업들은 이제 (1) 임금, 노동 기준, 환경기준, 그리고 법인세가 가장 낮은 어디든지 간에 자유롭게 소재할 수 있으며 (2) 생산된 제품들을 북대서양 지역의 고소득 시장들 어디에서든 판매할 수 있으며 (3) 지구 구석구석으로부터 지적 재산권에 따른 로열티를 챙기며 (4) 금융위기가 위협할 때마다 뒷주머니로 납세자 긴급구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증과 더불어 세계 곳곳에서 차입 자본으로 최고 한도까지 투기적 대부사업을 벌이며 (5) 감히 이 자유들중 어느 한 가지라도 그들로부터 박탈하려고 위협하는 어느 세력이라도 박살내기 위해 미국 납세자들이 비용을 대는 압도적 군사력에 의지한다. 상대적 경제력 면에서 북대서양 지역이 쇠퇴한다 하더라도 그게 대수인가? 유럽과 북미의 중간계급들이 나머지 세계의 중간계급들 규모로 축소된다 하더라도 그게 대수인가? 99%에 속한 아이들이 더 나은 경제적 삶을 살 것이라는 꿈이 깨진다 하더라도 그게 대수인가?

 

The future for the 1% and their children looks very bright indeed. They pay less in taxes than ever before. Because their fortunes no longer depend on one region alone, their income and wealth continue to rise spectacularly even while the North American region stagnates. The educational and healthcare systems that are falling apart are not services they and their children use. The jobs that are no longer there for many in the 99% are of no concern to those whose only “work” is to manage their own assets. The 1% now enjoys the loyal political services not only of right wing and center-right political parties, but of formerly center-left parties as well. With military drafts a distant memory, they need not fear that any hostility that proves “necessary” might inadvertently claim the life of one of their own children. In short, they are not fouling their own nest at all. Their nest never looked better.

 

1%와 그들의 아이들의 미래는 정말이지 아주 밝아 보인다. 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세금을 적게 낸다. 그들의 운은 더 이상 한 지역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소득과 부는 북 아메리카 지역이 정체하는 동안조차도 계속 쭉쭉 치솟는다. 산산 조각나고 있는 교육 및 보건 시스템들은 그들과 그들의 아이들이 이용하는 서비스들이 아니다. 99%의 다수가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된 일자리들은 유일하게 하는 이 자신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것인 이들에게는 아무런 관심거리도 못된다. 1%는 이제 우파 및 중도좌파 정당들의 충성스러운 정치 서비스만이 아니라 이전의 중도좌파 정당들의 충성스러운 정치 서비스 또한 받는다. 징병제는 먼 옛날 일이 되었기에, 그들은 필요한 것으로증명되는 어떤 적대 세력이 뜻하지 않게 그들 자신의 아이들 중 하나의 생명을 앗아갈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요약하면, 그들은 결코 그들 자신의 둥지를 망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둥지가 지금보다 더 좋았던 적은 없다.

 

Of course sometimes privileged elites discover too late that by over reaching they drove those whose interests they trample to revolt. In which case, with hindsight, we might say some day that they fouled their own nest. But short of losing power, only if global warming and climate change proves to be the rising tide that engulfs all boats does the present behavior of our ruling elites risk fouling their own nest along with ours.

 

물론 때때로 특권 엘리트들은 과도한 압박을 가함으로써 그들이 그들에 의해 이해관심이 짓뭉개진 이들을 반란으로 내몰았음을 너무 늦게 발견한다. 그 경우, 지난 일에서 얻은 통찰력으로, 우리는 언젠가 그들이 그들 자신의 둥지를 망쳤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을 잃지는 않더라도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가 모든 배들을 가라앉히는 상승조류임이 증명되기만 하면 우리 지배 엘리트들의 현재의 행동은 우리의 둥지와 더불어 그들 자신의 둥지도 망치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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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Hahnel is Professor of Economics at Portland State University. His most recent book is Economic Justice and Democracy and he is co-author with Michael Albert of The Political Economy of Participatory Economics. This column originally appeared in Portland's 'Street Roots' newspaper and exclusively available online at NLP.

  

로빈 하넬은 포틀랜드 주립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이다. 그는 최근 <경제적 정의와 민주주의>를 출간했으며 마이클 알버트와 <참여적 경제학의 정치경제>을 공저하기도 했다. 이 컬럼은 포틀랜드의 스트리트 루트신문에 처음 실렸으며 온라인상에서는 <신좌파 프로젝트>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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