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업무를 가리키는 진료(診療)라는 말은 진단(診斷)과 치료(治療)를 한 단어로 줄인 것이다. 일종의 혼성어(portmanteau)이다.

진단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그것은,
1.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병력 청취)
2. 환자의 몸을 검사하고 (이학적 검사)
3. 환자의 검체를 채취하여 측정하고 (임상 검사)
4. 환자의 몸의 투시 영상을 얻는 (영상 검사)
일련의 과정으로 이어지지만,
결국은 의사의 추론에 의존한다.

진(診)자가 점칠 진이고, 단(斷)자가 끊을 단이다.
즉, 점쳐서 단정 내림이 바로 진단이다.

"오리처럼 생기고, 오리처럼 꽥꽥거리고, 오리처럼 걷는 동물을 무어라 부르는가?"
"오리."

"빨갱이처럼 생기고, 빨갱이처럼 말하고, 빨갱이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무어라 부르는가?"
"빨갱이."

다른 글에서 이미 적었듯이, 의사의 진단 및 위 문답에 이용된 추론은, 연역법(deduction)이나 귀납법(induction)이 아니라, 귀추법(abduction)이다. 그래서 이 추론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며, 틀릴 가능성을 항상 내포한다. 요컨대 점치기와 다를 바가 없다.

"여자처럼 생기고, 여자처럼 말하고, 여자처럼 행동하는 인간(man)을 무어라 부르는가?"
"여자."
"아닐 수도 있다."
"그럼?"
"여장남자(sissy, shemale, ladyboy)."

아무 때나 점치는 것은 아니다.

1 + 1의 답이 뭔지 점치지는 않는다.
자기가 인간인지 짐승인지 궁금해서 점치지는 않는다.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지면 죽는지 안 죽는지 점치지는 않는다.
남한이 원교근공할 나라가 각각 미국인지 공산 지나인지 점치지는 않는다.

점을 칠 때란,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답이 아니 나오는 비선형 고차 초월함수 방정식을 만났을 때, 해 볼 거라고는 그것 하나 남았을 때이다. 인지가 끊어지는 이런 궁지는 인생 도처에 있다. 가령 코빋-19 걸려 후각상실(anosmia)이 일어난지라, 봐서는 똥인지 된장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면?

"Ignorantia longa, scientia brevis."
(앎은 짧고, 모름은 길다.)

이 말을 장자의 "吾生也有涯(오생야유애) 而知也无涯(이지야무애)" 에 파로디하자면, "人知也有涯(인지야유애) 無知涯(무지야무애)"가 될 터이다. 아는 것이 없다 이 말이다.

윤석열이 검찰총장 자리에서 쫓겨남은 정해진 일인즉, 그 전에 차라리 스스로 사임함이 덜 창피하겠음은 불문가지이다. 그러나 그 사직을 3월 10일이나 3월 11일이나 3월 12일중 어느 날에 행함이 그중 나은 선택일지, 어느 날이 길일(吉日)인지 대관절 누가 계산할 수 있으며, 누가 판별식을 만들어 갖고 있겠나? 

이와 같이 어떻게도 이성적 판단이 아니 나올 때는 점을 치든가, 아니면 손쉽게 동전 던지기, 주사위 던지기라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역점도 간단히 하려면 산목대신 동전 가지고 하기도 한다.)

2021-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