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만 해도 라면을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사용되는 재료가 신통치 않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들려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라면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런 라면 열봉지를 김포공항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페테르에 이를

때까지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손에 들고 다녔으니 그 고지식하고 바보스런 행위를 변명할 길이 없다. 평소 나는 책

한권도 들고 다니는 걸 싫어해 누가 밖에서 자기 저서를 사인해 주는 걸 제일 싫어한다. 그나마 라면은 무게가 적어

서 다행이었다.

러시아를 가는데 웬 라면? 그 사연은 이렇다. 열봉지의 라면은 나의 비상식량이었다. 내가 러시아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말 많은 아파트의 이웃 아주머니들이 앞다투어 경고와 조언을 쏟아냈다.

"00아빠 러시아 가신대며? 아유 그런데를 지금 왜 가실까? 우리 애 아빠가 그러는데 거긴 지금 식당에 먹을 것도

없고 거리에 굶은 거지들이 우글우글한데요. 쫄쫄 굶으며 여행하지 않으려면 라면이라도 가져가셔야지."

"여기 라면 가져가면 거기서는 금값이야. 귀찮더라도 라면 한 상자 꼭 가져가시라고요."

러시아를 가면 굶게 된다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졌다. 집에서도 이왕 갈거면 구급식량만큼은 반드시 휴대해야 한

다고 강조했다. 하는 수 없이 라면 한상자를 열봉지로 타협해서 휴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빵 귀신이다. 모스크바에서 검은 보리빵에 캐비어를 발라서 먹으니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았다. 보리빵

은 호텔이고 거리고 먹고 남을만큼 흔했고 캐비어는 아직 폭등하기 전이라 원하면 충분히 제공되었다. 나의 식성으로

 볼 때 휴대한 라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냥 습관이 되어 그 라면 열봉지를 버리지도 못하고 페테르

까지 들고 갔던 것이다.

 

 기차는 페테르의 모스크바역에 아침 일곱시쯤 도착했다. 허름한 버스 한대가 역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이른 오전이라 조금 쌀쌀했으나 햇빛이 비치는 걸로 보아 그닥 불쾌하지는 않았다. 유난히 요동치는 밤기차에 시달린

데다가 수면부족으로 일행들은 몹시 지쳐 있었다. 각자 짐을 들고 버스에 오르자, 사람들은 잠시라도 부족한 수면을

채워보려고 눈을 붙였다. 그러나 오래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누군가가 버스에 올라와서 그날 하루 일정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의 한국말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이다. 예사롭지 않다는 말보다 차라리

경이로왔다고 하는 게 적절하겠다. 뒤에 나는 이 러시아인의 한국말 어휘가 작가인 나 보다도 더 풍부한 것 같다는

농담을 동료들에게 했던 것 같다.

 

눈을 떠봤더니 뜻밖에도 겨우 스무살 안팎의 홍안의 러시아 청년이 정장을 단정하게 갗춰입고 우리 앞에 서 있었다.

 페테르부르그 대학 동양어과 2년생인 불라지미르 티호노프가 이 도시 안내자로 우리 앞에 첫 선을 보인 순간이었다.

아마 그에게도 한국의 작가 집단과의 이 우연찮은 상면은 대망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여름 휴가기간을 이용해

잠시 여행사 일을 돌봐주고 있었다. 그는 훤칠한 키에 깨끗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첯눈에도 그가 착하고 성실한 청년

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일행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유창한 한국말 구사능력은 보통 외국인이 학습

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한계치를 우리가 보기에 훨씬 초과한 것이다. 지나치는 건물, 지형에 대한 그의 해설은 보통

가이드의 해설이라기 보다 도시역사를 전공한 교수님이 등장해서 한바탕 현장강의를 베푸는 것만큼 자상하고 정확

하고 세밀했다. 우리 모두는 이 경이로운 이방의 청년에게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호텔로 찾아가기 위해 버스가 네바강을 지나갈 때 저 멀리 바라보이는 페트로 파블로스크 요새에 대한 설명, 그리고

네바강 한켠에 아직도 떠있는 순양함 오로라 호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에 대한 해설을 통해 블라지미르 티호노프의

능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증명되었다. 그렇다고 본인이 으쓱해지거나 자만하는 것 같은 기색은 찾아볼 수도 없었

다.  여행의 혼돈에 잠시 취해있던 우리는 그의 학술적?인 해설을 듣고 볼세비키 혁명의 개막을 알리는 오로라호의 

축포소리가 당장 환청으로 들리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깨어났다.

