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체계적인 글은 아니고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간 건데... 자유게시판에 올릴까 하다가 그냥 올립니다. 

=====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노무현을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원래 이상주의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그것이 정치인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실 '이상주의적 정치인'이란 말은 자체로 어느 정도 모순이라고 생각하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이상주의를 겉으로 내세워 표를 얻으려는 사람뿐이라고 본다.) 또한 이상주의란 근본주의하고 통하며 이 근본주의라 함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개독교인 욕을 할 필요는 없겠지... ^^)

아무튼 내 생각에 정치인이라 하면 절대 하면 안되는 것은  '이것은 절대 안된다'는 태도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절대로 안되는 것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선택지 가운데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비교해서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낫기 때문에 그쪽을 선택하는 것  뿐이다. 물론 그 선택은 당사자와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여러 사람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 합의는 논리적 설득이 될 수도 있고 힘에 의한 강요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아무리 강자라도 모든 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끌고 갈 수는 없다. 그리고 약자도 완전 무저항은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힘이 균형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인이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이런 합의를 가능한 한 피해를 적게 내면서 이루는 것이지 세상에 유토피아를 구현한답시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이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노무현에 대해 옹호하는 발언을 비교적 많이 한 이유는 그가 특별히 이뻐서라기보다 다른 정치인들이 더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전에도 말했지만 듣보잡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의미있는 정치인 중에 전두환과 히틀러 밖에 없고 둘이 치열하게 겨루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전두환을 지지하는 수밖에 없다. 노무현보다 더 나은 정치인은 오직 김대중이 있을 뿐인데... 그 둘이 정치적으로 충돌한 적은 없었지? (물론 김대중의 후예를 자처하는 얼치기들과 부딪힌 적은 많다만... ^^) 노무현이 어떤 점에서 더 낫냐고? 당연히 깨끗함이다. 물론 그가 계약 성사 후 업체로부터 저녁 한끼 얻어먹은 게 전부인 나보다는 부패했을 것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맡은 일만 잘한다면 약간의 부패는 허용해 주고 싶은 생각이 더 많은 사람이지만 청렴함 그 자체는 분명 장점이다. 지금 1/10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물론 그것 자체도 할 이야기가 많다. 더러운 돈을 조금이라도 적게 받은 놈을 지지한다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이 일 때문에 자살까지 결행한 점에서 볼 때 그에게 뭔가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밖에 그의 용기,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헌신적 추구, 합리적 사고방식, 설득력 있는 언어구사력, 다방면에 걸친 지식과 일처리 능력 등 하나하나가 그의 장점이며 나는 이들 각각에 대해 장문의 근거를 댈 수 있다.

