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류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4대 성인들의 가르침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이들의 가르침의 공통점은 대장로 힐렐의 백은율로 알려져 있는 규칙이다.
"너 자신에게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예수가 이것을 약간 변형시켜 황금률로 만들었지만, 실제 내용은 거기서 거기라고 본다. 황금률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백금률 또한 마찬가지이다.

차이점도 있다. 그 차이점은 솤라텟의 경우에 특히 질을 달리 한다.
• 공자: [네 아비 섬기듯이] 임금을 섬겨라
• 예수: [네 하느님 섬기듯이] 동포를 섬겨라
• 석가: [너 자신 섬기듯이] 정법(dharma)을 섬겨라
• 솤라텟: 진리를 좇으라

(※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이웃"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원어에는 plesion과 geitos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동포인 이웃, 후자는 지리적 이웃인데, 예수가 말하는 이웃은 당연히 전자이다.)

위 차이점 정리에서 보듯이, 솤라텟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분의 가르침은 결국 "처세술(處世術)"이다. 서점의 인생론/자기계발서/처세론 코너의 잡서들보다 훨씬 더 숭엄하고 고상하고 우아하다 할지라도, 따져보면 이 세상 혹은 저 세상에서 어떻게 눈치 보고 통박 굴리면서 살아남거나  죽을 것인가의 방편론일 뿐이다. 그에 비하여 솤라텟이 추구하는 바는 과감하다. 이 세상 혹은 저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보다 더 본질적이고 영원한 무엇을 찾아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요소가 다른 성인들에게서는 안 나타남은 아니나, 주안점이 다르다.

솤라텟의 제자로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유명하고, 알키비아뎃이 악명 높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제자는 데카릍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무협 소설의 클리쉐중 하나인 수백년 전에 좌화한 동굴속 전대 기인에게 배사지례를 행한 후 비급과 영단과 보검을 얻어 어마어마하게 높은 배분의 강호인으로서 출도함처럼, 데카릍은 솤라텟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진리만을 추구하라"는 회의심법을 이천 년을 격하여 물려 받았다.

그 결과 나오게 된 「방법 서설」(1637)   및 그 부록인 「기하학」이 현금의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은 가위 절대적이라고 여겨진다.

지구인들의 과학 문명은, 이 글을 쓰는 스맡폰이니 인터넽이니 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심지어 전등까지도, 맼쉘-헤비사읻 방정식의 결과물인데, 이 편미분 방정식들은 뉴톤의 미적분으로 연결되며, 뉴톤의 미적분은 데카릍의 직교 좌표계로 연결된다. 이게 처세술과 어찌 비교 가능하겠는가?

동서양의 운명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달라지게 되는가? 또한 흑백인의 운명은 결국 어디서 갈리게 되는가? 그들 모두 대수를 알고 있었고, 기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수와 기하를 결합시킨 해석학(analysis)은 서양 백인들의 창조물이니, 해석학의 창시자 데카릍이야말로 만악의 근원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을 수 있겠다, "Black Lootings Matter"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에게라면. 그들이 특히 망치와 몽둥이, 즉 전(前)데카릍적 유물, 를 선호함에 다 타당한 까닭이 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검증한다는 데카릍의 가르침대로라면, 바이든이 이겼다는 언론 보도도, 바이든이 '부정 선거'로 이겼다는 튀터의 주장도 지금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고 판단된다. 과연 트럼프는 기사회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설령 기사회생에 성공하더라도, 그 결과 케네디처럼 총탄 탄핵을 당하지는 않을 것인가? 지켜 볼 일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202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