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도 허락을 받지 않아서 죄송한데....음... 그런데 정말 재밌어요. 김치관 님이라는 분의 글입니다. 사실 다른 강성 제국주의국가들이 식민국가들에 엄청나게 잔인했던지라 일본과 비교하면 일본이 나아보이지 않을 수가 없긴 하겠지만 여튼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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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브로커들>

산업혁명 후 근대국가의 틀을 갖추고 제국주의 팽창에 나선 서구 열강들과 달리 일본은 근대화와 제국주의가 동시 진행되었고, 그 과정이 무서운 속도로 빨랐던 반면에, 유럽 제국주의 어느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지저분했다).

가령 일본은 국가 및 국민의 개념이나 범주조차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제국주의의 물결에 발을 담구었고, 오구마 에이지 (大熊英二)가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민족’의 개념 또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이 과연 단일민족인지 혼합민족인지에 대해서 식민지 시대 내내 열띤 논쟁을 이어갔다.

‘민족’개념은 결국 정치적/시대적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는(이용되는)데, 그 결과 일본제국주의는 어느 식민지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식민지민족과 피식민지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발상 (내선일체), 그리고 결혼 장려 등의 정책을 조선에서 펼치게 된다.

일본 식민지 기간 100만의 일본인이 조선반도에 살았다고 한다. 이는 20세기 식민지 정착민공동체 중 규모가 가장 큰 것 중 하나였다. 1880-90년대 간사이 출신 하층민들이 처음으로 조선에 유입된 이래, 1910년에 조선은 일본에 공식적으로 병합되나, 조선 거주 일본 식민지 정착민들은 - 유럽 식민 정부가 백인 정착민과 원주민을 상이한 법률 체계로 분리하여 통치한 것과 달리 – 패망하는 그 순간까지 조선인과 동일한 법률의 지배를 받게 된다.

또한 유럽 식민 도시들이 이문화 간의 뒤섞임을 철저히 통제하거나 차단하였던 반면, 조선인과 일본인은 서로의 공간을 끊임없이 들락날락거려 여타 식민지에서는 보기드믄 ‘잡거 (雑居) 식민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 거주 일본 정착민들은 총독부 체제, 그리고 일본제국주의 체제에서 불안한 중간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총독부에 대항하기도, 총독부와 함께 본국에 저항하기도 했으며, 특히 조선인 부르주아들은 그들에게 때로는 강력한 협업자이기도, 일본 ‘국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경쟁상대이기도 했다. 일본식민지에서도 계급 이익은 민족 이익에 우선했다.

일본 정착민들은 끊임없이 일본인들은 누구든지 ‘조선 땅에 들어오기만 하면 ‘국민’에서 ‘피식민 신민’이 되어버린다’고 불평을 하였고, 조선인에 대한 공식적/비공식적 분리와 차별이 이어지지 않는 이상 자신들도 조만간 ‘조선화’되어버릴 것이라는 근심에 시달렸다. 내선일체 정책은 그들의 이해관계에도 반하는 것이었다.*

우치다 준 (内田じゅん)의 <제국의 브로커들 (원제: Brokers of Empire: Japanese Settler Colonialism in Korea, 1876-1945)>은 이러한 중간자적 위치에 있던 일본인 정착민들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조선인과 일본정착민들은 끊임없이 협력과 저항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을 거부해가며 타협과 대결의 회색지대를 구축해 나갔다는 점을 보여주는 귀중한 책이다.

특히 조선인 부르주아 계급의 성숙과 함께 조선 부르주아들은 더 이상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그 경계 내에서의 권리 확장을 도모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일본인들 또한 조선인들이 민족 이익을 주장할 때 그것은 실제로는 제국 질서 내에서 본인들의 정치 경제적 권리 확장을 위해 주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푸념하였다.

이러한 복잡한 욕망과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조선인들 또한 실로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는 오늘날의 경직된 역사관에서는 전부 親日이라는 말 한마디로 평가절하될 행동들이었음은 물론이다.

우치다 준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고, <제국의 브로커>는 영문으로 2011년 출간되었다. 일본어 번역이 현재 진행중이라고 하니, 일본어판에 앞서 한글 번역이 이루어진 드문 경우이다.

역자 (한승동 전 한겨레 기자)는 번역과정에서 우치다 준 교수에게 확인 작업을 거쳤다고 하고, 번역은 훌륭해 보인다. 한가지 아쉬움은, 역자가 무려 20 페이지에 달하는 역자후기에서 저자의 책과 전혀 관계없는 - 반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 본인의 정치적 편향성을 여과없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는 이제는 미국이라는 제국 치하에서 (…) 3등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미국의 제국적 면모는 일제강점기 제국 일본의 그것과 닮았다’). 애초에 부제로 ‘일본 강점기’란 말을 넣은 것을 보고 역자의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 엿보였지만 이정도로 원문에 부당하게 개입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열심히 회색분자들에 대한 책을 번역하신 걸까, 나로서는 의문스러울 뿐이다.

*일본 정착민들은 조선인들을 끊임없이 ‘여보’라고 멸시적으로 부르고, 버스에서 조선인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등 조선인들과의 관계에서 생활속 차별화를 끊임없이 시도했다 (서구 식민지들과는 달리 정착민과 토착인의 공간이 원천적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관련 흥미로운 것은 조선인들이 일본본토를 방문했을 때 조선 거주 일본인들과 다르게 사람들이 갑자기 친절해지더라는 기록, 그리고 조선 식민지 출신 일본인 여성들이 ‘자유로운 영혼의 모던걸’이라는 편견 때문에 본국 남성들과 결혼하는데 애를 먹었다고 하는 기록들인데, 결국 일본정착민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일종의 sub-altern간의 차별화 시도 혹은 경계 설정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아메리카 혹은 알제리 식민지인들처럼 과격하지도 못했고, 식민지 운영에 대한 관여도도 지극히 낮았다. 종국에는 그들은 2등 국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데 실패하고 전후 귀국자 (引き揚げもの)로서의 멍에를 안고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