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

 

2021.03.31

 

설훈과 민주당 의원 등 73명이 발의한 민주화유공자 예우법에 대해 같은 세대로 정말 창피하고 염치가 없어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아 이 법안에 대해 비판하는 것조차 망설였는데, 또 하나의 똥팔육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어 참다 못해 글을 쓰게 된다.

유명 유튜버와 업소녀라고 밝힌 여성과의 진실공방 과정에서 증거로 내보인 카톡 내용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탄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등장하여 파문이 일고 있다.

* 김난도 교수 관련한 내용은 차마 여기에 쓰지 못하니 독자 여러분들이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조국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뒷면에 나의 오랜 벗 란도쌤은 자신의 실패와 방황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젊은이에게 손을 내민다. 당장 내 딸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라는 한 줄 평을 썼다.

이 둘은 넉넉한 집안에 부족함 없이 살았고, 전두환과 노태우 아들의 병역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었다고 소문이 났던 석사장교 제도를 이용해 6개월 석사장교로 병역을 마쳤으며, 석연치 않은 과정으로 서울대 교수 자리를 꿰찬 것도 비슷하다. 지적 허영에 빠져 젊은이에게 지적 사기를 치고 젊은이의 앞날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하는데도 서로 마음이 맞았을 것이다. 조국은 트위터와 페북으로 온갖 정의로운 척 폼을 잡았고 김난도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으로 겉으로는 젊은이를 위로한다고 하면서 젊은이들이 자신을 존경하게 만드는데 골몰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둘은 똥팔육들의 전형이다.

물론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사람들이 모두 김난도나 조국과 같이 위선적이지는 않지만, 국회의원이나 제도 정치권에서 자리를 차지하거나 주변을 배회하는 586(똥팔육)들은 대부분 조국과 김난도와 같은 의식세계를 가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민주화유공자 예우법을 발의한 73명의 국회의원 역시 대부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고.

 

김난도 교수류의 인간들이 어떠한지, 그리고 이들이 사회에, 특히 젊은 층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2012년에 쓴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에세이는 젊은이에게 위로를 핑계로 당의정을 먹여 현실을 잊게 할 뿐이고 젊은이들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스스로 극복해 나가려는 지방대 출신 젊은이들이 쓴 책(‘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그 책을 소개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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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

 

2012.09.22

 

오늘은 책 한권을 소개할까 한다. 성공한 멘토들의 힐링과 위로로 넘치는 세상에서 어느 지방대(계명대) 출신(김도윤, 제갈현열)이 젊은 청춘들에게 퍼붓는 독설이다.

<날개가 없다 그래서 뛰는 거다>

나는 요즈음 유행하는 힐링과 위로를 주제로 하는 책과 행사들이 젊은이들의 도전과 열정을 북돋우기보다는 현실을 잊게 하는 당의정일 뿐이라는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딸들에게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류의 책들은 읽지 말 것이며, <청춘 콘서트>와 같은 행사에 가지도 말라고 당부한다. 20대는 위로받을 나이가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피하지 않으면서 온 몸으로 느끼며 정면으로 헤쳐 나가야 하고, 비록 실패와 좌절이 기다린다 하더라도 패기와 열정으로 도전할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많이 놀랐다. 유명 멘토들이 20대를 상대로 힐링이니 소통이니 하면서 젊은 청춘들이 듣기 좋은 소리로 자기는 존경받을 말들만 책에서, 콘서트에서 해대지만 정작 젊은이들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것에 내심 불편해 하던 차였다.

내가 이들에게 가장 불만인 것은 오늘의 현실이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돌리며 젊은 청춘들에게는 책임이 없는 듯이 하는 발언들이다. 적어도 우리세대(베이비 부머 세대)는 미국이 지원하는 밀가루와 우유로 점심을 때우긴 했지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에 대해 존경을 할지언정 원망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일제와 6.25, 4.195.16이라는 파란만장한 질곡의 역사를 살아온 것만으로도 존경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20대가 현재의 곤경이 그들의 아버지 세대인 우리와 그들의 할아버지 세대인 우리의 아버지들의 잘못이라고 하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내가 이들 멘토들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오늘의 현실이 설혹 우리와 우리의 아버지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젊은 청춘들이 주체적으로 현실을 돌파하는데 저런 말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20대는 인생의 오전 6시라는 말로 어설프게 위로하지 말라고 말한다. 오전 6시는 아직 새벽이지만 현실에서의 20대는 인생이 대부분 결정되는 시기인데 듣기 좋고 현실을 회피할 명분이나 제공하는 허튼 소리로 청춘들의 긴장을 풀어놓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은 학벌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다. 당신이 실패한 이유는 지방대여서가 아니라 지방대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며, 학벌도 또한 노력의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철저하게 자기를 돌아보고 냉정하게 현실을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내 딸이 과외를 하면서 시간당 고액의 과외비를 받는 것을 보고 요즈음 알바비가 시급 5천원인 것에 비해 들인 노력보다 고액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본인이 받는 과외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아빠는 현재의 노력만 보지 본인이 지금의 서비스(과외)를 제공할 수 있게 했던 과거(, , 대학)의 노력과 시간은 간과한다는 것이다. 조치훈은 바둑을 둘 때 목숨을 걸고 둔다고 했다. 지금의 학벌도 조치훈처럼 치열하게 공부했던 노력의 산물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젊은이들은 이것을 쿨하게 인정했고 나도 내 딸의 말을 인정했다. 이런 인정이 공평한 것이고 공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 이런 인정이 자기 현실의 책임을 다른 곳(남이나 사회)에 돌리지 않고 오롯이 자기 분발의 불쏘시개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분발의 결과가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되는 선순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서 20대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을 몇 가지 더 옮겨 놓는다. 아니 20대들에게 힐링과 위로라는 어설픈 언어유희로 존경만 받으려는 이 시대의 허위의 멘토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아무리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한다 해도 전쟁 같은 청춘의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 막연한 감동과 희망에만 기댈 게 아니라, 변화를 이루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막연한 긍정론은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기회를 빼앗고, 막연한 희망론은 현실에서 절망을 낳으며, 막연한 위로는 마음의 쉼을 줄지언정 나아감을 주지 못한다.>

<현실을 잊게 하는 당의정이 아니라 꿈을 이루려면 어떤 조건과 자격이 필요한지 냉정하게 말해주는 쓴소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