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을 복기하다 새삼 깨달은 것은 박근혜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주도면밀하고 전략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령 손수조 공천이 그렇습니다. 박근혜는 사상구에 손수조를 던지며 그야말로 일거삼득, 전문용어로 일타삼피를 거뒀습니다.
 
가장 먼저는 새누리당의 면모쇄신. 가령 민통당에선 슈스케 방식으로 20대 국회의원을 선출하겠다고 나왔지만 손수조 한방에 빛이 바랬습니다. 민주당의 슈스케는 결국 당내 인사 공천으로 귀결되면서 김이 새버린 반면(가령 저와 피노키오님은 청년 유니온 김영경이 되길 바랐지만 결과는 본선진출조차 못했죠. 그때 제 느낌은 '뭐야, 들러리만 시켰네'였습니다) 박근혜는 사상구의 현역 의원들을 주저앉히는 괴력을 발휘하며 손수조를 공천함으로써 일거에 이미지를 쇄신해버렸죠. 간단히 말해 민주당의 슈스케는 당내 인사 공천용 쑈로 전락한 반면 새누리당은 현역의원의 희생을 통해 20대의 상징으로 손수조를 부각시킨 셈입니다. 두번째로는 공천하자마자 사상구 손수조 지원유세를 통해 부산 경남에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다음 대통령으로 날 선택할 것인가, 민통당을 선택할 것인가?' 어영부영 지역일꾼 뽑기니 뭐니가 아니라 바로 본선행 직구를 던져 자신을 선택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TK는 물론 부산경남까지 박근혜 영역으로 확인됐죠. 세번째로는 문재인을 묶어버렸습니다. 문재인 입장에서 손수조는 정말 돌아버리는 카드였을 겁니다. 이기긴 이기되 크게 이기지 않으면 안되는, 그렇다고 대놓고 공격했다간 자신이 정치 신인급이 되버리는 참으로 얄미운 후보. 반면 박근혜는 손수조를 통해 자신의 영향력만 확인시키면 됩니다. 결과는 박근혜의 의도대로 되었습니다. 민통당에선 이번에 당선된 20대 전국구 여성 의원 한명을 얼짱이니 뭐니 띄워보려 애쓰지만 손수조의 1/100만큼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산 경남은 지난 총선 만큼도 야당을 당선시키지 않음으로 박근혜의 관심에 보답했습니다. 문재인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겨우 한자리 수 정도로 이기는 바람에 이미지를 구겼죠.

그런데, 그게 꼭 박근혜에게 도움이 될까요?

예. 됩니다. 박근혜는 이번 총선 승리로 대선까지 나아가는 교두보를 확보했습니다. 이제 새누리 당에선 누구도 감히 박근혜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합니다. 물론 당내 경선에서 나름대로 치고 박고 하겠지만 2007년 대선 당시의 민주당은 그만두고 한나라당 수준의 공박도 없을 겁니다. 그 뿐인가요? 경상남북도는 물론 충청 강원 모두 자신들의 지역구 후보와 대통령의 당적이 달라 피해보는 일은 피하려 들 겁니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모든게 박근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되었을까요?

이 질문까지 예쓰라면 제가 구태여 손꾸락 아프게 이 글 쓸 일이 없겠죠. 이미 대선 끝났다면 제가 할 일은 걍 얌전히 박근혜 대통령 보고 살든지, 이민 갈 곳 알아보든지 둘 중 하나나 해야죠.

굉장히 아이러니하지만 이번 총선이 야권에게 준 유일한 선물은 '박근혜에게 맞설 수 있는 최상의 야권 후보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먼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입니다. 그동안 제 글을 봐오신 분이라면 제가 문재인보다 안철수에게 훨씬 더 야박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리고 전 지금도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이 더 대선후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래도 문재인은 평가받을 만한 정치적 행적이 있는 반면(물론 많이 미흡) 안철수는 그나마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그나마 박근혜를 이길 수 있는 후보의 조건으로 누가 더 낫냐...순수하게 정치공학적으로 판단할 때 전 안철수라고-총선 복기하며-결론지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문재인으론 필패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 개인적 호오를 떠나서.

