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다문화'라는 말은 참 한숨 나오게 하는 말이다. 값싼 외국 노동력을 수입해서 인건비 줄이고  매매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커플링으로나마 정상적 가정생활의 불가능으로 인한 하층 성인남자들의 민생고를 줄여서 사회체제를 더 안정되게 하자는, 순전히 정치경제적 취지에서 비롯된 한국 사회의 새로운 일면에 '문화'라는 후광을 덧붙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다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들을 지니는 커뮤니티들이 한 사회 안에서 평화공존할 때만 존재한다.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는 두 남녀가 남자의 나라에서 가정을 꾸릴때는, 그 나라가 한국이 아니더라도 그렇지만 한국일 때는 특히나 더, 그런 진짜 의미의 다문화라는 것은 자리잡을 수 없다. 물론 한국의 다문화 가정 지원 정책은 실제로는 통합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외노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문화라는 쟁점은 외노자들이 자기들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구현하는  커뮤니티에서 생활의 상당부분을 영위하고 한국사회의 주류 문화에 통합되는 것을 꺼려할때 발생한다. 단순히 그렇게 하지 않을 여유와 기회가 없어서 주로 자기들끼리 모여살고 주로 자기들끼리 어울려 산다고 해서 발생하는게 아니다. 외노자들이 우리 '주류' 한국인들이 편안해 하는 한국 고유의 생활양식이나 고유하게 한국적인 예절/에티켓에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 감각에 따라 적극적이고도 공공연하게 무슨 도전이라도 하고 있나? 그들 일부가 본래 한국인들보다 - 당연히 - 더 낮은 비율로 저지르는 범죄들이 그런 문화적 도전행위인가?

나는 한국인들의 유전자 풀이 더 풍성해진다는 생물학적 잇점 하나만 가지고서도 외모와 피부색이 조금 다른이들의 피가 기존의 한국인들의 피와 섞이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할 의사가 있다. 적잖은 한국인들의 순혈의식에도 오래전부터 구역질을 내왔다. 그러나 기본적 생활경험이 같고 말도 통해서 서로를 더 잘 느끼고 이해하기도 쉬워  화기애애한 가정공동체를  꾸밀 여지가 큰 상대를 두고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로 그런 상대를 구하지 못해 먼 타국땅의 말안통하고 십중팔구 세대차이까지 나는 처자들을 거의, 그것도 급히, 수입하는 방식으로  반려자로 삼아야 하는 일부 한국남자들의 처지 및 그 처지를 만들어낸 한국 사회의 구조와 큰 손들에게 화가 난다. 내가 맘에 드는 외국 처자와 서로의 말을 배워가는 과정을 거치며 차근하고도 차분하게 연애할 기회를 누린 다음  그 처자와 결혼하기로 결정하는 것과 이런 식의 선택과 과정의 여지가 거의 없는, 매매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결혼 사이에는 거의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사이의 차이가 있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 가정이 얼마나 화기애애할 것인가? 물론 국가는 이런식으로 가정이 이루어지 않았다면 지출하고 동원하지 않아도 되었을  돈과 인력을 다문화 가정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지출하고 동원해야 하고 거기에는 모든 국민이 낸 세금이 들어간다. 다문화 가정을 만들어낸 것은 한국 여자들이 능력있는 남자들을 유난히 밝히게 하고 일부 한국남자들을 연애와 결혼이 불가능한 무능력자로 양산하는, 주로 자본과 거기 빌붙은 이들이 이득을 보는 한국사회 고유의 정치경제구조인데, 그 뒤치닥거리마저 우리 모두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는 외국의 값싼 노동력이 대량으로 들어오는 현실에 분개하는 이들이 적잖다. 그들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이 깎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노자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종은 애초 임금과 처우가 너무 낮아서 한국 노동자들이 꺼려해왔던 직종이라는 반론도 있다. 후자라면 외노자들의 존재는 필연적이지만 전자라고해서 덜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내가 자본가나 중소기업 사장님이라고 해도 더 값싼 신규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는 동시에 기존의 노동력의 가격을 낮추거나 정체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환호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아래서는 당연한 그 선택을 사장님들과 자본가들이 하는 것을 막을 권리를 전형적으로 부르주아적인 정권이 갖고 있을리 없다. 외노자수입과 다문화 정책이 어느 정부에서 비롯되었는 지를 따지는 것은, 그 어느 정부가 우파 국수주의를 자처했던게 아니라면, 부질없는 짓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어떤 입장이나 처지에서는 값싼 외국 노동력의 수입은 자본가나 사장이 아닌 나에게도 이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생활력강한 조선족 아줌마들 때문에 내 식대가 더이상 오르지 않고 낮은 임금과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 동남아 및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청년들 때문에 내가 주로 쓰는 저가형 상품들 일부가 그 저가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이 외노자 수입과 다문화 정책에 밸이 뒤틀린다면 평범한 순혈 한국인들의 삶의 질의 확보를 최우선시하고 그 목표를 방해하는 것들은 가장 힘쎈 자본이라고 해도 억압할 수 있는 극우민족주의 정당을 찾아보던가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