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태리언 레프트가 보는 롤즈의 정의론(正義論)과 소셜 캐피털

 

  

 '소셜 캐피털'은 중립적인 단어는 아니다.  '소셜'과 '캐피털'이라는 용어 그자체에서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시피 정의(正義)와 분배에 관한 정치경제적 입장이 관여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들의 정치경제적 스탠스에 따라 소셜캐피털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정의(定意)될 것이다.  이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규범의 문제 내지 당위의 문제로 다뤄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리버태리언으로서 소셜 캐피털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현재 리버태리언적 가치관은  앞으로의 미국을 지탱해나갈 시대정신 그 자체 혹은 미국의 시대정신을 보완할 중요한 이념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성향의 미국 지성인들 사이에서의 논의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엘리트들은 앞으로의 미국의 시대정신은 '보수적 가치를 가진 리버태리언' 과  '리버태리언적 가치를 가진 보수'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미국의 시대정신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지고 논의 중이다.

(기사 참조 : http://www.economist.com/blogs/democracyinamerica/2011/05/leaning_libertarian )

 

 

그런데 리버태리언을 분류 정의하는 시각에는 리버태리언은 좌파가 없고 리버태리언은 모두 우파라는 시각이 있고,  리버태리언에 좌파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나는 후자의 입장을 지지한다.

 

 

리버태리언의 분류에 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전자의 분류법은 '좌파 vs. 우파' 구분을 먼저 한 다음, 우파를 컨서버티브와 리버태리언으로 나누는 것이고  좌파를 리버럴과 사회주의로 나누는 것이다.후자의 분류법은 '권위주의 vs 리버태리언'을 구분을 먼저 한 다음 리버태리언을 다시 리버태리언 좌파와 리버태리언 우파로 나누고 권위주의를 권위주의 좌파와 권위주의 우파로 나누는 것이다.  노엄촘스키의 경우, 리버태리언 좌파라고 칭해지는데 이러한 호칭은 물론, 후자의 입장에서 리버태리언을 분류 정의한 결과다. 

 

 

항간에는 전자의 시각이 더 일반적인 듯하다. 연원적으로 리버태리언은 작은정부주의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정부주의자인 리버태리언들은 흔히들 경제 이슈에서 우파적 스탠스를 취한다. 정부의 간섭을 경원시하고 기업의 자유를 존중하고 경제 성장을 중요시하니 분배와 복지이슈가 아무래도 소외되기 쉽고 '결과적으로는' 우파가 될 (우파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참고로 리버태리언은  기존의 보수우파와는 다르다. 기존의 보수 우파들은  분배보다는 성장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에 따라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자하는데 리버태리언은 그 인과관계가 반대다. 즉 리버태리언은 정부의 간섭이 없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결과적으로 기업의 자유가 보장되고 분배나 복지보다는 성장이 우선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리버태리언들은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수의 구별에 관심이 없다. 리버태리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유다. 리버테리언에게는 단지 타인(정부)의 간섭을 배제시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시대는 계속 변한다. 리버태리언 우파적 가치관을 수정없이 받아들여서 유연하지 못하게 작은정부주의에 의한 정부의 무간섭을 고수하면 이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로 연결되고 사회적 약자들의 생산 수단을 전면적으로 사유화하는 것이 일반화된다. 결국 현실에서 1:99 의 사회가 되며 사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리버태리언들은 리버태리언적 가치(배분적 정의 사상에 의해 평등을 만들어내는 인위적 간섭을 가급적 배제하고 평균적 정의와 자유를 우선하는 것)를 고수하면서 이러한 작금의 정치경제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리버태리언 우파와 리버태리언 좌파는 정의를 보는 관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A,B,C,D 4명이 사무실에 모여서 10$짜리 피자를 주문해서. A: 5$, B: 3$, C: 2$ D: 0$ 이렇게 갹출해서 배달된 피자를 나눌 때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일까라는 물음에 리버태리언 우파는 일단 피자를 10조각으로 나누고 A:5조각, B: 3조각, C:2조각, D:0조각으로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고 본다. 이과정에서 리버태리언 우파는 배분적 정의는 가급적 배제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A는 5조각으로 배불리 먹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필요하게 과식하기도 하고) D는 그냥 손가락 빨면서 쫄쫄 굶게된다.

