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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가면 나 정말 잘 할께요정말 반성 많이 하고 있어요면회 좀 자주 와 주세요.”

 

정식이는 애걸복걸하고 있다하지만 녀석에게 속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미덥지가 않다소년원에 오기 전에도 몇 번이나 연락해서 제발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매정하게 연락을 끊었던 녀석갑자기 소년원이라면서 연락이 온다면회를 와달라는 부탁이었다그래서 막상 면회 와서 보면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그다지 영리하지 않아 앞뒤조차 안 맞는 거짓말들녀석의 거짓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학부 때부터 아동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대학원에 등록하면서 정식으로 상담실장 직을 맡게 되었다교수님의 연구실에서도 근무했지만 실제로는 아동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원장님의 제안으로 제법 아담한 상담실을 만들고 정식으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아이들과 가슴으로 부대끼면 내 슬픔과 외로움도 조금은 달래지곤 했다.

 

정식이는 그 아동복지시설에서 제일가는 말썽꾸러기다일 년에 몇 번이나 가출을 하고 가출할 때마다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금품을 빼앗다가 경찰에 잡히곤 한다예전에는 나이가 어려서 훈방이 되었지만 올 해에 만14살이 되어서 형사 처벌 대상자가 되어서 소년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수감된 것이다.

 

가출해 있을 때에는 몇 번이나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연락을 해도 연락 한 번 안한다그런데 소년원에 들어가니까 정성들여 편지를 보낸다. “저 형이 정말 보고 싶어요한번 와주시면 안 되나요?” 또박 또박 볼펜으로 눌러 쓴 편지를 보면서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이번에는 고생 좀 하게 아예 모른 척 할까그러나 어릴 때부터 보아온 녀석의 애원을 뿌리 칠 수가 없어서 이렇게 찾아온다하지만 올 때마다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하여 거짓말을 늘어놓는 정식이나는 물끄러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본다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제법 잘 생겼다그러나 눈썹은 늘 찌푸려져 있고 이쪽 저쪽으로 눈동자는 바삐 움직인다이 아이가 찾는 것은 면접할 때 구내 매점에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김밥과 라면이다그리고 휴지나 세면도구를 넣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일주일에 한번은 와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 너한테 지친다한번 두 번이라야 말이지이제는 다시 면회 못 올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김밥을 먹든 녀석이 고개를 숙인다빠르게 움직이던 젓가락이 멈추고 녀석은 가만히 컵라면을 바라보고 있다그 위로 굵은 눈물이 떨어진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녀석이 이야기 한다.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안 오셔도 괜찮아요.”

 

처음 정식이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여섯 살 때 아버지가 버리고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고 말하고는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이 아이는 영아 시설에서 있다가 몇 군데의 시설을 거쳐 내가 봉사하던 곳으로 왔다.

그때 받은 상처는 너무나 깊게 패여서 이 아이의 마음의 몇몇 부분은 이미 죽어버려서 기능을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정식이는 항상 시끄럽고 웃고 장난을 친다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아이다그러나 이 아이의 장난과 웃음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것은 울음소리와 슬픔의 몸부림이다웃는 표정 밑으로 깊은 상처가 있고 그 상처 너머로 검붉은 피가 배여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정식이의 그 깊은 상처를 똑똑히 본 날을 기억한다자원봉사를 하던 사무실 문을 야단스럽게 열어 젖히고 들어와서는 전화기를 발견하자 갑자기 수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누른다.

정식아뭐 하는 거야어디 전화를 걸어그러자 녀석은 천연덕스럽게 답한다형아나 아버지한테 전화 거는 거야걸어도 되지순간 말문이 막혔다그저 물끄러미 녀석이 하는 짓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빠야나야난 잘 지내고 있어이번 주에는 데리러 올 거지나 착한 아이가 됐어선생님말 정말 잘 듣고 있어갑자기 나를 바라본다형아,그지나 착하지그래아빠알았어기다리고 있을께토요일 봐그러고는 수화기를 놓는다멍하게 녀석의 행동을 바라본다고개를 들고 나를 보더니 갑자기 웃으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아버지가 데리러 온대토요일진짜 데리러 온대나 이제 여기서 가는 거야형아 보고 싶을 거야.

정식이의 병적인 거짓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늘 웃고 심한 장난을 치다가 이곳을 찾는 대학생형이나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면 나오는 대로 거짓말을 지어내는 정식이의 하루 하루....... 녀석은 자신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고 깊은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다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자기가 견디며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그러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 없었던 거다정식이의 거짓말을 보면서 나도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거짓말 들을 때마다 나는 녀석의 손을 꼭 잡는다그러면 녀석의 아픔이 내 손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든다녀석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욱씬 거리는 동통을 견뎌야 한다. 이 아이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모르니까.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상담실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한 보육사가 호들갑을 떨며 뛰어 들어온다.

선생님정식이가 없어졌어요아침부터 보이지가 않아요.”

