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에 잠깐 들어갔다가 예전에 올린 글이 있어 퍼옵니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우선 프리모관이 무엇인지 읽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701747_5780.html


위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해부학적으로 발견된 새로운 순환계가 있는 데 그것의 이름을 프리모관으로 명명하고, 이것이 한의학계에서 경락이라고 규정한 체계의 해부학적 실체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된 것입니다.

이 연구는 1960년대 북한의 김봉한이 발견하고 주장한 봉한관 이론과 연계되어 경락이라는 체계가 해부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대두합니다.


전 이 발견이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나름대로 이 소재를 연구해서 사이비 양자의학 소설책이라도 하나 써볼까 생각했습니다. 아래와 같은 가설을 토대로 하는 겁니다.


<인체에는 경락이 있다. 이 경락은 프리모관, 혹은 봉한관이라는 해부학적 실체로 나뉜다. 이 프리모관 주변에는 원질의 줄기세포가 존재하는데, 이 줄기세포가 잘못하면 암으로 발전한다. 김봉한이 산알이라고 명명한 이 줄기세포는 프리모관을 통해 정보를 제공 받고, 그 정보를 통해 각각의 특질을 갖춘 일반세포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즉, 경락이라고 알려진 체계는 세포분화에 관련된 정보 전달관이다. DNA라는 총체적 세포 정보를 갖춘 줄기 세포에 어떤 부분을 발현할지에 관련된 정보 제공망이 프리모관이다. 따라서 고래의 도가수련법은 이 프리모관에 정보를 원하는 대로 전달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반노환동이 가능한 것은 이 프리모관의 의식적 제어를 통하여 줄기세포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발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통한 것이다.... 불로 불사가 가능한 것도 같은 방법을 통해서다.

아울러 암이 발생되는 것은 이 줄기세포에 정보전달체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암세포 자체는 어떤 세포로 자랄지 특정되지 않은 채 불사의 생명력만을 가진 줄기세포의 일종인 것이다. 프리모관을 통하여 바른 정보를 제공할 경우 암세포는 제어된다>


흥미롭지 않나요?


딴지일보에 예전에 찾아갔다가 누군가 프리모관의 발견에 고무된 글이 있어서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프리모관이 경락이라고???



딴지일보에 오랜만에 들어오는데 첫 글이 이런 글이라 다소 민망하다.

  

이글을 쓰게 된 동기는 예전딴지일보 리즈시절에 에이즈 논쟁을 의사들과 한판 벌였기 때문.

  

당시 소위 재야의학연구자 겸 시민운동가라고 자칭하시는 \”비주류시민의학연구가 및 에이즈환자 인권운동가\”께서 \”에이즈는 없다\”라는 명문을 올렸다그리고 나는 그 자칭 시민운동가를 비판 하는 동시에 주류의학계도 비판했었고그 비판에 대하여 의사제위께서 흥분했던 기억 새록 샘 솟았고 왠지 이 발견 역시 비슷한 관점에서 비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이 발견이 당시 주장처럼 전혀 허황되거나 사실적 근거 없이 쓰여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러나 한의학물리연구소라는 이름의 다소 수상쩍은(?)곳에서 발표하고 난뒤 국립암센터 권병세박사가 이를 뒷받침함으로써 주류학계의 인정을 받는 과정이 다소 어색하고언론에서 이를 마치 한의학의 경락이 과학적이라는 식으로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당시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만일 그 인권운동가께서 \”에이즈는 없다\”는 글을 딴지에 올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도 인권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을 것 같다.

  

우선 이 발견은 다소 스켑티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김봉한이 봉한관이라는 새로운 순환계를 발견했고,그 역할이 한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경락과 비슷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그리고 새롭게 김봉한의 학설을 재조명하면서 봉한관을 발견하고 그 봉한관을 제3의 순환계라고 주장하며 경락계라는 가설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이 한의학의 경락이론을 뒷 받침하는 것일까?

