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 있습니다. 패티김이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인데요. 왜 그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그녀가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상당히 과대평가받고 있는 가수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수 스스로 그런 일에 주저없이 동참도 하고요.  얼마 전에 은퇴 기념으로 전국 투어한다고 하네요. 뭐랄까, 참 밉상스럽네요. 거창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선언을 하고, 또 그것을 기화로 전국공연을 돈다니.  그게 끝나야 진짜 은퇴가 되는 모양이죠 ? 패티김하면 생각나는 것은 디너쑈, 길옥윤. 도저히 나이를 가름하지 못하는 미모(?) 이딴 것들이죠.  지금 나이가 아마 70이 넘었죠. 지난 번 보니 그 70 나이에도 거의 팬티라인이 보일만한, 찰싹 붙는 백바지를 입고 화보사진을 찍네요. 그러한 열정이 부럽다기 보다는 좀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TV특종에보면 나이 70먹은 노인이 그 동안 갈고닦은 바디빌딩 실력을 보여줍니다. 민머리에 우락부락한 근육, 그 위에 번들거리는 기름,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지우며  만들어 보이는 삼두박근, 이두박근의 모습이 무척 안스럽습니다. 스타킹에서 보여준 어떤 미국 할머니의 강렬한 비보이 시범이 생각납니다. 흠 ....  정열은 대단하시지만,  헉헉대며, 부들거리는 팔과  후들거리는 다리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꼭 저런 일 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나이에 맞는 각각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고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청년은 청년답게, 할매는 할매답게, 할배도 . 중년부장이 악착같이 젊은 처녀총각 대리들 회식에 끝까지 동참해서 춤추려는 것은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식에서 부장님, 사장님은 오실 때도 기쁘지만, 가실 때가 더 기쁘죠. ㅎㅎㅎ 주고 빠져야 할 시점에서 더 게기거나 먼저 치고 나가면 이것은 회식장  제 1의 반칙,  offside라고 합죠.

 

패티김의 소리와 재능은 최고라고 해도 될 정도죠. 그 풍부한 성량, 정확한 음정(이게 정말 중요.) 그리고 확실함 감정조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녀의 노래에 감동을 못받습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는다라기 보다, 소리를 듣는다 하는 편이죠. 기억나는 그 녀의 노래 하나는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 이건데요, 이 노래도 싫어하지만 이걸 자랑스럽게 부르면서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은 진짜 X입니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의 여가수를 찾아보긴 진짜 힘들죠. 보통 이런 목소리를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차고 시원한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라고 합니다. Milva나 다음에 소개할 Sosa, 프랑스의 Kaas 정도죠. 한때 나가수에 나온 <적우>씨도 좀 그런 풍이었는데 이 양반은 아마 체계적으로 음악수업(발성까지 포함해서)을 안받았지 않았나 싶네요. 저는 적우를 좋아했고, 이런 저를 마누라는 아주 싫어했읍죠 헤헤...적우가 노래할따마다 "아이고,, 저 목소리로, 아깝네 아까워...“ 제가 이러면 집사람은 ”남자들이란 그저 이쁘면 사죽을 못쓰지. 사죽을..“ 이렇게 갈구기도 했고요.

   

