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사태, 일명 광주 항쟁, 일명 광주 민주화 운동의  성격 및 정체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군맹무상(群盲撫象)이겠지만.


•  성격

1. 언제: 박정희 암살후

2. 어디서: 전라도

3. 누가: 김대중 지지자

4. 무엇을 어떻게 왜: 무장 저항권 행사

5. 결과: 주사파의 spawning pool


김종필 회고록에 의하면 이승만이 재임 기간중에 ~2만 명을 미국에 유학생으로 보냈는데, 이중에는 심지어 6.25 남침으로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복무 기간을 마치고 유학 간 사람들도 있으니, 유학생중 귀환하지 않은 리 군(群) 연구로 유명한 캐나다의 수학자 이임학, 서양 철학의 주제학(主題學)적 연구로 알려진 미국의 철학자 승계호, 김일성 연구의 태두인 미국의 역사가 서대숙 같은 사람들이 있으나, 대부분은 귀국하였다. 이승만이 비록 4.19로 물러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그후 반 세기가 넘도록 남한을 지배하고 있는 친미 유학파의 비조요 태(太)대부인 셈이다.


그 2만 명중 ~1.2만 명이 군인이었으며, 알고 나면 좀 의외이겠지만 박정희, 김종필,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등이 전부 미국 유학파 출신이다 (6개월-1년). 박정희가 죽었을 때  권력 공백을 메운 세력인 "신군부"라는 것이 경상도 출신 친미 유학파들이었으니, 이들 또한 이승만의 잔존물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반공을 체화한 이들과 김대중은 당연히 양립할 수 없었고, 그래서 5.17 쿠데타 때 김영삼과 김종필은 가택 연금으로 끝났으나, 빨갱이 의혹을 받고 있었고 실제로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학생 시위를 지도하였던 김대중은 구속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


• 김영삼이 국가모독죄 혐의로 유신국회에서 제명되고 구속이 임박하자 →  부마 항쟁이 일어났다.


• 김대중이 내란음모죄 혐의로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구속되자 → 광주 항쟁이 일어났다.


위 예시들의 인과 관계를 "이것 다음이므로 이것때문 (post hoc ergo propter hoc)의 오류"라고 주장할 사람이 감히 있겠는가?


이 양자는 둘 다 무슨 [자유] 민주주의적 대의보다는 지역 연고주의, 종파주의, 종족주의의 결과물이라고 봄이 보다 냉정(冷靜)하고 적확(的確)한 평가일 것이다. 일인당 GDP 일천 돌라 수준의 나라에서 자유 민주주의란 개발의 쇠편자요 모기발의 워커였으니, 자유가 실재하려면 (1) 정신적 건강, (2) 신체적 건강, (3) 재무적 건강의 삼요소가 모두 필요 조건이다. 자유가 없는데도 민주주의라면 "인민 민주주의"밖에 더 되겠는가?


• 김영삼이 국가모독죄 혐의로 유신국회에서 제명되고 구속이 임박하였으나 → 광주는 조용했다.


• 김대중이 내란음모죄 혐의로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구속되었으나 → 부마는 조용했다.


광주 항쟁이 정말 반(反)독재였는지 단지 반(反)전두환이었는지 현금의 전라도 상태를 보면 추정할 수 있으니,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 H. 카의 주장이 생각난다. 반(反)독재가 맞다면 김일성 독재에도 마땅히 반대할 터이나, 실정은 그와 정반대이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20)


2022-05-20


덧글: "몽골 독 가설"에 의하면 러시아, 터키, 이랔, 이란, ~스탄, 지나, 조선 등에서는 자유 민주주의가 영원히 실현 불가능하다.


근대 문명 → 합리주의 → 개인의 탄생 → 천부 인권설 → 자유 민주주의 순서의 첫번째 단계부터 실패이기때문이다. 


• 자유 민주주의(죤 롴): 개인(個人)의 의지

• 민주 집중제(레닌): 당(黨)의 의지

• 인민 민주주의(모택동): 인(人)의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