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원래 공격적인가? 인간은 원래 폭력적인가? 공격성은 인간 본성인가? 폭력성은 인간 본성인가? 공격성은 본능인가? 폭력성은 본능인가? 나는 이런 질문들이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공격적인 동물인지 평화적인 동물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인간이 큰 동물인지 작은 동물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토끼보다는 크지만 기린보다는 작다.

 

공격성 개념과 폭력성 개념은 심리 기제의 수준에서 가설을 세우기에는 너무나 모호하다. 더 명료하고 검증 가능한 가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공격성이나 폭력성과는 다른 개념들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공격성이나 폭력성과 관련된 온갖 가설들(또는 질문들)을 제시할 것이다.

 

 

 

1. 분노 기제가 진화했는가?

 

나는 기쁨, 슬픔, 분노, 공포 등과 같은 기제들이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쁨과 슬픔이 번식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노와 공포의 기능은 뻔해 보인다. 공포 기제는 긴급한 위험에 대처하도록 만든다. 분노 기제는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위협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게 만든다.

 

 

 

2. 폭행 기제가 진화했는가?

 

나는 폭행 기제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린 아기들도 상대방에게 화가 나면 물거나 때린다. 이런 행동은 배우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부모는 보통 폭행을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폭행을 못 하도록 혼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화가 나면 상대방을 때린다.

 

인간(그리고 온갖 종의 동물들)의 폭행 기제는 분노 기제로부터 정보를 입력 받도록 설계된 것 같다.

 

폭행 기제나 그와 비슷한 기제를 가정하지 않으면 아주 어린 아이들이 더 화가 나면 더 세게 때리는 현상을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이 더 세게 때려서 자신의 분노를 더 크게 표출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식의 추론을 할 수는 없어 보인다. 폭행 기제가 없다고 가정하고, 그럴 듯한 설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라.

 

 

 

3. 살인 기제가 진화했는가?

 

일반적인 폭행은 분노 표출이나 힘 과시가 목적이다. 이런 폭행의 경우에는 눈을 찌르거나 절벽에서 밀어 버리는 것과 같은 치명적인 공격을 삼간다. 반면 살인의 경우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일반적인 폭행 기제와는 구분되는 살인 기제가 진화했을 가능성도 꽤 있다고 생각한다. 수컷 침팬지의 경우 집단 내에서 서열 싸움을 벌일 때와 다른 집단 구성원과 싸울 때 매우 다르게 행동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폭행에 머무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침팬지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폭행 기제와는 구분되는 살해 기제가 진화한 것 같다. 침팬지에게 살해 기제가 진화했다면 인간의 경우에도 살인 기제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David Buss는 살인 기제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웃집 살인마: 진화 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 데이비드 버스 지음, 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4. 사냥 기제가 진화했는가?

 

사냥에서는 다른 동물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이것도 공격이라면 공격이고, 폭행이라면 폭행이다. 사자와 같은 동물의 경우 사냥 기제가 진화한 것 같다. 인간도 오랜 기간 사냥을 하면서 진화했기 때문에 사냥 기제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꽤 있다.

 

어쩌면 사냥 기제는 남자에게만 발달(development, 발생)하는지도 모른다. 사자의 경우에는 암컷과 수컷이 모두 사냥을 하는 반면 인간의 경우 남자만 사냥을 한다. 사냥 기제가 남자의 경우에만 발달하기 때문에 스포츠 사냥을 즐기는 사람이 거의 남자인지도 모른다.

 

 

 

5. 싸움 기제가 진화했는가?

 

폭행 기제의 기능이 상대방을 아프거나 다치게 하는 것이라면 싸움 기제의 기능은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폭행에 비해 싸움에는 기술이 많이 필요하다.

 

나는 싸움 기제 또는 싸움 학습 기제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자 아이들은 싸움과 비슷한 놀이를 즐기는데 싸움 학습 기제의 작동 때문인 것 같다.

 

 

 

6. 괴롭히기 기제가 진화했는가?

 

폭행 기제는 상대방을 육체적으로 아프게 한다. 반면 괴롭히기 기제는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을 괴롭게 만든다. 인간의 경우에는 언어 폭력으로도 상대방을 엄청나게 괴롭게 만들 수 있다.

 

괴롭히기는 상대방을 굴복시키거나 상대방에게 보복하기에 유용하다. 인간은 대체로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자신도 기분이 상한다. 하지만 보복의 맥락에서는 통쾌해 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이트는 가학을 통해 쾌락을 얻는 것을 성과 연결시키면서 괴상한 이론을 만들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보복의 맥락에서 가학을 통해 쾌락을 얻는 것은 적응적인 것으로 보인다.

 

 

 

7. 남자는 여자에 비해 선천적으로 더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가?

 

이 문제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꽤 많이 연구했다. 이론적으로 볼 때 남자가 여자에 비해 더 공격적이나 폭력적이 되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남자는 싸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여자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포유류의 경우에는 높은 지위를 얻는 수컷이 수 많은 암컷들을 임신시킬 가능성이 있는 반면 암컷은 아무리 많은 수컷들과 성교를 해도 자신의 자궁에 의해 자식 수가 제한된다. 따라서 수컷은 부상 당하거나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수컷과 싸울 이유가 암컷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그리고 실제로 거의 모든 포유류 종에서 수컷이 암컷에 비해 더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다. 인간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덕하

2012-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