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studiocroissant.com/

스튜디오 크로아상 사업등록인은 여성으로 '글 기고, 영상 제작, 사진 촬영, 포스터 등 각종 이미지 제작과 관련하여 다양한 작업'을 하는 곳입니다. 이 페이지에 가면 카테고리 중 Diary가 있는데 이 곳은 유료등록해야만 글을 읽을 수 있어요. 소개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11살 때입니다. 저와 한 남자아이는 당번이 되어 교실에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 사타구니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팬티까지 다 벗고 말이죠.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마치 막 사정을 마친 성인 남자 마냥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낄낄거렸습니다. 그 나이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연령이 훨씬 높은 법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용해 남자아이를 골려주었죠. 제 사타구니 사이 벌려진 그 틈새에 -아니, 꼭 ‘제 것’일 필요는 없겠죠. 대체재가 

많은 상품이니까요- 남자들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을 전 일찍 깨달았습니다.


네, 꽤나 미안한 일입니다. 그 남자아이에게는 말이죠. 어린 그에게 제가 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줬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것이 좀 알고 싶네>에 나오는 교수님에 따르면, 어린 시절 성 트라우마를 겪은 남자는 커서 강간범이나 

살인범 혹은 강간과 살인을 동시에 하는 사람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살인범 혹은 강간범이 

이 사회에 태어나는 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안에는 악마가 살고 있어.” 저는 이 말을 부모님께 꽤나 자주 들었고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그건 오로지 해부가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곤충을 잡아 몸을 하나 하나 섬세하게 분해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정교하고 섬세한 생명체가 초월적 존재 없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인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지워본 적이 없습니다. 돼지나 소를 해체 해본 사람은 분명 이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인간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것들과 달리 ‘해체되지 않을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말도 안되게 느껴집니다.


네, 분명 제 안에는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이 악마를 다스리지 못하면 저는 분명히 사회적 악행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폭력, 음란, 자만… 저는 제가 모든 종교에서 ‘악’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제 자신’을 위한 행동입니다. 

글을 쓰면서 구독자님들을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분명 

매우 바람직한 일,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제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악마를 잠재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이제 다른 사람 앞에서 사타구니를 벌리는 대신 방에 

처박혀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스튜디오 크로아상을 구독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악마가 하나 더 추가되는 불상사를 막았으며, 그 악마가 

또 다른 강간범과 살인자를 만드는 것을 막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입니까. 그러니, 

망설이지 마세요. 망설이지 마시고 스튜디오 크로아상을 구독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시길 바랍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사회적 기업 -줄여서 <사기>라고 부르겠습니다-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인권이라는 말은 저에게 왠지 모를 혐오감을 주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못 할 말은 없다고 

배웠습니다. 인권과 한국 사회를 위해 스튜디오 크로아상을 구독해주십시오. 천국에 가실 겁니다.


<사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드림.



글쓴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어떤 시로 인해서였죠. 아빠를 잔인하게 칼로 찔러 죽이는 묘사가 나왔었나 여튼 그 
시를 보자마자 화자가 여자라고 생각하니 마치 한국 남성 판사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참수하는 장면을 보는 
것만큼이나 희열이 대단했었어요. 시인이 그토록 죽이고 싶었거나 죽여 버린 아빠는 분명 잔인한 가부장마인드로 
똘똘 뭉쳐서 딸을 평생 불행하게 만든 괴물이겠거니 짐작했었으니까요. (저희 친정아빠랑은 아무 상관이 없음 -.-) 
그 시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 

스튜디오 크로아상글의 주제는 온통 역설이에요. 일베에서 일베가 패륜적인 글을 쓰는 건 쉽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이 
금기를 초월한 풍자를 실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지나가다가 거지를 보고 사진 하나 찍어서 정의로운 척이나 
해 보자 하다가 더러운 '거지새끼'의 몰골에 역겨움을 감추지 못해 침을 뱉었다는 글은 일베에게는 쉬운 글이지만 
범인들에겐 역설이라는 도구로도 매우 실현하기 힘든 글쓰기 방식이죠. 흥미로운 건 일베가 자신의 글이 문학적 
허용이며 역설이라고 자신을 변호하면 솔직하지 못한 루저임을 방증할 뿐이지만 non일베 글쟁이는 똑같은 글을 
쓰고도 문학적 허용을 담보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왜 항상 있지 않고 더러 있냐면... 

이게 중요함. 

