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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짤방은 볼테르의 초상화입니다....>


이글은 미디어몹(미디어몹이 다소 돌아 갑니다. 놀랍네요..... 완전 적자일텐데... 정말 술 한잔 사고 모금운동이라도 한번 해야할 듯 합니다^^:)에서 반기독교 운동을 하시는 음냐리님의 글에 대한 보론적 성격의 글입니다. 제 글도 뒤져 보니 기독교, 특히 개신교인들의 거짓말에 대한 글들이 좀 있군요. 나중에 하나 하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독교인, 특히 개신교인은 자신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기 때문에 그 옳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반복해서 계속 거짓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버릇 고치지 못한다면 개신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종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볼테르에 대한 기독교의 거짓말


음냐리님의 포스팅<기독교인의 글을 믿지말라!>에 몇 가지 덧붙일 것이 있어 포스팅합니다. 이 밖에도 <김홍도목사의 볼테르 거짓말들>이나  <볼테르에 대한 거짓말들>을 참조해도 좋습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학자요 무신론자인 '볼테르'는 임종이 가까워지자 부인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소. 내 생명이 6개월만 연장된다면 나는 내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절반을 내 놓겠소. 나는 이제 그만 두렵고 떨리는 지옥으로 가게 되었소. 당신도 가게 될는지 모르오." 그리고 임종 때에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리스도여, 나를 도와주소서." 평생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버림을 받고 인생의 마지막 때에 이렇게 부르짖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음냐리님이 인용한 임한창 국민일보종교부장의 이 글은 물론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우선 볼테르는 생애 전반에 걸쳐 무신론, 혹은 유물론을 지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볼테르는 <이신론(理神論)>을 믿었습니다. 신은 이성적으로 자연계를 건설한 후 세계의 규칙에 개입하지 않으며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이 자연의 법칙을 알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이신론은 영국, 독일의 경우 대체적으로 가톨릭이나 성공회와 큰 마찰 없이 잘 지냈습니다. 가톨릭 성사에 대해 비판을 가했지만 비교적 온건한 어조였고 가톨릭 분파 내에서도 이신론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앙시엥 레짐과 결탁한 성직자의 부패가 심했고 혁명을 불러 올 만큼 사회적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볼테르는 종교적 똘레랑스를 강력하게 주창했고 평생에 걸쳐 이 신념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볼테르는 노동자와 농노의 입장을 옹호했으므로 프랑스 내 가톨릭의 행태를 곱게 봐 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영향으로 프랑스의 이신론자들은 대단히 공격적이었고 특히 볼테르는 "분별력을 가진 모든 인간, 모든 선량한 사람은 그리스도교 분파가 계속해서 공포에 사로잡혀 있도록 끊임없이 공격해야 한다"라는 다소 과격한 논조로 신랄한 비판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런 볼테르가 위 인용문과 같은 형태의 전향을 하였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이런 거짓말의 근거가 될만한 사건이 두가지  있었습니다. 

그 한 가지는 볼테르의 프리메이슨 입단입니다.

프랑스 왕실과 여러 번 불화가 있었고 교회와는 심각한 갈등을 가졌던 볼테르는 28년만인 1778년 2월 10일 <이렌>의 리허설에 참가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옵니다. 두 달 후, 이미 심각하게 건강이 악화된 볼테르는 대부 코르디에 생 피르맹 신부의 손에 이끌려 1778년 4월 8일 ‘아홉 자매’라는 지부(Lodge)에서 입단합니다. 가톨릭을 비판하면서 프리메이슨 역시 가톨릭과 다름없는 우민화 사상이라고 비난을 퍼붓던 볼테르가 프리메이슨에 입단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프리메이슨의 기본적인 사상 조류가 이신론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전혀 ‘전향’이라고 불릴만한 사건은 아닙니다. 당시 프랑스의 프리메이슨이 유독 가톨릭성향이 강했던 탓에 볼테르는 두 사상의 변별성을 구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은 신, 절대자를 “우주의 위대한 건축가”라고 생각합니다. 이신론에서는 신을 “질서정연한 우주의 합리적 건축자로서의 신(神)”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양자의 명칭에서 보듯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사실은 아마도 그의 장례와 매장에 관한 것일 겁니다.

볼테르는 프리메이슨에 입단한 다음 달인 5월 30일 사망합니다. 그의 사망에 입회한 미뇨신부(사실 볼테르의 조카입니다)는 볼테르의 장례를 정통 가톨릭의 의전으로 치루었고 유해를 셀리에르 수도원에 가톨릭 식으로 안장합니다.

이 두 사실이 평소 언행과 잘 맞지 않는다고 몇몇 사람들이 생각했을 것이고 그러한 의문이 “볼테르는 죽기 전에 전향했다”라는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증언에 따르면 볼테르는 입단시에 이미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심각하게 노쇠해 있었다고 합니다. <이렌>의 리허설에서 대중의 열광적인 찬사에 몹시 흥분했었고 이 흥분이 그의 건강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미 전향과 비전향의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죽은 후에도 가톨릭은 볼테르를 축복하기를 공식적으로 거부했고 ‘아홉 자매’지부는 이에 항의해 대중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만일 볼테르가 정식으로 가톨릭으로 전향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생 피르맹 신부는 볼테르의 입단식에서 다음과 같은 환영사를 합니다.

“존경하는 형제여, 당신은 그 칭호를 받기 전에 이미 프리메이슨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 손으로 그 의무 서약을 체결하기 전에 벌써 프리메이슨이 지켜야 할 의무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신론 사상과 프리메이슨 사상의 유사성, 그리고 종교적 관용성과 합리성에 대한 프리메이슨의 지지가 위와 같은 환영사를 있게 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