 

 

그러나 리버태리언 좌파인 나는 다르게 본다. 리버태리언 좌파도 배분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기는 하지만  배분적 정의라는 가치 그 자체를 배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진보 내지 리버럴들처럼 배분적 정의를 의도적으로 간섭하여 실현하는 것을 피할 뿐이다. 리버태리언 좌파는 배분적 정의의 가치를 리버태리언적으로 구현한다. 즉 위에서 제시한 파이 분배의 사례에서 A가 5$를 가지기 까지의 배경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배분적 정의를 구현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리버태리언 좌파들은 A가 혼자서는 많은 재산을 모으지 못한다고 본다. 그러니 그 재산 형성과정에서 소셜 캐피털이나 기타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만큼을 사회로 되돌리고 난 다음 자기의 표면적 기여분을 재조정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본다. 리버태리언 좌파는 이렇게 함으로써 정부의 간섭 즉 복지나 분배를 위한 개입을 최소화 하려는 기본적 성향을 따라 정부의 간섭인 의도적 배분을 배제했으면서도 좌파 일반이 추구하는 배분적 정의의 가치를 우회적으로 시스템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리버태리언 우파들이나 공리주의자들은 분배 하는 그 시점에서의 A가 사회에 기여한 기여분만큼의 분배를 하는 것이 정의라고 보지만, 나같은 리버태리언 좌파는 분배 하는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의 (지금까지 온 과정에서의) A가 사회로부터 기여를 받은 만큼의 재조정을 하는 과정을 추가한 다음에 분배 하는 시점에서의 A가 사회에 기여한 기여분 만큼의 분배를 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리버태리언 좌파의 생각은 결과를 표면적으로 보면 일반적인 좌파나 리버럴과 같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버럴, 좌파들이 배분적 정의의 사상에 따라 현시점에서 인위적으로 개입하고 간섭하여 평등을 구현하고자 하지만  리버태리언 좌파는 사회 구성원들의 개인적 소유물을 가지게 된 과정에서 사회적 소유물, 향유물인 소셜 캐피털이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배분적 정의를 추구할 필요 없이 평균적 정의의 사상에 따라 급부와 반대급부가 균형을 이루도록 소셜캐피털을 평균적으로 분배하면 된다고 본다는 점에서 리버럴·좌파와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또 리버태리언 좌파의 시각은 평균적 정의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보수 우파와 같지만 일반적인 보수 우파들이 복지나 분배의 문제를 가진자의 시혜적 조치 내지 도덕성에 기여한 사회 환원 내지 사회불안의 예방을 위한 투자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는 데 비해 리버태리언 좌파들은 가진자들의 소유물에는 원래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향유물, 소셜캐피털이 존재한다고 보기에 이를 도덕적 시혜적으로 사회로 되돌려 주는 게 아니라 당연히 원래 의무적으로 사회로 되돌려 줘야 한다고 보는 점에서 일반적인 보수 우파와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

 

 

리버태리언 좌파의 논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예를 든 파이 분배의 경우에에 대입해보자. 만일 각자에게 40%만큼의 사회혜택부분 내지 소셜캐피털의 향유분을 인정한다면 A가 가진 5$중에서 2$는 자기가 향유하는 소셜 캐피털이고 이것은 형식은 A의 개인적 소유물이지만 실질은 A가 위임해서 가지고 있는 A의 향유물이며 사회적 소유물이다. 그러한 소셜 캐피털은 B에게는 1.2$,  C에게는 0.8$  D에게는 0$만큼 있으며 여기서 인정된 '소셜 캐피털'의 총합은 4$이다.

