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제일]주의와 여성[제일]주의 및 전라도[제일]주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흑인[제일]주의를 설파하고 있는 현대의 사상가로서 유명한 사람이 Ibram X. Kendi이다. 물론 "흑인[제일]주의"는 나의 명명일 뿐, 그의 명명은 "반인종주의(anti-racism)"이기는 한데, "백인은 인종주의자가 될 수 있으나, 흑인은 인종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그의 명제 자체가 이미 인종주의이므로, 이른바 "반인종주의"란 반인종주의가 아니라, 그 이름이 "반인종주의"일 뿐이다.
(켄디는 현재 보스톤 대학 반인종주의 정책 센터 소장이자 교수이다. 2020년 Time 선정 세계의 유력 인사 100인에 뽑혔다.)

켄디의 주장을 요약한 핵심 문장이 있다.

"The only remedy to past discrimination is present discrimination. The only remedy to present discrimination is future discrimination."
(과거의 차별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현재의 차별이다. 현재의 차별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미래의 차별이다.)

그 실행 방안으로서 미국 헌법을 개정하여 반인종주의부(Department of Anti-racism)를 신설하고, 이 부서가 미국 전역을 감시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 실현 가능성은 고사하고, 그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이미 비판받고 있으나, 앞의 핵심 명제를 상기하여 본다면 그의 뇌속에 있을 법한 주장이리라. (그가 남한의 여성가족부 제도를 참조한 흔적은 없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악명 높았던 종교 경찰에서 영감을 받았을 듯 싶다.)

켄디의 핵심 명제는 정당한가?

만일 켄디에게 이런 명제를 들이밀면 그에게 반박할 말이 있을 것인가? 
"The only redemy to  pluperfect discrimination is past discrimination."
(대과거의 차별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과거의 차별이다.)

앞리카 대륙에서 크로마뇽인들은 두 번 탈출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첫번째는 10만 년전, 두번째는 4만 년전. 전기간을 통하여 크로마뇽인들은 앞리카 대륙에서 번성하였다. 반면 아시아로 유렆으로 이주한 크로마뇽인들의 형편은 썩 좋지 못 하였고, 그래서 1차 멸종후 2차 이주가 일어났다. 풍요하고 기후가 따뜻하여 먹을 거리, 입을 거리, 잘 거리 걱정이 없는 낙원같은 앞리카 대륙에 비하여; 거기서 쫓겨난 패배자들이 직면하게 된 유라시아 대륙은 사계절과 이름 모를 새로운 병충해에 시달려 먹을 거리, 입을 거리, 잘 거리 걱정에 영일이 없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열악한 지역이었다. 자연이 가져다 준 차별이었고, 오직 강자만이, 오직 지자만이, 오직 준비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이었다, 앞리카 사바나 초원의 여유만만하고 유유자적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그런 차별의 결과물이 문명의 개화이고, 해석학의 등장이고, 총기의 발달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상황이 역전되어 흑인 노예를 미대륙으로 수입하게 되는데, 분명히 지적하여야 할 것은 이 흑인 노예들이 앞리카에서는 자유인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거기서도 노예였고, 흑인인 노예주가 백인인 무역업자에게 자기 재산을 판 것이었을 뿐이다. (물론 같은 노예 신분이더라도 인종차가 커질수록 대접이 달라짐은 상식이다. 고대 헬라/로마의 백인 노예나 조선의 노비가 미국의 흑인 노예와 동일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켄디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하여 켄디의 반박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고, 결론은 모든 차별은 나름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헤겔 우파적 세계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흑인[제일]주의는 향후 수백 년간 흑인이 백인을 차별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여성[제일]주의는 향후 수천 년간 여자가 남자를 차별하여야 한다는 것이고,
전라도[제일]주의는 향후 수십 년간 전라도가 타지역을 차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차별이 정당/부당하다면, 결국 홊의 말대로 "인간은 인간에 대하여 이리(Homo homis lupus)"일 뿐이고, 그 결과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다. 여기서 뭘 더 바라겠는가?

켄디의 주장을  좀 더 고급스럽고 현학적으로 표현한 고대 지나의 문장이 있다.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也, 成之者性也." (「주역」, 계사상전)
(한 번 그늘졌다가 한 번 볕터가 됨을 일러 도라 하나니, 이를 이음이 선덕이요, 이를 이룸이 본성이니라.)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