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 이어,



'뭐지? 창녀인가?' 인스타그램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미 페이스북에서 창녀들에게 친구 신청을 여러 번 받아본 터였다. 어떤 여자는 <오빠, 모텔비는 내가 낼거니까 걱정마>라고 페이스북 자기 소개란에 적어놓고 있었다. "그래, 이 씨발년아. 모텔비를 네가 내는 대신에 장기를 가져가겠지."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들어오는 친구 신청들을 거절하곤 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의 그녀는 창녀가 아니었다. 비록 모든 사진이 젖꼭지만 가린 알 수 없는 속옷을 입은 채 풀 메이크업을 하고 찍은 사진이었지만 자기 소개란에 <유리의 일상이라고 적어놓고 있었고, 가장 최근 사진은 거대한 가슴을 앞세우며 입술을 내민 채 <봄이여 오라>라고 적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창녀가 아닌 관종이었던 것이다.


만약 그녀가 창녀였다면 나는 오히려 그녀를 존중 했을 것이다. 창녀로서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자신의 유방을 저렇게 거침없이 보여주는 것은 매우 훌륭한 노동 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 인스타그램 속 여자를 보고 내가 느끼는 감정은 역겨움 밖에 없었다. 저 씨발년은 분명히 '좋아요'를 받기 위해서 저렇게 젖꼭지만 가린 가슴을 하루에 하나씩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의도를 숨긴 채  <봄이여 오라같은 개소리만 적으면서, 마치 자기는 그 어떠한 의도도 없이 오로지 찾아오는 봄을 찬양하고, 신이 우리에게 이런 날씨를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기 위해 사진을 올린 것처럼 말하고 있다. '씨발, 창녀는 솔직하기라도 하지. 이 개 같은 년은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거짓말을 쳐 하고 있군. 차라리 씨발, <제 가슴 크죠? 좋아요 부탁드려요!> 라고 적었다면 난 그 솔직함에 이 여자를 존중 했을텐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나는 내 생각이 굉장히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유지하면 다가오는 5월 20일에 시행되는 <전국민을 위한 젠더 감수성 시험>에서 낙방할 것임이 틀림없었다. 2020년 국회는 전 국민이 젠더 감수성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매년 5월 20일에는 국민들이 적절한 수준의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진행 해야한다는 법안 역시 통과시켰다. 만약 이 시험에서 젠더 감수성이 70점 이하로 나오면, 그 사람은 100일 동안 정신병원에 들어가 약물치료 및 정신교육을 받아야 한다. 정부는 <젠더 감수성 부족은 에이즈와는 달리 질병이다> 라는 구호를 국민들에게 성공적으로 납득 시켰고, 2025년인 지금 대한민국은 <한층 더 평등한> 국가가 되어있다.


난 죽어도 병원에 들어가기 싫었다. 그 곳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을 보면 모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돌아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했다. 나는 공산당 지지자들이 주로 했던 자아비판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인스타그램 속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젖꼭지만 가린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다. 그 어떠한 의도도 없이 매우 순수하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유리의 일상이라는 자기 소개에 붙어 있는 하트모양을 보라하트는 영어로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녀는 매일 < 마음 혹은 가슴을 다해 일상을 살아가겠다라는 신념을 인스타그램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인스타그램  그녀는 오히려 10 여자 아이들의 롤모델이  사람이 아닐까저렇게 순수하게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 가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녀그녀야말로 주체적이며자주적이고아직도 남성들의 억압이 남아있는  한국사회를 < 나은 사회> 만들  있는 사람이다 정말 100% 확신한다.




이걸 남자가 썼다고 상상을 해보세요. 콱 참수시켜버리고 싶을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르죠. 여자들은 그래요. 텍스트를 접했을 때 글이 폭력적일수록 남성으로 인식되는 인간의 본성, 그런데 글쓴이가 여성일 때의 이 생경함. 이건 구조적인 폭력의 역사를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여성성이 주는 선물 같은 거예요. 이 글의 수위는 약해서 그걸 맛보기가 힘이 들지만 다른 잔혹한 묘사들을 보면 그래요.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