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노릇을 잘 하려면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사람은 바보노릇을 할 만큼 지혜롭도다.      - 셰익스피어. <12야> 중에서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네. 백치, 얼간이, 바보, 미치광이........ 이렇게 네 종류가.......”


“......우리는 때로는 백치가 되기도 하고, 얼간이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하고, 미치광이가 되기도 하는 것일세. 정상인이란, 이 네 가지 구성 요소 혹은 이상형이 아주 적당하게 뒤섞인 인간이라고.”

“천재는 다른 구성 요소를 연료로 삼으면서 한 가지 요소를 기막히게 사용하는 사람이지......”


“....... 백치는 말을 하지 않아. 더듬더듬, 우물쭈물........ 아이스크림 콘을 이마에 처바르는 자. 회전문을 반대쪽으로 쳐들어가는 자....... 이게 다 그런 백치야.”


“...........얼간이는 술잔 밖에서 말을 하는 멍텅구리들이야.”  “...............얼간이는 술잔 속에 든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게 안 돼.......... 가령, 마누라 도망친 사람에게 자기 마누라 예쁘다는 자랑이나 늘어놓는 자가 바로 얼간이야.”(나도 그런 적이 몇 번....... ㅠ.ㅠ)


“얼간이의 수요는 폭발적이야. 특히 사교계에는........ 얼간이 중에서도 적극적인 유형은 외교관이 돼.”


“응, 바보...... 바보의 행동에는 절대 틀림이 없어. 단지 판단을 틀리게 했으면 했지. 개는 다 애완 동물이다, 개는 다 짖는다, 고양이는 애완동물이다, 그러므로 고양이도 짖는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들이 바로 바보야.”


“........바보가 옳은 소리를 하는 것도 좋은데, 문제는 이것이 엉터리 추론의 결과라는 데 있네.”(그러니까 우연의 일치라는 이야기......)


“........그러니까 가령 성 안셀르무스의 존재론적 논증은 바보의 논증이었던 거군요. 그는 하느님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의 존재 문제를 비롯,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존재라고 믿으므로..... 이렇게 논증했지요. 이 성인은 사고 속에서의 존재와 현실 속에서의 존재를 혼동하고 있는 거지요.”


“암, 고닐롱의 논박 역시 바보의 논박이었어. 섬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나는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섬을 생각할 수 있다..... 고닐롱은 우연히 생각하게 되는 것과 필요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을 혼동하고 있었네.”


“바보들의 결투인가요?”


“그렇고말고. 하느님은 바보들 노는 꼴이 되게 재미있었을 거라. 하느님은 안셀르무스와 고닐롱이 바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은 논증 불가능 쪽을 선택했던 것이네.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 하느님이 당신의 의지를 드러낸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우주적인 바보들의 가면을 벗기는 것이었네.”


“요컨대 도처에 바보들이군요?”


“나와 당신을 제외하면 모두 다 바보야. 당신만 제외한다고 해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 미치광이는 식별이 쉬워. 미치광이는 요령을 모르는 바보라고. 바보는 자기 논제를 증명해 낼 수 있네. 아무리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인 것이라도 바보에게는 나름의 논리라는 것이 있거든. 하지만 미치광이는 논리에는 하등 관심이 없어. 단견으로 만사를 해결할 뿐. 미치광이는 이것으로 저것을 증명하고 저것으로 이것을 증명하네(이른바 순환논리군요). 미치광이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만나는 것이 무엇이든 그 광기로 확증하고 말아. 미치광이 식별은 간단해. 상식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자, 섬광과 같은 영감에 지나치게 기대는 자, 게다가 성당 기사단 문제를 들고 나온다면 틀림없는 미치광이지.” (이런, 까소봉처럼 한 동안 성당기사단문제에 매달렸었는데.........)

                   

                     -움베로토 에코, <푸코의 추> 중 벨보와 까소봉의 대화에서 발췌


대략 살펴보면 나는 얼간이와 바보를 섞은 유형이군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유형의 인간은 바보와 미치광이가 섞인 유형일 것 같아요. 바보처럼 논리를 휘저으면서 사실은 일관된 논리도 없는 인간. 히틀러나 부시같은 인간이 저렇게 나온 것 같습니다. 바보와 미치광이를 섞는 비율에 따라 뭇솔리니도 히로히토도, 조갑제도 지만원도 나올 것 같군요.


바보에 대하여 마크 헤드슬은 멋진 말을 남긴 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는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물론 사람들은 이것을 비밀로 감추지. 세련된 가면과 제복으로 감추고 살지. 바보라는 이런 내적인 이미지에 접근해 보려는 사람은 거의 없네. 그러다가 진짜로 바보로 드러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백치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네.................”

                 마크 헤드슬 <젤라토르> 에필로그에서 오베이슨과의 대화 중에서 발췌


우리 모두는 사실 바보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백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과 저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당신만 제외해도 전 괜찮습니다.


P.S. 며칠 전에 이 부분을 발췌해서 긴 글을 적었는데 우리 애기가 뭔가를 건드리는 순간 몽땅 사라졌습니다. 기억을 재구성해서 대충 적었는데 귀차니즘과 업무의 압박으로 제 주장부분은 대부분 생략했습니다. 늘 저장하면서 글 쓰다가 왜 하필 그 순간은 안 그랬을까.......... 그 글은 우주 저편으로 사라질 운명이었나 봅니다. 혹은 하느님이 아직은 밝히고 싶지 않은 창조의 비밀이 담겨 있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