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본, 박상욱 님이라고 하는 분의 글인데 읽기에 좋아서 허락없이 퍼 옵니다. 좋은 글은 나눌수록 더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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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의 주고객층은 10-40대 여성이다.

우울과 불안으로 오는 그들을 치료하다보면, 이상하게 예상보다 잘 낫지 않을 때가 있는데,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는 양극성 장애임을 놓치고 있는 경우이고, 두번째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임을 놓치고 있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 초기에는 눈치 채기 어려울 수 있지만, 치료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단서를 찾아내기가 어렵지는 않다. 이때는 약물의 조정을 통해 치료방향을 쉽게 수정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상당 기간 면담을 하고 약을 처방해도 그녀의 우울과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환경에서는 그녀를 그렇게까지 괴롭힐만한 일을 찾을 수 없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렇게 힘든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만 한다. 이쯤되면 치료하는 사람도 조금씩 조바심과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내가 약을 잘못쓰고 있나, 내가 아직도 풋내기라 뭘 놓치고 있나...

우울과 불안을 유발하는 환경과 생각에 대해 계속 묻고 탐색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그녀는 늘 잘 모르겠다는 말로 한발 물러선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머뭇거리며 얘기한다. 사실은 그동안 말씀드리지 못한게 있어요, 말할까 말까 많이 고민하다가 말씀드려요, 라며 시작하는 얘기들. 결국 말하다가 눈물이 터져나오는 얘기들.

정신과 진료실이라는 은밀하고도 안전한 공간에서조차, 수개월의 라포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망설여야만 겨우 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것은 대부분 성폭력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피해에 대한 대응을 이미 포기한 채로, 또는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살 당한 채로 병원에 온다. 그러고도 한참을 고민한다. 저 자리에 앉아있는 저 남자 사람은 내 얘기를 듣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에서조차 또 다시 나의 `힘들어할 자격`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면 어떡하나..등등.

성폭력 문제의 핵심은 2차 피해에 있다. PTSD의 치료는, '그 일이 이미 지나간 일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은 안전하다는 것'을 환자가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이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안전하다는 말이 모두 거짓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거짓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환자가 거짓이라고 느낀다. 피해자가 피해를 호소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들, 성폭력 사건이 이슈화 되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 의심의 눈초리, 인격적 모독, 온갖 옐로 저널리즘. 그들은 그것을 모두 학습한다. 아,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그래서 유명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그 사건 당사자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가해`가 된다. 조롱과 멸시와 의심으로 인해, 다시 한번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며 무너진다. 그들에게 그 일은 지나간 일이 아니게 되고, 세상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곳이 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이 병이 나을 수 있을까? (내가 풋내기여서 낫지 않은 게 아ㄴ...)

최근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해 식자입네 하는 남성들이 그들의 성인지 감수성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공공연히 2차 가해를 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화가 난다. 남자들은 그냥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그냥 좀 닥치고 있어야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냥 아무 말도 안하면 된다. 피해자에 대한 의심이 스멀스멀 들고 입이 근질거려도 그냥 참으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누군가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인간이 될 수 있다.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남성인 내가 진료를 하다가 남성을 혐오하게 될 정도로 많다. 딸을 낳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다. 여성들에게 성폭력은 말 그대로 일상이다.

솔직히 나도 개원하여 여성환자들을 주로 보게 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정말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직업적 간접경험을 통해 간신히 알게 된 것이다.

여성이 인지하는 이 세상은 남성이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다. 언제 어디서 재규어가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아마존 정글이다. 이걸 이해해야 한다.

그럼 재규어의 씨를 말려야 하나? 나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재규어의 냄새를 맡으면 멍멍 짓는 바둑이가 되어주면 좋을 것 같다. 다구리엔 장사가 없다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특히 수컷 바둑이가 필요하다(...)

마지막 한 가지, 재규어가 달려들어 물어 뜯어야만 상처가 아니다. 노려보는 재규어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트라우마는 온다. 또한 재규어보고 놀란 가슴 고양이만 보고도 놀라고 힝들어 할 수 있다. 자신의 문제가 사소한 것 같아서, 스스로가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되어서 냉가슴인 모든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아픈 일을 겪었기에, 아플만 하니까 아픈 것입니다.

ps. 자살보도 지침이 마련되었듯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보도지침도 마련되기를 바란다.

"Somewhere unwritten poems wait, like lonely lakes not seen by any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