그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물론주류의학에서 한의학을 무조건 코웃음치면서 사이비라고 매도하는 것은 반대다수많은 사람들이 침이나 뜸을 맞으면서 통증이 경감되는 효과를 겪었고 그 전부를 무조건 플라시보로 여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우선 나부터 침이나 부항을 맞고 상당히 통증이 경감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그것이 전부 심리적 착각이라고 생각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침의 효과를 이론적으로 다 증명할 수도 없다경락을 따라 경혈에 \’\’를 실어 침을 놓는다면 과연 한의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병이 치료될까침을 놓는 사람의 기의 세기에 따라 침의 효과가 달라질까?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프리모관이 실제하고상당한 영역에서 경락체계와 일치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경락이라고 볼 수 있을까이를 통해서 한의학이 과학적이라고 이름 할수 있을까?

당시 논쟁을 벌일 때 한 고수가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음양오행을 과학적으로 재 조명할 수도 있다그리고 현대의 물리학 개념과 융합시킬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과거의 음양오행론이 과학이 되는 걸까아니다다만 과거의 음양오행론이라는 신비주의적 개념을 원용해서 현대의 과학적 통찰을 좀 더 새롭게 조명한 것에 불과하다그때는 이름은 음양오행이라고 붙일 수 있을지 몰라도 과거의 음양오행론과는 전혀 다른 체계의 현대과학의 가지가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프리모관이 실재하고그 실체가 분명히 관찰되고그리고 대부분의 영역에서 한의학의 경락이론과 비슷한 수준에서 겹친다고 해도 그 프리모관은 한의학의 경락개념은 아니다.

한의학의 경락은 프리모관이 흐르는 실체적인 공간이 아니라 \’\’라고 불리는 형이상학적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다그럼 누군가 물을 수도 있다그 프리모관을 통하여 일종의 생체전기가 흐를 수도 있고 그 생체전기를 기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래그럴지도 모른다이미 로버트 베커가 생체전기가 바로 동양에서 말하는 기라는 개념과 유사하다고 말하며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를 설명하려고 시도한 바도 있다그러나생체전기가 \’\’와 유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동양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와 상동한 개념은 아니다그 생체전기가 프리모관을 통해 흐르고 있고 그 프리모관에 흐르는 생체전기에 자극을 줌으로써 생명활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해도그것이 한의학의 치료와 동일한 개념은 아니다.

 

 무슨 말이냐고한의학혹은 고대 의학이 어떤 경험적 사유와 통찰력을 통하여 상당한 수준으로 현실에 응용되는 의학적 개념을 수립하였다 해도 그것이 현대의학에서 발견한 해부학적 진실과 완전히 동일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다만그러한 고대의 통찰력을 높이 사서 그 순환계를 \”경락계\”라 통칭할 수는 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그 경락계가 바로 한의학의 경락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한의학의 통찰력을 원용한 현대의학의 새로운 개념의 확장으로 여겨야 하며추후 한의학의 과학적 개념은 현대의학으로 수렴되어지는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 옳바르다고 생각한다.

 다만이런 발견이 소위 현대의학의 자본주의적 활용자들인 의사들의 밥그릇 지키기식 학문적배타주의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데 기여한다면 그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네들은 자신들의 태도가 순수한 학문적 열의라고 믿을 것이다그리고 사실 그 배타주의가 현대과학의 바탕에서 이루어 지는 한 99%는 옳바른 것으로 증명될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배타주의가 옳바른 것은 아니며 밥그릇을 우선하는 태도가 아닌 것도 아니다밥그릇을 지키기위한 싸움이 현대과학의 지지하에 이루어지므로 옳바른 것으로 귀결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런 옳바름이 나쁘다고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옳바름이 사실 대부분 그런 것 아니겠는가. 다만 그런 밥그릇에 대한 열정을 순수한 학문적 열정이라고 열라 포장하는 것이 보기 싫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