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대한 온갖 정의가 있다. 나는 “초자연적이고 초인적인 존재 즉 신에 대한 믿음”을 종교의 핵심 특정으로 보고 논의를 이어갈 생각이다.

 

 

 

종교가 과학과 전혀 마찰 없이 공존할 수 있는가? 나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는 일관된 이신론(또는 범신론)은 과학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현대 물리학과 쇼펜하우어와 약간의 유머(또는 신성모독)를 결합하여 이신론을 하나 만들어보자. 이 이신론에 따르면 신은 빅뱅을 일으킨 후 곧바로 자살했다. 신은 물리 법칙을 교묘하게 설계함으로써 결국 인간과 같은 지적 생명이 진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지만 자살을 했기 때문에 우주의 역사 또는 생명의 역사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빅뱅 이후에는 우주의 모든 것이 신이 설계한 물리 법칙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런 이신론은 과학과 충돌할 것이 하나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신론이 교묘한 물리 법칙이라는 우주의 신비를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이것을 설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신이 교묘한 물리 법칙을 설계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면 아마 신은 우주보다 더 교묘하게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어떻게 생겼나?

 

누군가가 메타-신이 신을 만든 후 자살했다는 메타-이신론을 주창한다고 하자. 어떤 사람은 신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냥 이신론에 비해 메타-이신론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하는가? 만약 메타-이신론이 그냥 이신론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고 본다면 이신론이 “우주는 그냥 존재한다”고 보는 무신론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메타-이신론에 비해 메타-메타-이신론(메타-메타-신이 메타-신을 창조한 후 자살했으며, 메타-신이 신을 창조한 후 자살했으며, 신이 우주를 창조한 후 자살했다)이 나을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신론은 쓸모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과학과 양립 가능하다. 하지만 이신론은 인류의 종교 생활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극소수만 일관된 이신론을 믿었다. 자칭 이신론자들과 범신론자들 대부분은 아인슈타인만큼 일관되지 못했으며 이런저런 식으로 “우주의 역사나 인간 생활에 개입하는 신”으로 회귀했다.

 

사실상 아무도 믿지 않는 일관된 이신론이 과학과 양립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실제 종교에 대한 토론에서 거의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냥 이론적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에 불과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에 따르면 종교는 인생의 의미나 도덕에 대해 다루며 과학은 현상 설명을 다루기 때문에 서로 교권이 다르다. 그에 따르면 가끔 몰지각한 종교인이 과학에 시비를 걸 뿐이다. 나는 굴드의 종교론을 비판한 적이 있다.

 

종교에 대한 스티븐 제이 굴드의 헛소리 - Rocks of Ages』 비판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C80/17

 

아인슈타인과 같은 아주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종교인들은 개입하는 신을 믿는다. 신의 개입은 물리 법칙의 일시 정지를 뜻하며 이것은 보통 기적으로 불린다. 과학자들을 물리 법칙이 일시 정지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에 종교와 과학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개입하는 신은 곧 기적을 뜻한다. 종교인이 기도를 하는 이유는 신의 개입을 바라기 때문이다. 기도-개입-기적은 삼위일체다. 이 삼위일체를 빼면 사실상 아무도 믿지 않는 일관된 이신론이 되어버린다.

 

 

 

개입하는 신은 기독교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진화에 개입해서 인간과 같은 교묘한 생물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지적 설계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기도를 들어주어서 소원 성취를 해 준다는 믿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예수나 다른 성자의 온갖 기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를 벌하는 심판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이 이 모든 것들을 다 믿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신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고 어떤 사람은 지적 설계론을 믿는다. 어떤 사람은 예수의 기적은 믿지만 20세기 성자의 기적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신의 개입을 전혀 믿지 않은 기독교인은 사실상 없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 핵심적 자리를 차지하는 예수의 기적을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다. 예수의 기적을 부정해 버리면 신약 성경이 매우 우스워진다. 예수가 사기꾼이 되거나, 예수는 실존 인물이 아니거나, 예수의 이야기를 제자들이 완전히 엉터리로 각색해서 성경을 쓴 것이 되어 버린다.

 

 

 

일관된 이신론자는 신의 성격을 알 수가 없다. 신이 동성애에 반대하는지 여부도, 신이 김태희보다 옥동자를 더 예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도, 신이 새디스트인지 여부도 알 수가 없다. 그냥 신이 우주를 창조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일관된 이신론은 공허하다. 신이 개입하지도 않기 때문에 신과 소통하는 것이 의미가 없으며 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현실 종교는 그렇게 공허하지 않다. 현실 종교인은 신의 성격에 대해 온갖 것들을 믿는다. 예컨대 기독교의 신은 선하고, 정의롭고,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다. 구약에 따르면 신은 동성애를 혐오하며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마구 죽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독교인은 신이 동성애를 혐오한다고 생각하며 어떤 기독교인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모든 기독교인은 신의 성격은 이러저러하다고 생각한다. 우주를 창조할 정도로 대단하다는 점을 빼면 신의 다른 특성은 전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을 본 적이 있는가?

 

도대체 신의 성격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또 미신이 파고든다. 경전이 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거나 꿈에서 들은 이야기가 신의 말씀이라는 식이다. 경전이 신의 말씀이라는 믿음은 성경에 대한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탐구와 모순될 수밖에 없다.

 

 

 

개입하는 신을 믿으며 신의 성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인은 과학의 교권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종교인이 신과 관련하여 과학의 교권에 개입하면 비합리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개입하는 신을 믿으면 물리 법칙의 일시 정지를 믿을 수밖에 없다. 신의 성격을 알아내려면 경전이나 선지자에 대한 비합리적인 믿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일관된 이신론과 같은 매우 공허하며 사실상 아무도 믿지 않는 종교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진짜 종교인들이 믿는 종교는 그 본성상 온갖 미신적 믿음들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미신은 종교의 붙박이 장롱과 같다. 덜 미신적인 종교인과 더 미신적인 종교인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종교인은 양자택일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편에는 미신으로 득실거리지만 소통이 가능한 신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과학과 완전히 양립 가능하지만 신이라는 이름만 있을 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허한 이신론의 신이 있다. 아인슈타인과 같이 매우 특수한 인간만 이신론의 신을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종교인은 자신의 곁에서 든든한 반석이 되어줄 수 있는 신을 원한다. 그리고 신이 자살하지 않고 자신의 곁에 있는 이상 그 종교인은 미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요컨대, 신이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자살이다. 그리고 현실 종교인들의 마음 속에서는 신이 자살하지 않았다.

 

 

 

이덕하

2012-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