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으로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이 여럿 있으나, 노벨상(노벨 기념 메달 포함)중 과학상을 받은 사람은 아서 루잇(1979년)이 유일무이하다. (경제학같은 경험 과학은 정밀 과학보다 층위가 매우 높기는 하지만, 과학이라고 쳐 주자.) 그는 영국 기사 작위도 받았고,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맨체스터 대학 교수 및 프린스톤 대학 정교수가 되기도 하였다. 

아서 루잇은 소년시부터 수재로 꼽힌 사람이므로, 흑인중에도 한외자(outlier)가 존재한다는 사례로 들만 한다. 왜 아니겠는가? 백인 노예주로부터 숱한 강간을 당하였을 터이니, 미국 흑인들중 순수 흑인(= 크로마뇽인)은 채 10%도 아니 되겠고, 그 사정이 서인도 제도라 하여 다를 턱도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인종학적으로도 서앞리카의 삼림 니그로 지역 인종(Forest negro local race)과 구별되는 미주 니그로 지역 인종(American negro local race)이라고 불린다.

각설하고, 루잇의 업적중 하나가 루잇 전환점(Lewisian turning point)의 개념이다.

남한이 겪은 1997년의 국통금 사태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그중 하나로 루잇 전환점을 지나고서도 기술 혁신에 의한 생산성 증가를 획득하지 못한 채 완전 고용과 종신 고용의 구시대적 파라다임을 고수하다가 망했다는 견해가 있다.

공산 지나가 루잇 전환점을 지났는가 안 지났는가의 논쟁이 있었는데, 결론이 안 난 모양이다. 공산 지나의 호구제(戶口制)가 엄존함을 보면, 아직 농촌에 방대한 산업 예비군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짐작된다. 만일 그러하다면 과거보다 감속은 좀 되겠지만 생산 요소 투입에 따른 생산량 증가가 당분간 여전하겠음 아닌가?

공산 지나가 망해야 남한에, 경제적으로는 주름살이 좀 생기더라도, 정치적으로 숨통이 트일 터인데, 갑갑한 일이다.

2021-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