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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신앙생활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이 머리속에서 생각을 정지시키는 기도법을 전수 받은 것입니다. 예전에는 주리장창 제가 하고 싶은 기도만 했는데 어느날 아는 분께서 머리속을 비우는 기도를 권해 주시더군요. 그러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기도법입니다.
이게 뭐냐하면.... 그야말로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의식은 살아 있는데 말이죠. 처음에는 5초도 하지 못했죠. 무슨 잡념이 그리 많던지....
그런데 이걸 꾸준히 하면서 기도중 하나님과의 교류(communication)에 눈을 뜨게 되었답니다. 소위 쌍방향 의사소통이죠. 내 생각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를 하는.....내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하나님의 뜻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그러면 정말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비신자들에게 황당한 얘기겠지만 예수쟁이들은 이런 식의 영성생활을 한답니다.

다른 명상 프로그램은 시도해 본 적이 없어서.. 누가 경험이 있으면 공유해 주시면 좋을텐데....
양깡님의 '전도를 하려면 이렇게' 를 읽고
http://crete.pe.kr/9919
수련법도 비슷한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해 봤습니다만 코지토님께서 이렇게 장담을 해 주시니...^^
부디 이번 미신 논쟁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서로의 입장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냥 자기 입장만 계속 강조하기 보다는 상대방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입장을 갖고 있는지에 약간의 관심도를 높이면 어떨가 하는....
제가 경험한 명상수련을 비유적(도랑치고 가재 잡는 속담)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뇌의식은 도랑을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시시각각 많은 정보가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갑니다.
이때 물에 섞여 있는 흙먼지나 돌멩이들은 도랑에 가라 앉게 되고 이로 인해 도랑의 폭이 좁아져서 물(정보)의 유입이 조금만 많아져도 도랑물이 넘쳐버리게 됩니다. 동맥경화가 발생합니다.
도랑 자체를 흔드는 정신적 육체적 자극이 주어지면, 도랑 밑에 가라앉아 있던 흙먼지와 돌멩이들이 들고 일어나서 도랑물이 순간적으로 흙탕물이 됩니다.
이때에도 여전히 물은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가고 있기 때문에 들고 일어난 흙먼지와 돌멩이들이 물에 휩쓸려 떠 내려가고 나면, 도랑의 깊이는 이전보다 더 넓어집니다.
등산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 도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봅니다.
혼자서 조용히 등산을 하면, 육체적인 자극과 동시에 온갖 잡생각들이 떠 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리도 변한 것이 없고
다만 현실에 맞게 텍스트를 수정한 것 뿐이지요
당시 남성 우위 사회에서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제 남성이었기에 나온 말이지만
이제 그 말씀을 듣는 우리들은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으며 현실에서 남녀 평등이 일상화 되었기에
어차피 성서 번역이란 그 시대의 언어와 현실에 맞추는 것이라서
킹 제임스 같은 것은 고대 영어들이 많이 있고 그런 문법이나 단어 사용도 많으니
우리 한글로 치자면 이런 것이지요
나랏말쌈이 듕궉에 달아 뭐
그러니 이걸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이런식으로
설교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고 부목사일 경우에도 차별없이 설교 시킵니다
아니면 개척교회나 시골교회 담임목사일 경우에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웬만한 규모의 교회에서는 여자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지를 않지요
같은 부목사라도 남자들보다 아무래도 중요한 일을 덜 맡긴다고 봐야지요
그래도 여자장로도 생기면서 상급기관인 노회나 총회에 대의원으로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건 우리 국민들이나 신자들의 의식의 문제와 연관된 것이라서 하루아침에는 개선이 안될 것이고
어느종교나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서 교회역시 신자들의 의식이 그 종교의 가르침의 핵심을 이해하고 따르기보다는 전통적 문화의 관습을 더 따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게 한국 교회 최대의 약점이지요
뭐 목회자들도 이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봅니다
예수의 실체논쟁을 떠나서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중 실천하기 무지 어려운것 말고도 쉬운것도 제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한국교회가 그런점에서는 살을 빼야 하는데 본래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갈라져나와서 통제가 안됩니다
목사 수급을 줄이고 교인도 멤버십을 강화할 필요도 있고 목사의 신분을 좀더 보장해서 성경대로 설교하고 교회를 운영해도 교인들에게 배척을 안받을 조건이 되야 하는것이지요

제가 요즘 성경 읽다가 본 부분인데,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나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조용해야 합니다.
사실, 아담이 먼저 지으심을 받고, 그 다음에 하와가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디모데 전서 2:12-13)
이 말은 옳습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면, 그는 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난폭하지 아니하고 너그러우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디모데 전서 3:1-4)
이 부분에 의하면 여성의 안수가 허용이 안될것 같은데요.
굳이 다른 구절을 붙이면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3:28)
같은게 있는것 같기는 한데, 이걸 사용하기에는 좀 모자란것 같아서요.
동의하지 않을 분들이 많겠지만, 기독교 불교 유교 등 보편종교에서 '윤리', '자기수양'적 측면을 빼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로서의 매력을 상실해 버리기도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기독교에서는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술/담배를 (꾹 참고) 가급적 하지 말라고 권한다고 하던데 (자기절제를 권장하는거죠), 만약 이와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면 신자들 및 잠재신자들은 오히려 '실망'할 겁니다.

'윤리'와 '자기절제'가 종교의 매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성숙한 인간이라면,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윤리가 나오고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에서 종교를 통하지 않고서도 자기절제를 할 수 이 있을것입니다. 뭐, 아직 인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서, 죽어서 육신이 살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이런걸 지켜야 한다고 강제되어지는걸 원할지 모르지만, 그런것 없이도 충분히 윤리와 자기수양 혹은 자기절제는 이룰 수 있습니다. 진짜 종교의 매력은 유교의 경우는 좀 다르기는 하지만, 사후 세계에 대한 보상일뿐입니다. 현실세계에서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 사이에 윤리와 자기절제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을지 의심스러워요. 제가 본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과 비교해서 조금도 더 윤리적이지 않으며 조금도 더 자기절제를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종교인들이 자신은 더 윤리적이며 자기절제를 더 한다는 착각을 심어주는데 종교가 기여하기때문에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시는거라면 그런 측면에서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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