 

정말 이 가이드는 모스크바의 그 심통쟁이하고는 달라도 너무 다르구나.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가이드 한사람이

바뀌었는데 여행의 격조가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니! 국가지도자라는 것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신참 가이드에 너무 정신이 팔린 탓인지 그날 묵게된 호텔엔 관심도 없었고 지금도 전혀 기억나는 것이 없다. 필경

페테르의 3류 호텔일텐데 다만 모스크바 경우처럼 유녀들이 밤낮으로 출몰하지 않았던 것만 어렴푸시 기억에 남

아있다.

 블라지미르는 당연히 일행들 사이에 인기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여성들 사이에 그 경향이 더욱 심했다. 이때부터

일행들은 페테르의 명소나 유적의 유래에 관한 질문 보다 엉뚱하게 블라지미르 개인에 대한 질문을 더 많이 퍼부

었다.

 한국말은 어떻게 배웠느냐?

대학에서 뭘 전공하느냐?

순수 슬라브가 아니면 어떤 계통?

서울에 한번 오고 싶지 않은가? 오겠다면 언제쯤?

애인은 따로 있는가?

이런 질문은 그 도시 일정이 끝날 때까지 멈춰지지 않았다.

 

이 신참 가이드의 입장에서는 이런 질문에 답하는게 그다지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번거롭게 하는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인기를 끈다는 게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는 사례다. 그와 함께 사진을 찍겠다는

지망자가 너무 많아서 그는 네바강 다리에서나 여름궁전의 분수에서는 누구와 먼저 사진을 찍어줘야 할지 몰라

몹시 곤혹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도 물론 이 멋진 이방의 청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행동이 굼뜨고

비위가 약한 나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 청년과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는 더더욱 포착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여류 작가님들이 항상 그를 독차지하고 좀처

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나는 페테르의 그 일정이 다 끝나갈 때까지 블라지

미르 티호노프와 다만 십분, 아니 오분이라도 이야기를 나눌만한 시간을 끝내 포착하지 못했다.

 

엉뚱하게 가이드 이야기로 지면을 많이 소모했으나 페테르란 도시에 관해 말을 하자면 사실 끝이 없을 것이다.

이 도시 자체가 역사와 문화의 박람회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 것이다. 그래도 네브스키 대로의 끝자락 한

모퉁이에 있는 네브스키 사원 얘기는 빠트릴 수가 없다. 네브스키 대로는 도시의 중심도로이고 큰 건물과 여러

가지 상점들, 그리고 푸쉬킨이 결투하러 가기 직전에 들러 마지막 차를 마셨다는 푸쉬킨 카페 건물이 여기에

있다.

네브스키 사원은 서울의 파고다 공원 보다 약간 넓은 지역에 조성된 문화예술인들의 유택공원이다. 여기에

도스뜨엪스끼, 보로딘, 차이꼽스끼,무소르그스끼,우화작가인 끄롤로프 등 수많은 예술인들의 유택과 기념비

가 모여있다. 그리고 그 입구에서는 요즘은 모르겠으나 초기에는 주로 러시아 음악을 담은 CD를 파는 노점

상인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도스뜨엪스끼 기념상이 단연 작가들에겐 제일 인기가 있었고 너나 없이 증명사진?

을 찍었다. 나는 장미 한 송이를 사서 따로 차이꼽스끼의 기념비 앞에 바쳤다. 그의 <피아노 삼중주>곡을 비

롯, 러시아 풍경을 담은 그의 피아노 소품들 등 그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페테르를 말하면 세계3대 미술관인 에르미따주 미술관, 지상의 천국이라는 여름궁전, 유럽의 세번째 큰 성당

이라는 성 이삭 성당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에르미따주에는 렘브란트와 루벤스의 그림, 피카소와 야수파

인 마티스의 그림이 있고  여름궁전은 도심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별천지인데 규모나 짜임새가 프랑스의 베

르사이유와 비견해도 못하지 않으며 그것을 모방한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모습이 닮아 있었다.

거대한 돌기둥 수십개가 받치고 있는 성 이삭 성당을 보면 대체 이 거대한 돌기둥을 어떻게 세웠는지 믿어

지지 않을 정도로 놀랍기만 했다. 옆에 서있기만 해도 가슴이 떨릴 정도로 그 돌기둥의 위용은 대단했다.

 

그러나 페테르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간은 역사박물관의 밀랍인형들과 만났던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러시아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의 실물대 밀랍인형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는데 실제 인물로 착각할 정도로 제조기

술이 뛰어났다. 블라지미르는 레닌과 트로쯔끼와 지노비에프의 실물대 인형을 앞에 두고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의 초기와 후기 진행과 갈등사에 관해 한차례 강좌를 펼쳤는데 그 시간 자체만으로도 우리가 이 도시

에 온 보람은 충분했다 싶을만큼 그 강좌내용은 탁월한 것이었다. 밀랍 인형 전시실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일행들은 잠시 조금 전 들었던 러시아 현대사를 재음미하느라고 휴식의 시간을 가져야만 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