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에게라면 무의미한 이야기이겠지만, 유신론자에게는 신이라는 존재에게 요구되는 속성와 그가 나툰 이 세상 사이의 불일치가 항상 두통거리이어 왔다.

• 신이 완전하다면 그가 낳은 이 세상은 왜 이토록 불완전한가?
• 신이 지선이라면 그가 낳은 이 세상은 왜 이토록 사악한가?
• 신이 잘못된 것인가, 이 세상이 잘못된 것인가, 둘 다 아니면 내 눈이 잘못된 것인가?

이런 인식론적 부조화가 불교에서 자재천소작설(自在天所作說)을 부정하는 근거인데, 그 방향으로 간다면 모르겠으되 일단 유신론을 인정한다면 뭔가 설명이 필요할 터이다.

그에 대한 해답들중에서 현대에 저명해진 신학이 하나 있으니, 이른바 "해방 신학"이 그것이고, 달리 희망의 신학, 혁명의 신학, 정치 신학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자유의 하느님에게는 하나의 자유로운 세계가 참으로 부응한다. 자유로운 세계가  아직 현존하지 않고 하느님이 아직 평안에 머물고 있지 못하는 한, 하느님은 세계 안에서 자신의 동일성에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이다. 요컨대 하느님은 세계와 함께 아직 중도에 있는 것이다."
(위르겐 몰트만, 「희망의 혁명」)

몰트만의 생각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신명기 12:9)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 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시편 95:8-11)

신이 불완전하기때문이 아니라 신의 창조 사역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그러므로 희망을 가지고 '인내'하라는 성무 일도(Liturgia horarum)의 귀절대로 행동할지, 아니면 희망을 가지고 "투쟁'에 참여하라는 맑스주의자들의 꾐에 넘어갈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일 테지만, 여하튼 적어도 가나안 땅에서만은 뭔가 끝장이 날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리 되면 제3차 세계 대전이다. 

그것이 끝나면 흑인[제일]주의자들이나 여성[제일]주의자들이나 전라도[제일]주의자들이나 만족하게 될 것이다, 모두 함께 자유로와 지거나, 최소한 모두 함께 부자유해질 터이므로.

"같이 당하는 난리는 난리가 아니다." (조선 속담)

남한에서는 대학생 실종-익사 사건과 문가의 삽질이 가장 큰 화두요 화제이지만, 이 별의 다른 곳에서는 다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을 굳이 적어 보았다.

2021-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