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는 인간의 사고/욕망 등의 주체를 '개인' 으로 상정합니다.
 이때 개인주의의 뿌리내림은 근대화의 정체성 중 하나입니다.

 덕하 님의 규범의 '개체 선택론' 에 따르면
 개인주의에 대한 개체 수준의 선호가 근대화에 부수되는 정교한 근대사회 설계를 충분히 가능케 합니다.
 그 설계의 일례로 '인권' 을 들수있으며 규범의 '개체 선택론' 에 따라 인권의 근거 역시, '개인주의에 대한 개체 수준의 선호' 에 있습니다.

 저도의 추론으로라도 자신의 사고/욕망 등의 주체는 '자신' 에게 있으며
                                        타인의 사고/욕망 등의 주체는 '타인' 에게 있다는 인권의 개념을 개인주의로부터 별무리없이 이끌어낼수 있습니다.

 이 인권개념의 근거 역시, '개인주의에 대한 개체 수준의 선호' 에 있으며 소위, '자기결정권' 의 개념이자 근거이기도 합니다.



 한편 근대화가 실현된 현대 국가에서 성폭행은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로 규정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침해는
 '개인주의에 대한 개체 수준의 선호' 와 충돌하기에 개인주의가 뿌리내려진 현대 국가에서 개인들의
 '성폭행자 처벌에 대한 개체 수준의 선호' 는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개인주의에만 충실한 의미에서의 성폭행자 처벌은
 성폭행자에 대한 감정적 리벤지가 아닌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순수한 보호 차원입니다.

 개인주의에만 충실한 의미에서의 성폭행자 처벌의 근거는 개인의 사적인 명예훼손, 수치심 등에 있을것이 아니라
 개인주의가 뿌리내린 현대 국가에서 벌어진,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격퇴 및 순수한 보호 차원에 있어야만
 규범의 개체 선택론자들에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 cf. 괘씸죄의 근거는 개인주의에서 찾아볼수 없으며 따라서, 괘씸죄는 규범의 개체 선택론자들에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한편 기능론자들에게 성폭행자 처벌의 근거를 묻는다면 그들은 성폭행 근절효과 등의 합리적 추론을 그 근거로 삼을겁니다.
 기능론자들의 규범의 개체 선택론자들에 대한 일반의 노파심은 고맙습니다만 성폭행 근절효과 등의 합리적 추론을 근거로 삼는 주장은
 규범의 개체 선택론자들에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기능론자들은 '너는 왜 사니?' 라는 물음에 '가족을 위해서' 라는 류의 답변을 할것이며
 규범의 개체 선택론자들은 '가족이 사라지면 더이상 살 필요가 없겠네' 라는 극단적 비판을 가해 기능론자들을 당황케 할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가 자신이 아닌 가족이라는 기능론자들의 답변에
 규범의 개체 선택론자들은 기능론자들 기대만큼 감격하거나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드라마를 보면 대한민국 국민의 99.999%는 기능론자들인양 같습니다.
 물론 '가족을 위해서' 라는 류의 답변에 감정적으로 비난함에 대한 규범의 개체 선택론자들의 개체 수준의 선호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냥 기능론자들 기대만큼, 감격스럽거나 감동스럽지만 않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