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유로 영어 조기 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영어 조기 교육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게다가 나는 극단적인 조기 교육이 좋다고 생각한다. 즉 갓난아기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아니 내 자식을 갓난아기 때부터 고생시키란 말인가?”라고 되물을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영어 공부는 고역이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한국어 공부는 전혀 고역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 사람은 한국어 공부를 아예 안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한국 사람은 자라면서 한국어를 그냥 알게 된다.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고 아버지가 미국 사람인 경우 그 자식은 자라면서 그냥 한국어와 영어를 알게 된다. 물론 평소에 어머니가 자식 앞에서 한국어를 하고 아버지가 자식 앞에서 영어를 한다면 말이다. 이것이 한쪽 극단이다. 다른 쪽 극단은 한국 사람이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고역의 과정이다. 한쪽 극단에서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전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된다. 다른 쪽 극단에서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엄청난 의식적 노력을 했음에도 원어민에 비하면 한심한 수준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영어 조기 교육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어차피 고등학생 나이가 되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

 

만약 엉터리로 영어 조기 교육을 한다면 거의 효과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영어 조기 교육”이 효과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엉터리 영어 조기 교육”이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3~4세 때쯤에 제대로 영어 조기 교육을 했어도 그 후 5년 동안 영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모두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영어 조기 교육 자체가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영어 조기 교육이 효과가 없을 수는 없다. 만약 제대로 영어 조기 교육을 해서 만 5세일 때 영어를 한국어에 버금갈 정도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이후에도 영어로 책을 읽거나 동영상(어린이용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조기 교육을 하지 않은 아이들과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다.

 

 

 

한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것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글을 조리 있게 쓰는 못하는 이유는 한국어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지 영어를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문제라면 한국어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에게 피아노나 바둑이나 수학을 가르치는 것도 문제란 말인가? 태어나서 10년 또는 20년 동안은 한국어만 가르치고 다른 것들은 전혀 가르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중국에 사는 조선족 같이 어렸을 적 환경 때문에 두 나라 말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사람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평범한 사람도 환경만 좋으면 두 나라 말 정도는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수학, 바둑, 피아노 등을 배운다고 한국어를 배울 뇌가 부족해지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영어를 배운다고 한국어를 배울 뇌가 부족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배우면 처음에는 두 언어가 약간을 헷갈리겠지만 그것은 처음에만 그럴 뿐이다. 어느 정도 배우게 되면 헷갈리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인간에게는 두 나라 말을 배울 잠재력이 있다.

 

 

 

영어를 언제 가르쳐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언어 학습에는 때가 있다. 만약 20세가 될 때까지 어떤 언어도 접하지 못하고 살면 이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언어를 배울 수 없다. 청각 장애인의 경우 이런 일이 상당히 많았다. 청각 장애인이 20세가 될 때까지 수화를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이전에는 흔했다. 그리고 여러 문화권에서는 그런 일이 여전히 흔하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가 아주 특이해서 자식을 지하실에 가두어 놓고 언어 환경을 완전히 박탈한다. 이럴 때에도 그 자식이 그런 상태로 20년 동안 살게 되면 이후에는 언어를 배울 수 없다.

 

모국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외국어의 경우에도 몇 살 때부터 배웠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몇 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는지가 그 사람의 영어 구사력과 상당한 상관 관계가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이에 미국에 온 사람들은 다른 미국 사람들과 영어 구사력이 사실상 같았다. 그리고 미국에 올 당시의 나이가 많을수록 영어 구사력이 떨어졌다. 모국어를 배우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시기가 중요하다는 점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진화 심리학은 선천론적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언어를 배우는 시기가 따로 있다”는 선천론적 주장 중 하나다.

 

 

 

인간은 갓난아기일 때부터 언어를 배우는 환경에서 진화했다. 그리고 어쨌든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언어 학습 능력이 떨어지게 생겨먹도록 진화했다. 이것은 진화한 인간 본성이다.

 

이런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아마 과거 우리 조상들이 진화했던 시기에는 외국어(사냥-채집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그냥 이 용어를 쓰자)를 접할 일이 사실상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외국어를 습득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져도 생존과 번식에 별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릴 때 언어를 배우는 데 쓴 언어 학습 기제를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에는 없애 버리고 그 뇌세포를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더 적응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구적으로 작동하는 언어 학습 기제가 아니라 일회용(?) 언어 학습 기제가 진화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영어 조기 교육의 빈부 격차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옳은 말이다. 원어민이 열 명 이하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가르치는 학원은 엄청나게 비싸다. 그리고 꽤 오래 전부터 부자들은 그런 곳에서 자식을 가르치고 있다.

 

영어 조기 교육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런 학원에서 몇 년 동안 꾸준히 영어를 배운 학생들과 영어 조기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학생들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연구를 본 적이 없다.

