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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네팔을 여행하고 있었다. 


인도의 델리에서 출발해, 리쉬케쉬에 주로 머물다, 반바사에서 네팔 국경을 넘었다. 포카라에 며칠 머물며 안나푸르나 주변 을 산행한 후 에베레스트 쪽을 여행하려고 이른 아침 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 커투만두행 버스를 기다리는 승복차림의 여자 두 명이 있었다. 내가 신고있는 고무신을 보았는지 한국인이냐고 인사를 걸어온다. 수인사를 하고 버스가 와서 앞뒤자리에 앉으니 버스가 출발한다.


그 여인네들은 한국에서 온 성지순례 중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여승들이었다. 그들은 인도에서 6개월 머물다 포카라 구경을 한 후 마지막 목적지인 카투만두로 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카투만두에서만 머물 예정이었고 나는 카투만두에서 나갈곳(Nagarkot)행 버스가 있으면 출발하고 차가 떨어졌으면 일박 후 다음날 떠날 계획이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린 후 함께 택시를 타고 타멜로 갔다. 미리 정해 둔 조용한 곳에 정원이 호젓한 게스트 하우스에 그들은 여장을 풀었고, 나는 거기서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가 떨어졌으면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했고 그들은 나에게 여행후 카투만두로 돌아오면 그곳에 와서 묵으라고 청했다. 그 중 한 여승은 살면서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돌아온 후 자기들에게 상담하라, 그러면 자기들이 깨달음을 주겠노라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 하였다. 


나는 그날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나갈곳에서 멀리 에베레스트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로 보이는 치사파니까지 며칠간 도보로 여행한 후 카투만두로 돌아와 여승들이 묵고 있는 타멜의 게스트 하우스로 찾아가 방을 하나 잡았다. 마침 그들은 방에 있었다. 우리는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3층 복도 끝에 있는 베란다에 앉아 그녀들이 방에서 끓여온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제가 여행 이야기로 시작해 내 신상 얘기를 거쳐 불교로 넘어갔다. 나는 여태껏 여승과 긴 시간을 진지하게 대화를 한 적이 없어서 여승에 대해 일말의 신비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여승이 됐는지 물었다. 사랑의 실패나 가정문제와 같은 상투적인 대답을 기대하며...


“인생의 높은 진리를 찾기 위해 수행의 길을 택했지요,” 그들의 대답은 단호하고 확신에 찼다. 


“스님이 안 되면 인생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을까요?” 내가 되물었다.


“꾸준히 수행에 정진해도 될까 말까 하니까요”


“그러면 언제까지 수행해야 하나요? 아직도 진리에 도달하려면 멀었나요?”


“이젠 어느 정도 도달했지만 수행을 게을리 하면 다시 멀어질 수도 있지요.”


“아! 그런가요. 근데 모든 사람이 다 스님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농사도 짓고 집도 짓고 옷도 만들고... 생존이 해결돼야 공부도 하고 수행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산속에서 도만 닦는다면 누가 다 먹여 살리지요? 도는 일을 하면서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런 일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많으니까요. 누구든 다 먹고는 살지 않습니까. 농사 같은 일보다 더 중요한 게 인간의 가장 큰 고통, 생로병사를 해결하는 일 아닙니까. 인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그런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죠.” 


“흠... 그러면 스님들이 인류의 생로병사를 해결했나요?”


“..... 글쎄요. 해결할 수는 없지만, 스님들이 없었다면 중생들의 삶이 더 힘들겠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중생들이 밥만 먹고 아무 생각 없이 산다고 생각하시나요? 스님이나 도인들만 도를 닦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종교나 종교인들에 의존하는 중생들도 없진 않지만... 이런 말을 하면 불쾌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종교인들을 사회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계층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생들은 종교나 종교인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종교인들은 중생들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으니까요.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도를 닦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오히려 그래야 진정한 중생의 애환과 고통, 그리고  삶의 의미를 더 잘 깨닫지 않을까요?”


마치 내가 스님들에게 설법을 하는 양 말이 좀 길어졌다.


이어지는 여승들의 설법도 길었지만 요점은, 인간이 생로병사의 본원적 고통에 시달린다면, 덧없는 이승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하찮은 것이어서 수행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의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능력적으로, 시간적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스님들이 먼저 깨달은 후 중생을 인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대화가 한동안 계속 됐지만 수도승들이 수행을 통해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고 믿는 엘리트의식으로 뭉친 여승과, 삶의 가장 치열한 부분을 벗어나서는 진정한 도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초대승적 관점의 나 사이에 합일점은 별로 존재하지 않아보였다.


나는 델리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기에 다음날 인도로 향했고, 여승들은 카투만두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네팔에서 만난 그 여승들, 지금쯤 화하중생의 도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