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것 다 그만두고 문재인이 경남 출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의아하실 분 많을 겁니다. 그나마 박근혜에 맞서 '최대 표밭'인 경상남북도에서 표를 뺏어올 수 있는데 왜 문재인으로 필패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 또한 간단합니다. 박근혜도 경상남북도 출신이기 때문에.(*도는 금지어라해서 계속 경상남북도로 표기하고 있음. ㅠㅠ)

간단히 말해 경상남북도 유권자 입장에서 박근혜와 문재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10에 7,8은 박근혜를 선택할 겁니다. 그리고 이는 사상구에서 여실히 증명되었습니다. 만약 사상구에서 박근혜와 민통당의 20대 무명이 붙었으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사상구 주민 다수가 "뭐야, 민통당 애들 우릴 완전 개xx로 아네."하며 일치단결 박근혜에게 표를 줬을 것이며 그야말로 전국 최다 득표율을 거뒀겠죠. 반면 문재인은 겨우 9프로 차이론가 이겼습니다. 

그리고 이 딜레마는 총선 내내 재연됐습니다. 문재인이 대권 후보라면, 당연히 박근혜와 각을 세웠어야죠. 그래야 급이 맞습니다. 그런데 선거 이틀전까지 문재인과 나꼼수 진영은 만만한 손수조만 물고 늘어졌습니다. 왜 그랫을까요? 감히 박근혜와 각을 세웠다간 부산 경남에서 역풍 맞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죠. 차 위에 고개 내밀며 김용민이 생쑈하고 어준이, 진우 폼잡으며 카퍼레이드했지만 그 이면은 이렇게 초라합니다.

흔히들 2002년의 기억을 이야기합니다만...전 이번 총선을 보며 그 당시 한나라당(당시는 신한국당이엇나요?) 후보가 만약 이회창이 아니라 최병렬이나 기타 경상남북도 출신이었다면 과연 노무현이 이길 수 있었을까 의아하더군요. 경상남북도 표도 그때만큼 얻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중부 및 수도권의 이탈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즉, 경상남북도 출신 박근혜에 맞서 야권이 경상남북도 출신을 대권 후보로 내세울 경우 벗어나기 힘든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박근혜를 공격할 경우 자신의 후보 근거인 경상남북도 표를 잃습니다. 그렇다고 각을 세우지 않으면 경상남북도 표는 약간 더 확보할 지 모르지만 싸움 자체가 안됩니다. 죽기 살기로 경상남북도에 올인하면 타 지역 표를 잃습니다.

박근혜로선 아주 쉬운 게임을 하게 되죠. 간단히 '경상남북도에서 누가 더 영향력 있는지'만 입증하면 됩니다. 그러면 충청, 강원은 그냥 경상남북도의 선택을 따라하게 되어있습니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의원도 많이 배출했으니 당연히 박근혜에게 붙는게 유리하죠. 호남은 모르겠지만 수도권의 호남 출신을 비롯 20대도 상당수 야권 지지에서 이탈할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보시지 않았습니까? 문재인, 문성근 모두 경남에서 나오지도 못한 것. 당연히 다른 지역에선 볼멘 소리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 그나마 박근혜와 맞서 승리할 수 있는 야권 후보의 조건은... 경상남북도 표를 일부 잃더라도 과감히 박근혜와 각을 세워 여타 지역 및 세대를 묶을 수 있는 후보라고 봅니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정동영은 강남 출마라는 초강수를 던졌을 겁니다. 어차피 수도권 표를 입증하지 못하면 대선 승리는 그만두고 후보조차 되기 어려웠을 테니까.

그 조건에 맞는 후보가 누가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전 안철수와 손학규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만... 이 둘 모두 야권 경선에 참여해서 자신들의 능력을 입증해야 합니다. 다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전 지금도 문재인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문재인이 경선에 참가할 자격도 충분하거니와 당선된다면 기꺼이 표를 던질 의향도 있습니다. 아울러 설사 그가 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부산 경남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내리라는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의 일부 친노처럼 자신들이 후보를 갖지 못했다고 이적행위나 할 그럴 부류는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이야긴... 후보가 누가 되든 지난 대선 당시의 민주당처럼 당내 질서 및 규율이 개판 오분전이면...

걍 그냥 집니다. 뭔 짓을 해도 집니다. 그리고 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