Mercedes Sosa는 아르헨티나 가수입니다. 2009년에 심부전(?)인가 무슨 병인가로 돌아 가셨죠. 그때 아르헨티나는 3일간 국장을 했습니다. 일찍 라틴 아메리카의 <새 노래> 운동에 참가하여 많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뭐 <죽창을 들자> 이딴 식의 노래는 하나도 부른 적은 없지만 그녀의 노래와 가사는 군부독재에 신음하는 아르헨티나 대중과 남미인들에게 깊은 위로와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특히 군부독재가 전성일 때는 공연 중에 무대에서 바로 체포되어 간 적도 있습니다. 이후 군부정권의 박해를 피해 유럽과 미국을 떠돌면서 자신의 노래를 했습니다. 파바로티와도 같이 공연도 했고요. 그녀가 부른 노래와 앨범을 모두 나열하면 두 페이지를 꽉 찰 정도입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Todo Cambia>를 한번 들어 보시죠.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가사는 <모든 것은 변하지만 우리 동네, 동네사람에 대한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외국가면 환전소에 <Cambio>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것이 영어로 하면 change 뭐 이런 뜻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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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a의 노래가 더 좋은 것은 그녀의 노래 대부분에 라틴 아메리카 전통 악기를 즐겨 쓴다는 겁니다. 차랑고(만돌린 같이 생긴 작은 악기), 께냐나.. 라틴 북이나..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그들을 마음을 오랫동안 움직일 수 있는 노래, 그리고 그런 노래를 끝없이 불러주는 Sosa야 말로,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인류최대의 가수죠. 일상사에서 10cm도 나오지 못한 패티김은 소사의 발가락에도 비길 수 없을 정도의 그져 노래 잘하는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너쑈의 여왕이 가장 적합한 명예일 겁니다.   

    

Sosa를 다른 노래를 들어보셔서 느끼셨겠지만 깊은 우물에서 막 길어 올린 듯한 그녀의 따뜻하며, 강건한 목소리는 감동 그 자체이며 관객과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는 전율이 일어납니다. 저는 예술가는 자기가 사는 세상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예술의 탈을 쓰고 나와야하겠지만 세상에 관한 관점이 없는 <순수 예술가>란 자기 기만 혹는 기회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패티김의 노래 목록을 보면 사랑, 이별, 공익가요(?) 이런 것 말고는 뭐가 있나요. 그 협소한 스펙트럼... 패티김은 예술외에 어떤 자신의 성향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좀 단호한데요, 일전에 전 남편 길옥윤씨 이야기를 하면서 “술 주정뱅이 주제에..” 이런 말을 TV에서 한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한이 사무쳤길래 그런가 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공공에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안습니다.

 

저는 김제동도 좋아하고(솔직히 좋아하기를 지나 존경심도 듭니다), 김흥국도 좋아합니다. 이번 새누리당 총선후보에 도우러 나선 연예인들 모두 인정하고 그들과 즐겁게 논쟁도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웅크리고 눈치만 보고있는 유재석보다 그런 사람들을 더 좋습니다. 유재석을 보면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무색무취 모범인간에 대한 강박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내심 MBC 파업때 한번 최소한이나마 거들어 주기를 바랬는데, 그 정도 용기가 안생기는걸까요.  배반되는 두 집단 모두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죠. 

   

진짜 할머니같이 생긴 Sosa가 나직하게 부르는 노래, 그 노래는 설득력이 있고 우리를 움직입니다. 70된 할매가 화장빨로 까무쁘라쥐를 하고 보톡스로 땡긴 얼굴로 나와서 불타는 사랑와 이별을 노래하는 것에 감동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요. 아마 패티김을 머지 않아 무슨 기회를 만들어 , 에를 들어 조용필과의 joint라든지해서 또 공연을 하지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즐거움와 성취감을 끝없이 밖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사라지는 것에 대한 훈련이 되어야만 노년을 제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득이나 최시중이나.. 이런 인간들에게 노년이란 없는 시간대 일 겁니다. 그런다고 90살을 넘길 수 있을까요? 나경원은 좋은 엄마가 되고 패티김은 좋은 할머니가, 상득이와 시중이는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길 바랍니다. (상드기와 시중이에게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끝으로 호주 합창단이 부른 Toda Cambia... 보너스로 소개 합니다.  아마추어지만 정말 감동이 오지 않습니까 .  공감안가는 사랑타령 1000번보다 투박하지만 이런 노래가 좋습니다. 이런 노래가 세상을 바꿀겁니다. 또는 그 바꾸는 일에 1/10000이라도 도움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