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이 있는 까닭에 대하여 몇 가지 가설이 있다.  크게 나누면 비적응 가설과 적응 가설이다.

비적응 가설에서는 폐경은 단지 지구인들의 수명이 과학의 결과 연장된 때문이라고 본다. 원래 지구인들의 수명이 50년 정도이며 난자도 50 세까지 배란될 양만큼 저장되어 있었는데 (※ 미성숙 난자는 출생 당시 난소에 이미 들어 있으며 더 늘지 않음.), 그보다 오래 살게 된지라 폐경이 일어났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말이 안 됨은 지구인들이 애완동물로 키우게 되면서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개나 고양이의 보기를 보면 되겠다.

적응 가설은 비적응 가설과 달리 좀 그럴 듯한 추리를 동원하는데, 이것에도 몇 가지가 있으나, 그중 가장 각광받고 있고 거의 정설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 "할머니 가설"이다. 

할머니 가설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폐경하고서 번식 열외의 할미가 되는 편이 폐경 안 하고서 어미 노릇을 하며 딸과 먹이 경쟁 벌임보다 '자기 유전자를 퍼뜨림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외할미의 존재, 그것도 가까운 거리에서의, 는 초보 육아자인 젊은 어미의 자식의 생존율을 30% 정도 상승시킨다. 그래서 젊은 어미의 가장 큰 자산은 친정 어미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 반대로 시어미의 근접 존재는 젊은 어미의 우울증을 두 배로 늘린다고 하는데, 영유아 사망률에도 악영향이 있을 거라고 본다.)

범고래는 모계 사회이다. 이 집단은 가모장(matriarch) 아래 성장한 딸과 아들이 공존한다. 딸과 아들이 근친 결혼하는 것은 아니고, 한 범고래 집단이 다른 범고래 집단과 조우하였을 때 짝짓기가 일어나며, 짝짓기가 끝난 후 딸이든 아들이든 가모장 밑으로 돌아온다.  딸이 손자녀를 낳았을 경우, 이 손자녀들은 공동 육아의 대상이 되며, 그것을 총지휘하는 것이 가모장이다. 가모장의 책임에 해당하는 일은 이뿐 아니라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경로의 선택도 있으니, 노련한 경험의 유무가 집단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겠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과연 한 연구에 의하면 범고래 집단에 나이 많은 가모장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고가, 그 집단내 새끼들의 생존에  2배 초과의 차이를 내보인다고 한다.

리쳗 도킨스는 그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의 관점에서 어떤 자원을 사용함에 있어서, (1) 그 유전자를 100% 담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사용할 때의 효용과 (2) 그 유전자를 25%의 확률로 담고 있는 손자녀에게 사용할 때의 효용을 비교하여, 만일 후자가 전자의 4 배 초과라면 유전자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컨대 여기 비행기 조종술 학원비 1만 돌라 예산이 있는데,  물주인 여든 살 먹은 할미가 학원을 다닐 것이냐, 이십대 백수 손자가 학원을 다닐 것이냐의 선택이라면, 누구나 후자의 선택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처럼 할미의 입장에서 자기가 자식을 낳아 키울 것이냐 그 대신 딸이 자식을 낳아 키움을 도울 것이냐의 선택에서, 후자가 전자 대비 2 배 초과의 효용을 보일 거라고 예상한다면, 후자를 고름이 합리적이다.

이런 생각, 합리성(合理性)이란 이성(理性)이 전제됨이라는 것이 지구인들의 상식이다. 아릿토텔렛이 말하는 조에(zoe)와 비옷(bios)의 차이점을 인지할 정도 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도킨스의 탁월한 점은 이런 전제, 상식, 철학적 가정을 파괴하고, 오로지 유전자의 이기성 하나를 가지고 기계적으로 상황을 설명하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영화「맽릯(Matrix)」의 네오에게 주어진 것과 비슷하게 여기 한 개의 단추가 주어져 있다.
• 단추를 누르면 → 네가 죽고, 온 인류가 산다
• 단추를 안 누르면 → 네가 살고, 온 인류가 죽는다

이 선택에서 후자를 선택할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돌지 않은 한 없을 거라고 본다.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11:49b-50)

인류까지 갈 것도 없다. 평범한 4인 가족을 가정하자.
• 단추을 누르면 → 네가 죽고, 네 가족이 산다
• 단추를 안 누르면 → 네가 살고, 네 가족이 죽는다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 행위를 낳는다는 이 아이러니를 되새김해 볼 일이다.

2021-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