 

어쨌든 그런 학원은 부자들만 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아도 영어 조기 교육이 가능해졌다. 이제 DVD 플레이어만 있으면 된다. <뽀로로>를 비롯하여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의 영어 버전이 많이 있다. 100만 원만 있으면 DVD 플레이어와 그런 프로그램 영어판 DVD 수십 개를 살 수 있다.

 

소리만 들을 수 있는 CD에 비해 영상까지 볼 수 있는 DVD는 영어 조기 교육에 훨씬 더 쓸모가 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영상을 보면서 맥락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국어를 배울 때 아이들은 말을 듣고 그 말이 나온 맥락을 보면서 배운다.

 

 

 

나는 그런 영어 동영상을 매일 한 시간 이상 2년 정도 보여줄 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를 조사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쨌든 나는 그런 식으로 영어 조기 교육을 하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다.

 

아이가 한 시간 내내 집중해서 볼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아이가 모국어를 어떤 식으로 배우는지 생각해 보라. 어른들의 말에 항상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듣는 것이 아니다. 그냥 흘려 듣는 것 같은데도 아이는 무서운 속도로 모국어를 배운다.

 

 

 

의식적 집중과 무의식적 집중은 다르다. 우리가 멍한 상태에서 눈을 뜨고 있어도 뇌 속의 시각 처리 기제는 놀랍고도 빠른 속도로 시각 정보를 자동적으로 처리한다. 의식이 멍한 상태로 있다고 무의식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에서 하는 영어 공부는 의식적 집중이 필요하다. 반면 갓난아기 때부터 시작하는 모국어 학습은 학습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할 정도로 그냥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아이가 언어 환경에 충분히 노출되기만 하면 놀랍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언어 학습 기제가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나는 동영상을 통해 영어를 아이에게 충분히 노출시키기만 하면 아이가 한국어를 배우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영어를 배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

 

 

 

영어를 배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잘 설계된 언어 학습 기제가 해체되기 전에 영어를 아이에게 충분히 노출시켜서 자동적으로 영어를 학습하게 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중고등학생 나이가 되어서 힘겹게 의식적으로 영어를 배우는 방법이다. 전자는 효과도 좋고 아이가 고생하지도 않는다. 후자는 효과도 나쁘고 아이가 고생한다.

 

영어 조기 교육은 단지 아이가 영어를 잘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만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갓난아기 때부터 아이에게 영어를 충분히 노출시키면 아이는 거의 고생하지 않고 영어를 배울 수 있다. “아니 내 자식을 갓난아기 때부터 고생시키란 말인가?”라는 질문에는 “갓난아기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자식이 고생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말로 답하고 싶다.

 

 

 

<뽀로로>를 비롯한 온갖 어린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볼 때 영어판을 매일 보게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다. 만약 아이가 영어판이 아니라 한국어판을 보겠다고 떼를 쓴다면 아예 한국어판을 전혀 보여주지 않으면 며칠만 지나면 영어판을 재미있게 볼 것 같다.

 

 

 

나는 이 글에서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 연구에 바탕을 두고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촘스키는 일반인이 직접 읽기에는 너무 어렵다. 스티븐 핑커는 촘스키의 주장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 썼다.

 

『언어 본능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소소, 2004 6(초판 1)

 

The Language Instinct – How the Mind Creats Language, Steven Pinker, Perennial Classics, 2000(초판: 1994)

 

이 책의 경우에도 한국어 번역판에는 문제가 많다.

 

『언어 본능(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번역 비판 – 3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2Xi/26

 

 

 

진화 심리학자들은 촘스키를 매우 중시한다. 하지만 촘스키는 진화 심리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언어의 진화에 대해 촘스키와 핑커 사이에는 상당한 이견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들을 참조하라. 나는 이 논쟁에서 대체로 핑커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The Faculty of Language: What Is It, Who Has It, and How Did It Evolve?

Marc D. Hauser, Noam Chomsky, Tecumseh Fitch

SCIENCE VOL 29822 NOVEMBER 2002

http://www.chomsky.info/articles/20021122.pdf

 

The faculty of language: what’s special about it?

Steven Pinker, Ray Jackendoff

Cognition 95 (2005) 201–236

http://scholar.harvard.edu/pinker/files/2005_03_pinker_jackendoff.pdf

 

The evolution of the language faculty: Clarifications and implications

W. Tecumseh Fitch, Marc D. Hauser, Noam Chomsky

Cognition 97 (2005) 179–210

http://www.st-andrews.ac.uk/~wtsf/downloads/FitchHauserChomsky2005.pdf

 

The nature of the language faculty and its implications for evolution of language (Reply to Fitch, Hauser, and Chomsky)

Ray Jackendoff, Steven Pinker

Cognition 97 (2005) 211–22

http://pinker.wjh.harvard.edu/articles/papers/2005_09_Jackendoff_Pinker.pdf

 

 

 

이덕하

2012-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