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여기서 눈팅하는 과정에서 제가 여기 글들을 보면서 느꼈던 불편한 점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민주주의나 선거라는 제도와 호남의 이익이라는 관점을 바로 연결해서 이해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엄연히 민주주의나 선거라는 제도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부분이익의 실현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선거와 호남의 이익을 너무 바로 연결짓는 점은 다서 거스르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즉 사적으로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공적인 장에서 바로 통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즉 여기 몇몇분들의 주장이 주장이 현실정치에서 그대로 반영되기 어려운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정치인들이 님들의 주장을 하나의 정치적 주장화하거나 정책화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지요.
 
우선 대의제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한 부분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부분이익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궁극적으로 전체이익을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자가 국정을 운영할때 국민의 경험적 의사와 추정적 의사를 잘 조화시키되 최종적으로 전체 국민의 추정적 의사에 따라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다 이런 이유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호남의 이익이라는 관점 하나만을 가지고 이번 선거에서 누굴 찍겠다 어쩌겠다 하는 주장을 반복하거나 나아가 현재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는 친노를 심판하겠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면 할수록 님들의 주장은 공감에서 현저히 불리한 대접을 받을 수 받게 없습니다.

즉 이것은 공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올바른 주장도 그 맥락이 틀리거나 장소가 틀리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기택이나 조순등이 주장했던 정당 내부 민주화가 필요한 과제이긴 했지만 적어도 아이엠에프 하에서 그것을 가지고 야권심판론을 주장하는 것이 공감을 일으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분명 호남의 차별 지역적 불균형 이건 객관적 팩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관철하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국가 전체의 이익과 조화되어야 하는 문제와 나아가 호남 외에 차별받았던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이 함께 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자 신문을 보니 새누리당에서 야권심판론을 들고 나왔나 봅니다. 역시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제가 누누히 이야기했듯이 민주주의 심판모델이 특정 지역에는 통하지 않는 현실이 저런 황당한 이야기들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국정을 책임지던 세력이 이제와서 자신들의 국정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야권을 심판하는게 선거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경이 민주주의 기본이 안되는 것이고 그것은 민주주의 심판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해 한마디로 겁대가리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김용민껀의 경우에는 그런 개인에 한정해서 그들의 인물됨이 떨어지므로 특정선거구에 한해 못찍겠다는 그런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야권심판론은 최소한의 기본을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주장을 여기 몇몇분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단지 호남의 이익 하나만을 위해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님들의 주장이 전체 국민의 이익과 조화된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그게 진정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십니까?

오히려 님들이 그런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는 주장을 하면 할수록 호남의 이익에는 더 부정적으로 작용할 겁니다. 호남의 이익만 있는 것이 아니고 충청의 이익도 있고 강원의 이익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정현과 같은 몇몇 특수한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최소한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님들의 주장이 앞으로 일반적으로 호남이 나아갈 방향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영남 지역주의에 대한 꾸준한 비판을 통해 그것을 어떻게 서로의 감정을 상하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라는 큰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진정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야 언제가 나중에라도 님들의 주장을 현실 정치에서 구현하고픈 그런 정치인들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자면 솔직히 대안제로의 '자기는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주장은 감정배설의 카타르시스를 줄지언정 그 어떤 문제 해결책도 가져올 수 없다는 점입니다.

먼가 냉정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선거는 분명 주권의 실현이고 권리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책임도 따르는 것입니다. 호남의 이익을 위해 그 어떤 것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기본 전제에서 출발하는 논의는 잠시 통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역사의 패배자가 될 뿐입니다. 지금 영남 지역주의가 잠시 그들에게 이득을 줄 지언정 역사의 궁국적 패배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솔직히 님들의 주장이 여기 영남 분들에게 인식적으로 감정적으로 수궁갈 수 있을 정도가 되지 않는 한 영남의 지역주의는 사실 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수십년 간 알게 모르게 공유해 왔던 그 어떤 것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고욕이기도 합니다. 노무현의 실패도 사실은 그런 것에서 연유하지 않았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스스로의 내면화된 영남 지역주의 멘탈리티를 극복하지 못한 그런 것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호남의 이익 앞으로라는 단순한 주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닐꺼라고 봅니다. 보다 고차원의 방정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이익 앞으로, 닥치고 영남친노 아웃 이런 식의 감정적 배설은 고차원의 방정식은 커녕 님들 주장의 타당성 자체를 갉아 먹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냉철해 집시다. 무엇을 먼저 하고 나중에 해야 할지를 구분하자는 것입니다. 선거라는 기본적 민주주의 제도의 기본 취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호남 이익 앞으로를 위해 선거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선거가 이익과 연결되지만 무슨 돈거래하듯이 그렇게 연결될 수 있는 문제는 분명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의 주장이 보다 현실적이고 객관적이기 위해서는 그것을 넘어 전체 국민의 이익과 님들의 주장이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남 지역주의가 민주주의 심판모델에 극히 해롭다는 저의 주장의 그런 예시가 될 겁니다. 마찬자기로 호남의 이익이 전체 국민의 이익과 또 타 지역의 이익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세밀한 논의없이 닥치고 호남 이익 앞으로를 외치면 거기게 누가 동의해 주겠습니까?  더구나 선거라는 공적 제도를 단지 호남 이익 앞으로에 이용해 먹겠다는 식의 대다수의 호남인이 주장하지도 않는 그런 주장을 과잉대표하면서 말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공감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나아가 경제학 수업시간에 배우는 구성의 오류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이야기이지만 전제적인 보면 오류가 되는 것이 바로 구성의 오류입니다. 저는 과거 노무현이 내어놓은 그 지역주의 해결책이라는 것이 구성의 오류에 빠졌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민주개혁세력전체의 괴멸이라는 측면에서 구성의 오류죠. 그외에도 몇가지 더 있습니다.) 그런데 님들이 내놓은 주장 역시 그런 구성의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닌지 묻고 싶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님들의 호남차별 주장은 저도 주장하는 내용이고 그래서 분명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주장이 다른 전체적인 것과 이어질때 그것이 항상 타당한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비록 우리가 그렇게 비판했던 노무현에게서 배워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무현의 대통령이 되고 나서의 잘잘못을 떠나 그는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라는 것과 관련하여 또는 다르게 말하면 민주당 내 영남권력의 확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적어도 와신상당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보다 더 큰 가치인 민주주의 심판모델을 위해 자신의 주장을 잠시 접는 판단력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주장이 되도록 와신상당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여기 코지토님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를 객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야 모두에게 공감을 주는 나아가 행복을 주는 그런 담론형성이 가능할테니깐요. 

아무튼 저는 여기 몇몇분들의 주장에 대해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공감까지는 할 수 없네요. 이게 저의 양심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