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말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것일까?”에서 “그들”은 기독교인일 수도 있고, 마르크스주의자일 수도 있고, 여성주의자(feminist)일 수도 있고, 정신분석가일 수도 있고, 문화 인류학자일 수도 있고, 사회학자일 수도 있고, 인지 심리학자일 수도 있고, 심지어 진화 생물학자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진화론을 받아들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하자. 만약 그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창조론자입니다”라고 답했다면 그 사람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결론 내려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면 “예. 저는 진화론을 받아들입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어떨까? 그 사람이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쉽게 결론 내려도 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화 생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진화론에 어떤 내용들이 있고 어떤 함의가 있는지 잘 모른다. 따라서 자신이 진화론의 핵심 테제들 중 상당 부분을 부정하면서도 스스로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잘 봐줘봤자 진화론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또는 현대 진화 생물학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소진화는 받아들이지만 대진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개의 품종 개량과 같은 소진화는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침팬지와 인간이 같은 종에서 분화한 것과 같은 대진화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과 침팬지는 태고 적부터 서로 다른 종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믿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대진화까지 받아들이지만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의 막강한 힘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것이다. 그런 사람은 신과 같은 지적 존재가 진화를 인도했기 때문에 척추동물의 눈과 같이 복잡미묘한 기관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돌연변이와 자연 선택과 같이 물리 법칙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면서 작동하는 기제들만으로는 척추동물의 눈과 같이 복잡미묘한 기관이 진화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신이 개입해서 진화의 방향을 인도했다”고 보는 견해도 진화론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진화 생물학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사람은 동물의 진화는 인정하지만 인간의 경우에는 어떤 특별한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물은 진화의 산물이지만 인간은 창조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동물/인간 이분법 말고도 육체/정신 또는 육체/영혼의 이분법도 있다. 어떤 교황이 진화와 관련하여 이런 이분법을 주창했다.

 

인간의 몸이 그 이전에 존재했던 생명체에서 생겨났다 하더라도(If the human body take its origin from pre-existent living matter), 영혼은 하느님이 직접 창조하셨다. ...... 결과적으로, 영혼이 생명체의 힘에서 출현한다고 또는 생명체의 부수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는이것은 진화론을 부추기는 철학과 부합한다 - 진화론은 인간에 대한 진리와 양립하지 못한다. 또한 개인의 존엄을 뒷받침할 수도 없다. (『빈 서판』, 332, page 186, 교황이 1996년에 했던 연설)

 

현대 진화 생물학에서는 이런 식으로 예외를 두지 않는다. 즉 인간만은 또는 인간의 정신만은 신과 같은 어떤 특별한 존재가 만들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진화론을 반쪽만 받아들이고 있거나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는 척만 하는 것이다.

 

 

 

창조론자 또는 종교인만 진화론을 거부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진화론을 적극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온갖 측면에서 진화론 또는 진화론의 함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은 행동 유전학과 진화 심리학을 무턱대고 거부하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J. Philippe Rushton은 흑인은 원래 백인보다 IQ가 낮다고 주장했다. 즉 흑인이 백인보다 IQ가 낮은 이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전적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Race, Evolution, And Behavior: A Life History Perspective

http://www.charlesdarwinresearch.org/Race_Evolution_Behavior.pdf

 

Richard Lewontin과 같은 진화 생물학자는 인류의 유전적 변이가 대부분 개체군 내의 변이이며 개체군 간 변이는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라는 사실을 들어 Rushton류의 주장이 터무니 없다고 반박한다. 이런 주장을 상당수의 학자들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In general, however, an average of 85% of genetic variation exists within local populations, ~7% is between local populations within the same continent, and ~8% of variation occurs between large groups living on different continents,. (Lewontin 1972; Jorde et al. 2000a; Hinds et al. 2005).

http://en.wikipedia.org/wiki/Human_genetic_variation

 

