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선 전에 제 예상

저는 2002년도 즈음에 '호남이 영남후보 밀어주면 지역주의 타파된다...'  이런  관념이 민주당내에 퍼지고 그것도 않될듯 보이니까 재벌 정몽준을 대안으로 단일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 지지를 떠났습니다. 2002년도에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지향하던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를 선택했고 계속 바뀌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이정희의 민주노동당이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듯 보이는 참여당과 합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신당을 선택했는데 결국 제 한표는 사망선고를 받은 진보신당에 마지막 조의금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서울시장선거에서 서울사는 동생에게 저는 전화를 했습니다.

"OO아 너 이번 선거에서 나경원 찍어야 한다...."

" 그게 뭔소리야?"

" 이번에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된다면... 결국 혁통이 민주당을 먹어치워버릴테고.... 민주당은 다시 열린우리당이 될테고...  어찌어찌해서 정권교체를 해낸다고 해도 노무현 정부보다 더 심각하게 실패할 거야...."

그러니까 그 즈음에 제 예상은 혁통이 민주당을 먹어치우고 운이 좋으면 열린우리당 시즌2가 정권교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제 생각이 짧았고 상당부분을 수정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수정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친노는 내 생각보다  '더' 무능하다

저는 친노가 무능하다는 사실은 처음 노무현이 등장할 때부터 알고 있습니다. 무능하기에 '지역주의타파'같은 의미없은 아젠다로 대권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보았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운이 좋으면 친노로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명박의 무능또한 친노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명박이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무능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점과는 다르게 한명숙과 친노는 야당 대표와 당 실세의 자리마저도 감당을 못할정도로 무능하다.  제 예상은 친노의 총선 필승에 대선승리는 미지수 였는데 이제 대선은 물건너 갔고 총선 패배도 확인되었으니 제 생각을 수정해야 다음번 예상에 적중률이 높아지게 되겠지요.
 
" 친노는 내 생각보다 더 무능하다 "  


2. 손학규는 내 생각보다 유능하다.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로 있을때 혁통과의 통합에 나서는 모습을 보고 제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친노가 손학규에게 대권후보를 양보하기는 커녕 당내 입지마저도 갉아먹으려 할텐데 손학규의 판단력이 상당히 흐리군....'  그런데 손학규캠프에 있는 친구로부터 흘러나온 정보에 의하면 손학규 캠프에서는 이번 총선에서 문재인이 PK에서 틀림없이 실패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문재인이 PK에서 당선마저도 어렵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손학규역시 친노의 탐욕을 알고 있었지만 친노의 무능을 저보다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친노는 단기간에 몰락하고 대선 전에 손학규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손학규측이 친노를 저보다 더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 결국 제 생각을 수정했습니다.

"손학규는 친노보다 유능하며 내 생각보다 더 유능하다"


3. 박근혜는 무서운 상대다 

저는 2년쯤 전부터 한국의 현실정치 영역에서 가장 뛰어난 자를 '김종인'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재벌을 견제하지 않고 대통령이 의미있는 업적을 남긴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고 그것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김종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생각은 지금에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번 총선 전에는 과연 대선후보 가운데에서 누가 '김종인'씨를 쓰고자 할 것인가가 저의 최대의 관심사였는데..

놀랍게도 그 누군가는 야권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박근혜였습니다.  '박근혜는 컨텐츠가 없다', '박근혜는 머리에 든게 없는 수첩공주다', ..... '박근혜는 박정희 향수의 결과물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을 저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는데... '김종인'씨를 새누리당 비대위로 데려가는 것을 보고 개인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박근혜는 내 생각과는 상당히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이때 이미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요..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에게는 또한가지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문재인의 상대로 '손수조'라는 정치 신인으로 대진표를 짠 것입니다. 손자병법이나 삼국지류의 소설에 보면 영주의 전차경주에 관한 이야기가 가끔 들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차경주를 즐기는 영주나 국왕이 매번 자신이 패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자 유능한 책사가 필승의 비기를 알려준다는 내용입니다.


