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부 커뮤니티들을 달구고 있는 "설거지론"이라는 화두가 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청춘기에 방탕 문란하게 놀아나던 여자에게 기생(寄生)당하지 말자, 그것은 설거지에 불과하다"라는 자성론(自省論), 자조론(自嘲論)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듯이 "덫에 꼬리 잘린 여우의 거짓 선동"이라는 해석도 있다.)

디씨 인사읻의 어느 갤러리에서 시작된 것인지 미상이나, 현금의 대선 정세와 관련하여 누군가가 2030남들을 분기탱천하게 만들기 위하여 선동하고 있다고 추측한다. 윤석열이 곧 숟가락 얹을 거라고 본다.

여자가 연애용 남자, 결혼용 남자를 따로 둘 수 있음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내가 결혼했다 」(2008) 는 전설적인 영화도 있으니 말이다. 그보다 선행하여, 노무현이 갈파하였듯이, 남자들이 먼저 육아용 여자, 오솔길 담화용 여자, 땐땐땐용 여자를 구별하면서 삼처사첩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카르마의 법칙에 따라 그에 대한 보복이 있을 것이 당연하다. 이를 가리키는 고사성어도 있으니, 제나라 처녀로부터 유래하는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이 그것이다. 밥은 못생긴 부자집에서 먹고, 잠은 잘생긴 빈자집에서 자고 싶다는 야무진 꿈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인습의 굴레가 길고 무겁기때문에, 현대 남한 여자들이 국기(國技)가 사기와 매춘이 나라 사람답게, 20대에는 "의무없는 쾌락"을 즐기다가, 30대에는 어수룩한 모태쏠로 능력남에게 "쾌락없는 의무"를 뒤집어 씌우고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남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이제 그들이 "설거지론"이라는 충격적인 정문일침(頂門一鍼)의 단어로 말미암아 아낙노리싯(anagnorisis)에 도달한 셈이다. 

아낙노리싯을 지나어로는 성오(醒悟, 깨어날 성, 깨달을 오)라고 번역한다. "남자가 되서 말야", "남자가 쪼잔하게", "남자라면 남자답게", "남아로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기타 등등의 이데올로기적 마취에서 깨어나, 자기가 실은 그동안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을 뿐임을 깨닫는다는 의미로서 적절한 번역이라 여겨진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중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노예가 "불행한 의식(das unglückliche Bewustsein)"을 탑재하게 됨도 이와 같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아준다"고 말하거나, 꾸밈노동이니 독박육아니 산후우울증이니 돌봄감옥이니 시월드니 명절 증후군이니 불평을 늘어놓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 근본 원인은 한 가지이다. 남편과 남편을 낳은 부모에 대한 애정과 감사가 없음이다.

"남자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정 급하면 신장이라도 판다.)
여자란 돈 많은 남자에게는 사랑을 아끼지 않는다."

출처 미상의 강호 격언이나, 연애시장/선시장 기웃거려 본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다들 체감하는 내용이다.

그런즉, 설거지론이니 퐁퐁단이니 퐁퐁시티니 나오는 근본 원인은 남자에게 돈이 부족하다는 한 가지 엄연한 사실이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설령 남자에게 돈이 부족하더라도, 만일 여자에게 돈이 많다면 이런 양상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며, 그때는 거울상의 정반대 양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기둥 서방'이 그것이다.

결국 이런 현상은 "남자들에게 돈이 없는데, 여자들에게는  돈이 '더' 없다"는 남녀 소득/재산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남녀 소득/재산 불평등의 뿌리는 또한 무엇인가? 그것은 남녀 지력/근력/체력의 차이에 더하여; 가임기 여성의 임신, 출산, 달거리, 및 월경전 증후군의 유행이라는 생리적 핸디캡이다. 즉, 유성 생식때문에 발생하는 '자연 현상'이다. 리쳗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밝힌대로, 자기를 보다 더 널리 많이 오래 퍼뜨리려는 유전자끼리의 경쟁과 전략의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이 전장에서 사기(詐欺)와 착취(搾取)는 기본 요소이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역설적으로,
[성욕이] 약한 것이 [짝짓기 시장에서] 강한 것이고,
[성욕이] 강한 것이 [짝짓기 시장에서] 약한 것이다.

이런 자연주의적 결론에 도달하고 보니, 지구인 1.0을 지구인 2.0으로 엎그레읻하기 전에는 해결이 무망하겠음을 추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해결"이 꼭 필요한가?

(※ 1997년 국통금 사태는 남한 사회에 코페르니쿳적 전회를 불러왔고, 두고 두고 영향을 끼쳤다. 루잇 전환점을 넘기고서도 완전 고용을 유지하며 버티던 남한 기업들이 도태되었다. 종신 고용제가 무너지면서 종신 결혼도 보장할 수 없어졌다. 따라서 종신 결혼의 준비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전 시대에는 신혼 여행 가서 새벽에 베란다에 나와 홀로 뻐끔 뻐끔 줄담배 피우는 신랑이 드물었으나, 국통금 사태후 한 때 폭증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물론 그런 신랑 없다. 아예 기대도 아니 하는 것이다.)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