보육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온 동네를 다 뒤지고 다니면서 녀석을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다할 수 없이 다시 시설로 와서 녀석의 행적을 쫓는다다른 아이가 녀석이 옥상으로 올라가던 것을 얼핏 봤다고 했다옥상거기 뭐가 있다고거기 있는 녀석이 밥도 안먹으러 온다고배 고픈 것을 못참는 아이가옥상으로 한걸음에 달려 올라간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 앞에는 못쓰는 이불이 한 가득 쌓여있다먼지와 범벅이 된 이불은 나중에 고물상이 오면 건네 줄 물건들이다옥상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는 순간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이불 속이다이불을 정신 없이 헤쳐 보니 녀석은 땀투성이가 되어 이불 속에서 자고 있었다얼굴은 하루 종일 울었는지 먼지와 눈물과 땀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녀석은 눈을 뜨고 나를 보더니 마구 울며 이불 더미 속으로 파고 든다아무리 불러도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이불을 파 헤치고 녀석의 다리를 당겨 억지로 안고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11살이 된 아이가 4살짜리 아이처럼 팔다리로 내 몸를 꼭 조르며 매달렸다맞붙은 가슴 사이에서 녀석의 상처에서 흐르는 핏줄기가 날카로운 유리조각결정이 되어 파고든다시리고 아프다그 아픔이 다리 끝까지 저려와 걸을 수가 없다. 한 층을 내려올 때마다 벽에 기대며 쉬어야 한다. 녀석은 아직도 고개를 파묻고 흐느끼고 있다. 그래.... 그게 낫지..... 억지로 웃는 거 보다 훨씬 낫지. 다시 천천히 발을 움직여 녀석을 안고 내려간다.

 

 

면회실이 갑자기 몹시도 춥게 느껴졌다내가 꼭 정식이의 나이였던 그해 겨울처럼.

 

나 역시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랐다어머니가 계셨지만 형편상 도저히 나를 키우실 수가 없어 친지분이 운영하시는 아동복지시설에 나를 맡기시고 멀리 떠나셨기 때문이다매일매일 느껴야 했던 그리움과 외로움은 얼음으로 만든 칼이 되어 가슴을 파고 들었다너무나 고통스러워 두달 간은 말조차 할 수 없었다아이들은 다소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나를 괴롭히고 때렸다그러나 그런 육체적 고통은 아무래도 좋았다가슴속부터 저려오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너무 아프니까 눈물조차 나오지가 않았다그저 멍하니 세상과 나를 바라보면서 고통이 멈추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정식이 나이 또래인 중3때 가출을 했고 막연한 절망감을 안은 채 기차를 탔다이게 내 삶이의 마지막 여행이야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그 기차는 수원행이었다마지막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던 단칸방이 보고 싶어서였다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집을 찾아 갔을 때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문은 잠겨 있었다집 앞에서 머뭇거리며 벽 앞에 주저 않았다추위와 굶주림으로 정신이 아득할 즈음이었다.

누구니왜 우리 집 문 앞에 있는 거야?” 어떤 아주머니의 말이 귀에 들린다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성진이 아니니혹시 성진이 아니야?”

마침 장보러 가셨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돌아오는 길이었다아주머니는 다행스럽게 나를 알아보았다어머니와 그 집에서 3년을 사는 동안 나를 무척 귀여워 해주셨던 아주머니였다늘 책을 읽고 이것 저것 아는 것이 많은 내가 너무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던 아주머니자기 둘째 딸이 살아 있으면 딱 내 나이라고 말씀하시던 아주머니내가 친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그 아주머니얼굴은 하나도 변하지 않아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얼른 집에 들어가자며 꽁꽁 언 손을 잡아끄시는데 너무나 배가 고팠던 나는 못이기는 척 따라 들어갔다아줌마는 들어가자마자 밥상을 차리고 먹으라고 권한다사양조차 하지 않고 허겁지겁 입에 밥을 넣었다두 그릇을 정신없이 먹은 후에야 제 정신이 들어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어떻게 살았냐고 묻고 나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한다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다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참아 보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어느새 아주머니도 같이 울고 있었다아주머니는 울다가 내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렸다아주머니의 거친 손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 영원히 잡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밤늦게 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아줌마는 다음 날 대구 가는 기차 편으로 내려가라고 타일렀다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주머니는 역까지 바래다주었다눈물을 글썽이며 아주머니와 헤어지는데 아주머니는 봉투하나를 쥐어 주었다기차에서 열어보니 편지와 통장과 도장이 들어있었다통장에는 당시로서는 제법 큰 돈이 들어 있었다내가 잠든 사이에 편지를 쓰신 모양이다편지에는 함께 살았을 때의 내 모습에 대한 추억과 몇 마디 당부가 적혀 있었다마지막 몇 구절은 아직도 기억한다.

 

내게도 말 못할 슬픔들이 정말 많단다하지만 살아간다는 것은 슬픔에지지 않는 것이란다만일 그랬다면 나는 여태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거란다.슬픔에지지 말아라....

 

그 당부와 달리 나는 여러 번 슬픔에 졌고 다시는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당부의 말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어떤 때에는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아무도 쳐다 보지 않고 내 속의 슬픔만을 바라보며 이 슬픔만이 내가 가진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그 때 내손을 잡아 주던 아주머니의 거칠면서 따뜻한 손그 손처럼 다시 한번 누군가 내 손을 잡아 준다면....... 하지만 혼자 일어나야 했다그리고는 세상과 나 사이에 담을 쌓곤 했다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여전히 그 거칠면서도 따뜻한 손은 나를 잡고 있었다내가 알지 못했을 뿐그래서 결국 일어 났고 하루 하루를 살아올 수 있었다그 손은 차가운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는지도 모른다.

 

알았다 이놈아. . 내가 어떻게 안오겠냐다음 주에 또 올 테니 라면먹자?”

 

녀석의 손을 잡으면서 말하니 고개를 들고 금방 웃는다이 웃음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지금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 한다는 것녀석이 내민 손을 힘껏 잡아 주어야 한다는 것.

그 해 겨울추위에 떨던 한 아이의 손을 잡아주셨던 어느 아주머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