'3대의 전차로 경주를 하고자 할때 전차별로 상등, 중등, 하등의 전차가 나뉘게 됩니다. 이때 폐하의 상등의 전차가 상대의 중등 전차를 상대하게 하십시오, 폐하의 중등 전차는 상대의 하등 전차를 상대하게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폐하의 하등 전차가 상대의 상등 전차를 상대하게 하신다면 한 경기에는 필패하겠지만 나머지 두 경기에서는 필승이기 때문에 앞으로 전차경주를 하실때 반드시 이기실 것입니다.'


심지어 이런류의 이야기는 서양 고전소설에도 등장할 만큼 유명한 이야기로 아마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아는 것과 실전에서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저는 전차경주 이야기는 잘 알고 있었지만 제가 박근혜였다면 문재인 상대로 무게감있는 중진을 내새워 전면전을 치렀을 것입니다. 전차경주 이야기를 해주는 참모가 없었다면 100퍼센트 그랬을 것이고 아마도 총선열기를 후끈 닳아오르게 만들어 망쳐버렸겠지요. 그러나 박근혜는 제 예상과 달랐고 문재인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손수조라는 정치신인을 등장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특전사 시절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재인을 상대로 여자에다 어리기까지한 손수조를 보내면서 PK에서 문재인이 벌이고자 하는 큰 판에 아예 찬물을 끼얺어 버렸습니다.

제 예상과도 전혀 달랐고 문재인의 총선패배까지 예상하고 있던 손학규의 예상과도 달랐습니다. 결국 총선을 치르면서 박근혜에 대한 제 생각은 대폭 수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근혜는 내 생각보다 뛰어난 인물일뿐 아니라 대권 후보들중 가장 뛰어난 인재다.'

대권 후보들 가운데 박근혜가 가장 준비된 사람이라는 김종인씨의 말을 이제는 인정할 수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4. 총선 여담

a. 정동영
자신의 권력의 절정기에서 이뤄졌던 FTA에 대해서 그때는 몰랐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니 이사람은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강남에 김종훈의 상대로 출마하는 것을 보니 자신의 죽을자리조차도 현명하게 고르지 못하는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였습니다.

b. 이정현
작년에 골수 민주당 지지자인 아버지가 ' 호남 일은 이정현 혼자 다 한다'는 말씀을 하시고 이번 총선에서 이정현이 당선되기를 바라실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역시나군요. 하지만 자신이 죽을 자리와 죽어야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고르고 알고 있으니 다음번엔 더 클 인물인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c. 호남의 선택
예전에 친구에게 이런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노무현이 대선후보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영남 사람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거야..."

' 전라도 것들은 후보를 빌려서까지 대권을 먹으려고 하네... 끔찍한놈들....'


이번에 이정현이 패배하면서 호남은 자신들의 속내를 끝내 들켜버렸습니다.  대통령 후보조차 영남 사람에게 내줄만큼 관용이 넘치는 호남이 아니라 무슨짓을 해서라도 한나라당에는 반대한 것 뿐이라는 사실을....  지역주의 타파의 염원이 아니라 한나라당에 대한 증오를 씻지 못했다는 사실을.... 심지어 내가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나라당을 용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민주당 의원 30명보다 이정현 한명이 나은것을 알면서도 표를 줄수가 없다는 속내를 다 들켜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의 대선전략, 문재인의 대선전략, 손학규의 대선전략, 심지어 안철수의 대선 전략에서도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많은 수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나 수도권에서 어찌할 것인가,,, 강원도에서 어찌할 것인가,,, 충청도에서 어찌할 것인가,,, 20~30대에게 어찌할 것인가,,, 60대 이상에게 어찌할 것인가,,, 이런 부분에서는 앞으로 많은 논의와 수정들이 있겠지만 호남에서는 어찌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다른 수정분이나 추가분이 없을것 같습니다. 어쩌면 대 호남 전략칸은 모두 공란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호남에게 희망이 있다면 이번에 잃을 수 있는 것을 다 잃었고,  그래서 2002년에 노무현을 선택한 댓가를 이제는 치를만큼 치루었으니 바닥중에 바닥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음번 총선에서는 희망이 보일 것이라는 것이 제 예상입니다. 물론 제 예상은 자주 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