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이 늦어졌기 때문에 댓글보다는 본글로 올립니다.


제가 성경을 읽어본 기억에 따르면 성경에서는 말이나 낙타를 탄 이야기가 드물고 오히려 나귀를 탔다는 얘기가 더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오마담님이 '아브라함이 낙타를 타고 이동했다'는 이야기를 하신 게 의아해서 찾아봤더니, 아브라함이 낙타를 탄 이야기는 나오는 것 같지 않고(다 검색해본 것은 아닙니다만),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인 이삭의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종을 먼 친척집으로 보낼 때 그 하인이 낙타를 타고 또 신부인 리브가를 낙타에 태워왔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저로서는 오마담님이 소개하신 '당시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는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얘기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 흔적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낙타를 키우는 우리? 낙타를 타는 데 필요한 안장 등 도구? 이런 것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서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나중에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시기의 증거는 어떤 것들인가요?


제가 알기로 낙타는 지금도 특별한 우리가 없이 거의 노천에서 키우는 것으로 압니다. 낙타 우리의 흔적이 남아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안장 등 도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인류가 오랜 기간 말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했지만 '등자'가 발명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낙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낙타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해도 그에 따르는 특별한 흔적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입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창세기의 기록에 좀더 신뢰가 가는 게, 평소 교통수단으로서 낙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가 이삭의 신부감을 맞이하기 위해 사람을 보낼 때 낙타를 타고 갔다는 얘기가 나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의 친족은 당시로서는 무척 먼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즉, 사막을 건너는 경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나귀를 이용하기는 어렵고 낙타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죠. 사소한 것이지만, 성경 기록이 상당히 현실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국의 경우와 비교해서 말씀하셨는데, 정말 중국과 이스라엘은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사례입니다. 중국은 역사의 출발 단계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제적 시스템을 운영해온 나라입니다. 그리고, 전세계 어떤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게 오랜 기간 동안 문명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나라입니다. 이집트나 인도,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문명의 발상지는 이후 거의 다 과거의 영광을 잃고 퇴락하거나 심지어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몰락하기도 했지만, 중국만은 예외죠. 그 긴 역사기 동안 단 한번도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난 적이 없었던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의 유물 및 유적과 별볼일 없는 유목민 무리가 만든 이스라엘의 유적을 단순 비교한다는 게 넌센스입니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양적 질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양자를 단순 비교하면서 "중국과 같은 유물 유적이 없으니 믿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이 그 증거를 대는 것이 맞다는 법률적 원리를 제시하셨는데, 저로서는 좀 무리가 있는 논리라고 봅니다. 성경의 기록은 일종의 '증언'이라고 봅니다. 법정에서 증언을 하는 사람에게 "그 증언을 입증하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하나요?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하던 지방의 아주 소규모 이주도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대규모로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런 역사적 사실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런 말씀도 하셨는데 근거가 있는 말이라고 봅니다. 다만, 당시 이집트의 기록이 어느 시대건 빠짐없이 꾸준히 이어져왔나요? 정말 그렇다면 저도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했다는 사건이 정말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집트의 그 기록이란 게 단절없이 쭉 이어졌을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이 정확하게 언제적 일인지 아직까지는 분명치 않은 것으로 알구요. 그렇다면 그 기록의 부재가 그 사건의 부재를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불교나 유교, 마호멧교 등 세계의 유력 종교는 대개 그 출발점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그 유래의 역사성을 굳이 의심하는 시각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즉, 어떻게든 그 출발점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그 종교적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기독교의 출발에 대해서는 그 출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 많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만일 지금 제기되는 온갖 의문들이 다 맞다고 치고, 예수도 없고 출애굽 사건도 없었고 다윗이나 솔로몬도 없었고 성전도 없었고 아브라함 등등도 없었다면 도대체 전세계 몇십억 인구가 믿는다는 이 종교는 어디에서 어떻게 나온 걸까요? 저는 그게 더 신기해요. 출발점이 다 엉터리였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웬 정신병자들이 이렇게 많아졌느냐 하는 겁니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공격해 성전을 파괴하고 거기서 탈취해 가져온 유물을 로마의 개선문인가 하는 유적에 부조로 남긴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유명한 일곱 가지(枝) 촛대가 분명하게 새겨져 있더군요. 즉, 당시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거기서 저 촛대를 탈취해왔다는 걸 로마인의 입장에서 인증하고 있는 겁니다. 즉, 그것들이 실재했다는 겁니다. 오마담님이 인용하신 논거를 보더라도 저 촛대를 보관하고 있던 성전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10세기 경에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봐야죠. 그렇다면 예수님이 활약하기 무려 1천년 전에는 저 성전과 촛대와 그것들을 둘러싼 거대한 종교제의가 존재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저런 거창한 종교시스템이 1천년 전에 느닷없이 사막 가운데에서 뛰쳐나왔을까요? 글쎄요,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상당한 역사적 기원이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나안 정벌 당시에 그 지역에 성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성이라는 게 중세시대 유럽의 거창한 돌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어떤 자료에선가 당시 에리코의 성벽이 실제로는 민가들이 겹겹이 붙어있는 외벽이 성벽 노릇을 했다는, 그런 유적이 발굴됐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성경 기록에는 당시 가나안 지역에 왕들이 무척 많이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그 친구들이 모두 이집트의 파라오나 하다못해 중국의 제후 정도의 권력이라도 가진 존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마 몇천명 규모도 안되는 조그마한 마을을 지배하는 무리들이었겠죠. 하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왕으로 불렸을 것으로 봅니다. 성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다듬지 않은 돌로 약간 높은 담을 쌓은 것도 당시로서는 성으로 불리지 않았을까요? 그렇다고 그 기록이 엉터리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워낙 전문지식이 부족해 이런저런 질문이 많습니다. 게을러서 책은 읽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이런저런 궁금증도 풀고싶기는 하군요. 오마담님이 소개하신 책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본이 절판이라니 아쉽네요. 비슷한 다른 책이라도 있으면 보고 싶습니다.


ps : 흐르는강물님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제가 일부러 검색해서 찾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전에 읽어본 기억으로는, 요세푸스의 저작에 단 몇줄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문장이 요세푸스의 다른 문장과 달리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은, 예수님을 인류의 구세주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더군요. 요세푸스 같은 역사가가 (설혹 그렇게 믿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저작에 그런 식으로 특정인을 표현했을 리가 없다는 게 '후대 가필론'의 유력한 근거인 것으로 압니다. 저 역시 이런 시각에 동의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