거대 집단(large group) 간 변이가 8%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잘 정립된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8%가 흑인과 백인 사이의 뚜렷한 피부색 차이를 만들어냈다. 인류의 각 개체군(population)들은 피부색뿐 아니라 온갖 신체적 측면에서 선천적인 차이를 보인다. 예컨대 쿵산족(부시맨)은 스웨덴인에 비해 키가 상당히 작다. 케냐의 어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장거리 달리기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다. 그런 차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개체군 간 유전적 차이 때문이라는 점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 8% 또는 15%의 유전적 차이가 신체적 측면에서 온갖 차이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인종 간 IQ 차이가 선천적일 리가 전혀 없다고 방방 뛰는 사람들도 이런 신체적 차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천적이라는 점은 인정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일까? 그들에 따르면 8% 또는 15%의 유전적 차이가 상당한 신체적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 따르면 8% 또는 15%의 유전적 차이가 IQ나 범죄 성향이나 일부일처제적 성향과 같은 정신적 차이는 만들어낼 수 없다.

 

이것은 위에서 인용한 교황의 육체/정신 이분법과 다를 바 없다. Lewontin은 교황과 꼭 마찬가지로 진화론을 인간의 육체에는 적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인간의 정신(교황은 “영혼”이라는 말을 선호한다는 차이가 있다)에는 적용할 생각이 별로 없는 것이다.

 

지난 10~20만 년 동안 인종(또는 개체군)이 서로 분화될 때 신이 육체적 측면에서는 서로 다르게 진화하도록 허락했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서로 다르게 진화할 수 없도록 금지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신이 그런 차이를 허용하기에는 인종주의를 너무 싫어했나 보다.

 

 

 

흑인이 선천적으로 IQ가 낮다는 주장은 IQ와 관련하여 실증적으로 검증해야 할 문제다. 그것은 인류의 개체군 내의 변이가 개체군 간 변이보다 크다는 점으로 반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반박되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진화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Richard Lewontin과 같이 대단한 업적을 남긴 진화 생물학자라 하더라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Lewontin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연 선택 이론을 다윈과 거의 동시에 발견한 Alfred Wallace도 비슷한 이분법에 빠졌다. 그는 교황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은 진화를 초월한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심한 신비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http://en.wikipedia.org/wiki/Alfred_Wallace#Spiritualism

 

 

 

진화론이 인간의 마음, 행동, 사회, 문화, 역사를 이해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진화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질투 기제, 친족 사랑 기제, 근친상간 회피 기제와 같은 온갖 선천적 기제들이 인간에게는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에게는 뛰어난 “일반적인 학습 기제(general learning mechanism)”가 진화했으며 이 때문에 사회화나 학습이 매우 중요해졌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다.

 

그들도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 조상의 경우에는 질투 기제, 친족 사랑 기제, 근친상간 회피 기제와 같은 온갖 선천적 기제들이 있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인류의 경우에는 번식에 그렇게도 요긴한 그런 기제들이 몽땅 퇴화했다는 말인가? 이것은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안 가는 퇴화 가설이다.

 

인간의 정신적 측면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그들과 교황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

 

 

 

편리할 때만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자기 기분에 내키지 않을 때에는 진화론을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온전한 진화론자라고 보기 힘들다. 그들 스스로 진화론자임을 자처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믿는 진화론은 21세기의 현대 진화 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론이 아니다.

 

그들은 영혼, 문화, 사회화, 학습, 인종 평등, 성 평등과 같이 자신이 신성시하는 어떤 것을 위해서는 진화론의 어떤 측면을 무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기껏해야 반쪽 자리 진화론자일 뿐이다.

 

 

 

다윈은 진화론과 그 함의를 온전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심리학이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재탄생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Wallace는 진화론의 함의 중 정신과 관련된 것을 거부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다윈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Lewontin을 비롯한 온갖 자칭 진화론자들이 Wallace의 길을 따랐다. 여전히 진화론은 과학계에조차 충분히 이해되지도 온전히 수용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그들은 진화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화론이 어떤 함의로 이어지는지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진화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덕하

201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