남성은 유구하게 이미 구조적인 폭력의 역사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non일베 남성글쟁이가 일베스러운 글을 써 놓고 
문학적 허용이라고 주장할 수가 없어요. 남성이 쓴 폭력적인 글은 문학적 장치를 빌어썼든 아니든 그냥 폭력적으로 
읽힐 뿐이에요. 이건 어떤 남성도 피해갈 수가 없어요. 그치만 그 패륜적인 글쓴이가 여성인 경우에는 이 문학적 
허용이나 역설, 풍자가 금방 수용이 됩니다. 말하자면 여자는 아무리 용 써봤자 폭력적으로 보이기가 힘이 들어요. 
눈치 없고 멍청한 사람들이나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이러면서 자신의 일화를 늘어놓을 뿐이죠. 역사를 이어온 유구하고 
구조적인 폭력의 규모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고작 자기가 아는 어떤 여자 타령하면서 반박이 된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은 
종종 눈에 띄긴 하지만요. 마치 경제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날아 들어온 파리격이랄까요. 

스튜디오 크로아상의 글은 분명 불편합니다. 글만 보면 그래요. 그치만 화자가 여성이 되어버리는 순간, 독자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되죠. 글의 폭력성은 그 자체로 남성성을 발산합니다. 그래서 보통 글을 읽으면 저거 남자가 쓴 거다하고 단정지어 버리죠. 
그런데 남자가 아닌 것! 이건 거의 평생 처음 맛보는 청량음료 같은 느낌이지요. 그렇다고 스튜디오 크로아상이 페미니스트냐. 
아니오. 그냥 스튜디오 크로아상일 뿐이에요. 가학적인 글로 얼마든지 남성 다수는 물론 여성 다수도 부들부들 떨게 만들어 
버리죠. 남자들을 열받게 하는 류의 글이라면야 머 보통 화자를 통해 '돈 없는 거지같은 새끼, 좆도 작아서 들어왔는지 도로 
기어나갔는지 알 수도 없는 멍청한 루저(-.-)'라고 묘사해 버리면 그럴 수 있겠죠. 그보다는 더 계급적인 역설을 늘어놓는 글의 
예가 영화 <기생충> 리뷰예요. 

난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했다. 특히 "저는 이렇게 가난하지만 긍정적이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SNS에 떠벌리는 새끼들은 칼로 찔러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를 

마주했다. 말하자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요즘 보기 드문 긍정성을 이렇게 보니 힐링이 됩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라는 댓글을 받고 싶어 쌍지랄을 떨어대던 내 모습을 SNS 가난뱅이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부터 나는 그런 저소득층을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역을 지나가면서 마주한 거지들 때문이었다. 

돈 없는 새끼들, 특히 나보다 못 사는 새끼들을 보면 내가 꽤나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앞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무료 급식소를 볼 수 있고, 그 안에는 노숙자들이 다발로 들어있다. 집도 

없는 새끼들이 살고는 싶은지, 밥을 먹겠다고 기다란 줄을 서서 '공짜 밥'을 기다린다. 나는 저렇게는 안 살아야지, 

만약에 저렇게 되어버리면 그냥 한강에 뛰어내려 죽어버려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곳을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던 중 두 명의 노숙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배가 너무 고파서 자기 차례를 기다릴 수도 없었는지, 

무료 급식소 앞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찌꺼기들을 입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게걸스러운지 인간이 아닌 한낱 짐승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저렇게 쓰레기 같이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거구나. 나는 항상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나야말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구나. 나는 나를 좀 더 사랑 해야겠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어때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 거지새끼들 역시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니체의 말은 옳았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 가난뱅이들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안도감과 행복감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동력이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집도 없고, 공짜 밥만 처먹는 거지들을 뒤로 하고 나는 CGV에 들어가 영화 <기생충>을 봤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영화관에 돈은 있다. 영화를 보니, 마음 속에 다른 거지 명이 떠올랐다. 바로 나의...


이 글은 아주 아주 양호한 편에 속합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의 글을 두고 인간 본성에 내재해 있는 아마도 보편적일 지도 
모를 악마성을 드러낸다고 말하는데 저는 처음에 이게 이해가 안 갔어요. 저 글을 보고 guilty pleasure를 느끼면 걍 나쁜 
인간이지 거기에 은밀한 보편성이 어디 있나 싶었죠. 그런데 다음과 같은 글을 봤을 때 뭔말인지 좀 알 것 같더라고요. 

to be continued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