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의 역사관이 알려져 있기로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한다. 아와 비아의 투쟁은 영원히 지속 될 것이므로, 단재의 사관이 타오이즘의 정상(定常) 사관의 일종임을 쉽게 간취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 내지 해명할 점은 대관절 아(我)는 누구이고, 비아(非我)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아릿토텔렛이 생명을 조에(zoe)와 비옷(bios)으로 나누었으니, 나의 조에는 내 한 몸뚱이일 것이나, 나의 비옷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겠는가? 

짐작컨대 단재의 아(我)는 조선 민중들 수준이었고, 비아(非我)는 강도 일본 수준이었을 거라고 본다. 그에게는 조선과 일본이 어느날엔가 한 민족(nation)이 된다는 발상은 당연히 없었을 터. 마찬가지로 흑인[제일]주의자들이나 여성[제일]주의자들이나 전라도[제일]주의자들의 아와 비아가 제각기 다를 것이 명징하다.

인간은 비록 연약하나 "생각하는 갈대"이기때문에, 여러 차원의 시각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

I. 개인적(personal)
II. 국소적(local)
    A. 가족적(familial)
    B. 부족적(tribal)
    C. 지역적(regional)
    D. 종족적(ethnical)
    E. 민족적(national)
    F. 국제적(international)
    G. 인종적(racial)
    H. 성적(sexual)/성역할적(genderal)
III. 전역적(global)
IV. 우주적(universal)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대체 왜 우주적 시각에서 끝나야만 하겠는가? 여전히 '인간(human)'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인종(race)에 따라 그 성질 및 대접이 결정된다는 주장이 인종주의(racism)이다.


마찬가지로 종(species)에 따라 그 성질 및 대접이 결정된다는 사고 방식을 종주의(speciesism)라고 한다.


동물 보호론자들중 일부는 종주의에 반대하니, 그 귀결점이 비건(vegan)이다.


왜 거기서 끝나야 하는가? 사람과 개, 괴, 소, 말, 돝, 양, 닭, 오리 사이에 차별이 없으니 전부 평등한 동물로서 대접받아야 한다면; 이는 동물주의(animalism) 아닌가? 식물은 말 못 하니 그냥 마구 잡아먹어도 된다는 말인가? 


거기 반대하는 생물주의(biotism)를 주장한다 한들, 그럼 왜 무생물이라고 차별받아야 하느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 리자는 웬만한 인간도 누리지 못 하는 호사스런 대접을 받건만?


그래서 논리의 궁극적 귀결점은 자연(自然)을 자연(自然)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자연주의(自然主義)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자연주의자인가? "자연"에는 관심이 있으되, "주의"에는 관심이 없다. "주의"이면 이미 "자연"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변증법적 긴장 관계가 엄존한다, 맑스가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듯이.


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