노빠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의 실책이 한나라당을 대화가 통하는 상대로 여기고 설득하려 들었다는 점이었다고 믿으며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말에 상당한 설득력이 주어진다. 나는 그가 노빠들의 말대로 극우파 기득권 세력들을 설득하려 한 것인지 노까들의 말대로 그들과 한패가 되려고 시도하려다 실패한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통째로 안기겠다"는 식의 말처럼 단순한 설득의 차원을 넘어선 말도 분명 있었던 게 사실이다. 사실 이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정이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누구건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는 없다. 주위 사람들의 조언과 의견을 들을 만큼 듣고 나서 결정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에도 사실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옆사람의 속삭임에 넘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와대에 들어갔으면 일단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당연히 수구 기득권 세력들이다. 이들로부터 영향을 안받는 것은 누구도 불가능하다. 이들이 노무현에게 무어라고 말했겠는가? 당연히 '이제 대통령이 되셨으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된다.', '조선일보와 싸우면 안되고 필요하면 불러다가 돈을 찔러주며 설득시켜야 한다., '한나라당 사람들도 그리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얘기를 잘하면 알아들을 것이다.', '빨갱이들은 그냥 놔두면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고 북한에 갖다바치려는 나쁜 놈들이다. 이들은 몰아내야 한다.' 그가 아무리 인터넷에 능했다고 해도 바쁜 업무의 와중에 이들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우파들은 노무현 집권 당시 두 가지 전략을 병행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노무현에게 접근해서 가능한 한 보수적 정책을 펼치게 조언(?)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노무현 정권을 망하게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는 자기에게 접근하는 보수파 인사들이 절대 자기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했는데 나는 그가 죽을 때까지도 그것을 알았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보다 나는 언젠가 노무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언젠가 좀 유능한 기자가 심층취재 차원에서 그에게 심도있는 인터뷰를 하길 원했던 것이다. 이제는 영영 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1. 지금 노빠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집권기에 모든 권모술수며 방법을 다 동원해서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고 한나라당을 해체시키지 않은 것을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아마 조선일보 기자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이 사태를 가장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했다면 어쩌면 그가 더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도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들은 위에서 말한대로 한편으론 그를 죽이려고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정책을 얻어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2. 나는 아직도 그가 호남인이나 민노당, 진보신당 등 소위 개혁세력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말만 좀 잘하고 비위를 맞춰주면 자신에게 표를 줄 수 있는 봉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지금도 그가 호남 차별에 대해 어느 정도 개념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며 그의 살아있을 때 하던 호남에 대한 무관심이나 냉소적인 태도(물론 난닝구들처럼 그걸 극단적으로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가 본심이었는지 알고 싶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좌익이나 심지어 친북세력의 입지를 어디까지 허용할 생각이었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3. 민주당의 분당에 있어 그가 관여한 비중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겉으로 드러나기로는 그의 책임은 거의 없다. 물론 그가 호남 토호세력들의 난동을 더 참았어야 한다는 의견은 있지만... 그런데 그가 막후에서 분당을 부추겼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게 사실일까? 하긴 이건 물어봐야 솔직하게 대답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겠지.

4. 그의 영남세력 진출에 대한 노력은 분명히 실패했다. 아무리 노빠들도 그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는 위에 ‘하지만 그의 시도는 선의였다’는 식의 변호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그는 끝까지 민주당이 전국적 정당화를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고 본다. 그 점에 대해서 혹시 반성을 하지는 않는가?

끝으로 노무현에 대해 전에 시닉스라는 분이 쓰신 간단한 우화 하나가 생각난다. 물론 이건 그에 대해 호의적인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 대해 판에 박힌 애도나 과장된 예찬보다는 이게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왜일까?

=========================================================
소액 주주들이 다수인 회사의 월급쟁이 사장으로 취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취임하자마자 그가 한 일은 회사 업종 변경입니다. 그가 보기에 그건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요? 주주들 모두 경악합니다. 왜냐면 그는 취임전 주주 총회에선 그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갔습니다. 얼핏 회사 주식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폭탄 선언이 터집니다. "경쟁사와의 제살 깎아 먹기가 문제다. 그래서 난 경쟁 회사와 협약을 맺겠다.'

황당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기다려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쟁사는 'X을 까세요.'하며 비웃습니다. 뒤이어 사장의 돌출 행위에 놀란 주식 시장이 요동치고 매출도 줄기 시작합니다.

주주들은 물론 종업원들도 불안해집니다. 도대체 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사들이 슬슬 딴 생각하기 시작하고 노조는 쟁의에 돌입합니다. 주가는 떨어지고 회사 경영은 악화됩니다. 몇몇 주주와 이사들은 예전 업종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사장은 큰 목소리로 꾸짖습니다.

"나의 제안을 거절한 경쟁사가 잘못된거다. 내가 고용한 이사들이 딴짓하고 종업원들이 애사심 없이 구는게 내 책임이냐? 아무리 좋은 상품 내놔도 소비자들의 안목이 후진 걸 어쩌란 말이냐."

글이 길어지니 그 회사의 결말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당연히 망했습니다. 몇몇 이사와 주주들은 예전 업종으로 돌아가 새 회사를 차렸지요. 물론 자본금 다 까먹은 뒤라 중소기업 수준에서 악전고투 중입니다.

묻습니다. 그 사장은 뭘 잘못했죠? 노조와 이사, 그리고 경쟁사와 시장이 사장 하자는 대로 반응했으면 그 회사는 잘됐을 겁니다. 근본적으로 그렇게 순수하고 선의로 가득한 사장이 성공할 수 없는 자본주의 자체가 잘못된거죠.

그런데, 댁은 그런 사장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