 

 

전체 10$가운데 6$는 각자가 현시점에서의 기여도만큼 피자를 나눠가지고, 4$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일단은 롤즈의 'Maxmin 원칙', 즉 '무지의 베일을 쓴 상태에서의 최소수혜자 이익 극대화 원칙'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지금 존재하는 이론에서는 가장 합리적이다.  (그러나 롤즈의 최소수혜자 이익 극대화 원칙은 좀 더 정교하게 조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위에서 처럼 소셜캐피털의 양을 4$로 했을 때 이를 모두 D에게 배분해버리면 차상위 최소수혜자인 C에게 돌아가는 1.2$를 넘어서게 되며 이것은 또 다른 차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수혜자 이익극대화를 적용할 때 최소 수혜자 이익의 한계를 차상위수혜자 이익의 범위안에서 (1.2$를 넘지 못하게) 정해야 한다. 그렇게 분배하고 난 다음 남은 2.8$는 A, B, C, D 모두에 평등하게 0.7$씩 나눈다. 결과적으로 A는 3.7$, B는 2.5$, C는 1.9$, D는 1.9$ 씩 가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최소수혜자 D는 차상위최소수혜자 C와 같게 된다. 결국 이런 과정이 누적되면 점진적으로 최수수혜자의 수준을 향상시켜서 최소수혜자 집단의 크기가 커지게 되며 사회전체적으로 평등한 자유가 구현된다.   

 

 

소셜캐피털의 비중을 얼마나 잡을지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결정할 문제인데,소셜캐피털을 10%로 인정하게 되면 각자의 소유물과 향유물의 크기는  A : 4.5$/0.5$   B: 2.7$/0.3$  C: 1.8$/0.2$  D : 0$/0$가 된다. 이럴 때 최소수혜자 D에 게 돌아갈 최대의 이익은 1$가 된다. 결과적으로 A는 4.5$,  B:2.7$, C: 1.8$,  D: 1$가 된다.   이런  식으로 최소수혜자에게 돌아갈 이익,  최소수혜자의 향유물이 차상위 최소수혜자의 소유물 보다 적을 경우 최소수혜자 집단은 수준을 향상시킬 수 없으며 사회는 발전할 수 없게 된다.

 

 

그 사회 집단만의 문제라면 가진자들로서는 그러한 최소수혜자집단을 방치해도, 소셜캐피털의 비중을 낮춰도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사회 집단간의 경쟁에 있어서는 최소수혜자 집단의 자원을 활용할 수 없는 사회는 도태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최소수혜자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를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해서 그 사회집단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소셜캐피털의 비중을 늘려가야 한다.

 

 

이상의 생각은 일반적인 리버태리언 좌파들의 생각이 아니라 리버태리언 좌파에 부합하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최소수혜자 이익 극대화 원칙을 원용한다는 점에서 롤즈의 정의론 사상을 많이 인용했지만 소셜캐피털의 개념을 리버태리언적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롤즈의 사상과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나는 롤즈의 정의론은 가정 단계에서 엉터리라고 본다. 롤즈의 정의론은 두가지 가정에서 출발한다. 첫째. 정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무지의 베일을 쓰고 선택한다. 둘째. 각자는 자기의 이익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여기서 개인은 자기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가정은 옳지만 무지의 베일에서 선택을 한다는 가정은 완전히 엉터리다.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갓 태어난 어린애가 아니다. 현실에서 무지하지 않기에 거시정보 경제와 제도 경제의 측면에서 롤즈의 정의론은 완전히 갈아 엎어서 버리고 다시 새로운 정의론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ps: 리버태리언 : 연원적의미는 작은정부주의자. 정치적 영역과 경제적 영역의 모든 영역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주의자(이중의 자유주의자). 자기결정권, 공정한 경쟁,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국가와 사회의 간섭을 가급적 배제하고 개인(기업)의 자유, 자율을 강조함. 또 국가에 의한 간섭이 필요한 배분적 정의보다는 간섭이 없는 평균적 정의를 강조함. 정치사회이슈에서는 진보(리버럴), 경제이슈에서는 보수(反리버럴)적 스탠스를 취하는 등 기존의 진보 보수 구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경제사회적 스탠스를 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