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학 게시판
망설이지 마세요
11살 때입니다. 저와 한 남자아이는 당번이 되어 교실에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제 사타구니를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팬티까지 다 벗고 말이죠. 그는 한참 동안 멍하니, 마치 막 사정을 마친 성인 남자 마냥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낄낄거렸습니다. 그 나이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연령이 훨씬 높은 법입니다. 저는 그것을
이용해 남자아이를 골려주었죠. 제 사타구니 사이 벌려진 그 틈새에 -아니, 꼭 ‘제 것’일 필요는 없겠죠. 대체재가
많은 상품이니까요- 남자들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을 전 일찍 깨달았습니다.
네, 꽤나 미안한 일입니다. 그 남자아이에게는 말이죠. 어린 그에게 제가 성에 대한 트라우마를 줬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그것이 좀 알고 싶네>에 나오는 교수님에 따르면, 어린 시절 성 트라우마를 겪은 남자는 커서 강간범이나
살인범 혹은 강간과 살인을 동시에 하는 사람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살인범 혹은 강간범이
이 사회에 태어나는 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안에는 악마가 살고 있어.” 저는 이 말을 부모님께 꽤나 자주 들었고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그건 오로지 해부가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곤충을 잡아 몸을 하나 하나 섬세하게 분해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정교하고 섬세한 생명체가 초월적 존재 없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인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지워본 적이 없습니다. 돼지나 소를 해체 해본 사람은 분명 이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인간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것들과 달리 ‘해체되지 않을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끔은 말도 안되게 느껴집니다.
네, 분명 제 안에는 악마가 살고 있습니다. 이 악마를 다스리지 못하면 저는 분명히 사회적 악행을 행하게 될 것입니다.
폭력, 음란, 자만… 저는 제가 모든 종교에서 ‘악’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는 것은 오로지 ‘제 자신’을 위한 행동입니다.
글을 쓰면서 구독자님들을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고백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분명
매우 바람직한 일,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제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악마를 잠재워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이제 다른 사람 앞에서 사타구니를 벌리는 대신 방에
처박혀 글을 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스튜디오 크로아상을 구독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악마가 하나 더 추가되는 불상사를 막았으며, 그 악마가
또 다른 강간범과 살인자를 만드는 것을 막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입니까. 그러니,
망설이지 마세요. 망설이지 마시고 스튜디오 크로아상을 구독함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시길 바랍니다.
스튜디오 크로아상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사회적 기업 -줄여서 <사기>라고 부르겠습니다-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인권이라는 말은 저에게 왠지 모를 혐오감을 주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못 할 말은 없다고
배웠습니다. 인권과 한국 사회를 위해 스튜디오 크로아상을 구독해주십시오. 천국에 가실 겁니다.
<사기> 스튜디오 크로아상 드림.
난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했다. 특히 "저는 이렇게 가난하지만 긍정적이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라고 SNS에 떠벌리는 새끼들은 칼로 찔러서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를
마주했다. 말하자면, "정말 대단하시네요. 요즘 보기 드문 긍정성을 이렇게 보니 힐링이 됩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라는 댓글을 받고 싶어 쌍지랄을 떨어대던 내 모습을 SNS 가난뱅이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부터 나는 그런 저소득층을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다. 서울역을 지나가면서 마주한 거지들 때문이었다.
돈 없는 새끼들, 특히 나보다 못 사는 새끼들을 보면 내가 꽤나 잘 살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앞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무료 급식소를 볼 수 있고, 그 안에는 노숙자들이 다발로 들어있다. 집도
없는 새끼들이 살고는 싶은지, 밥을 먹겠다고 기다란 줄을 서서 '공짜 밥'을 기다린다. 나는 저렇게는 안 살아야지,
만약에 저렇게 되어버리면 그냥 한강에 뛰어내려 죽어버려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곳을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던 중 두 명의 노숙자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배가 너무 고파서 자기 차례를 기다릴 수도 없었는지,
무료 급식소 앞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찌꺼기들을 입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게걸스러운지 인간이 아닌 한낱 짐승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 저렇게 쓰레기 같이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거구나. 나는 항상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나야말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구나. 나는 나를 좀 더 사랑 해야겠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어때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 거지새끼들 역시 존재의 이유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니체의 말은 옳았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은 것이란 없다." 가난뱅이들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안도감과 행복감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최고의 동력이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다.
집도 없고, 공짜 밥만 처먹는 거지들을 뒤로 하고 나는 CGV에 들어가 영화 <기생충>을 봤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영화관에 갈 돈은 있다. 영화를 보니, 내 마음 속에 또 다른 거지 한 명이 떠올랐다. 바로 나의...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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