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는  고노 담화를 근거로 위안부 강제연행에  일본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기정 사실화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일본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고노는 있지도 않은 강제연행을 인정하는 표현을 써서 한일관계를 파탄 낸 역적으로 불리는 게  일본사회의  현실임을 많은 한국인들은 알지 못한다.

일본 사회에서 고노 담화가 나오게 된 배경을 좀 살필 필요가 있다. 이 위안부라는  다이나마이트에 불을 붙인 주체는 일본의 좌파와 그 좌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아사히 신문이었다. 특히 요시다 세이지라는  인물이 자신이 제주도에서 일본군과 같이 조선인 여인들을 사냥하듯 납치를 해 종군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증언을 했고 그 내용으로 책까지 냈 적이 있는데 이 책이 아사히 신문에 의해 뒤늦게  주목을 받으면서 일본에서는 전쟁범죄에 대한 반성론이 불같이 일었고 한국에서는 일본사회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책임을 느낀 일본 정부는 자체 조사를 수행하였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노담화이다.

그런데 이 고노담화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았다.  일본 정부 자체 조사에서도 강제연행을 입증 할 공식적인 문서는 나오지 않았고 나오는건 오로지 증언뿐이었다.이러한 조사 결과를 한국정부에 알리자 한국 정부가 격렬히 항의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말았고 그 뒤에 나온 최종 담화문에 국가의 직접적 개입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문구를 넣었으나 당시의 관방부장관인 이시하라 노부오는 " 한국 정부가 국가의 직접 개입이 없었다면 한국내의 격렬한 반일감정을 잠재울 수없다 그러니 배상에 대한 문제도 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체 요구하지 않을 테니 국가의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해달라라는 요청이 있었다 " 라고 증언했다.  이것에 대한 진실은 나로서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자체조사에서 일본정부가 군에 의한 강제 연행에 개입했다는  직접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또 고노담화의 내용에 대해  반대하는 내각의 분위가 있었던 점 그리고 당시의 관방부장관인 이시하라 노부오의 한국 정부의 요청에 관한 증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위안부 강제 연행의 결정적 증거라 불리워진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은 나중에 완벽한 거짓말로 드러나고 만다. 지바대학의 하타 이쿠히코 교수가 제주도에 가 자체 조사를 해서 사실무근이라는 걸 확인을 하였고 특히 제주도 지역신문인 제주일보가 자체조사를 단행해 1989년 8월 14일 그런 사실은 없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을 했다. 이런 사실이 있는데도 아시히는 알면서 그런 건지 모르고 그런건지 요시다 세이지를 밀어 붙였고 나중에 일본사회에서 아사히가 매국노 신문으로 전국적으로 매도를 당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일본 사회 좌파 내부에서도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은 다 거짓임을 알고 있지만 발설 해선 안되는 금기 같은 거로 몇십년 동안 그냥저냥 흘러가다 아사히신문이 2014년 9월 13일 칼럼에서 공식적으로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부정하는 사죄문을 올림으로써  일세를 풍미했던 요시다 세이지의 강제연행의 신화는 소멸을 맛보게 되었다. 이에 격렬한 비판에 직면한 아시히 신문은 사장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소동이 있었고 그러지 않아도 영향력을 잃어가던 일본 좌파들이  더욱더  힘을 잃게 되는 기폭제가 되고 만다.

  고노담화도 일본 정부에 의해 국가가 직접적인 개입을 했다는 부분은 공식적으로 철회를 한 상태이며  고노담화는 이미 사문화된 법조문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일본사회에서 적어도 위안부에 대한 강제연행에  국가의 직접적 관여를 인정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서도  이에 대한 연구가 많아져서 이 위안부에 대한 실체가 상당히 밝혀진 상태인데  이영훈 교수등이 국가 권력에 의한 야만적 강제연행은 그야말로 신화임을 연구로 밝히고 있다.특히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는 자산이 쓴 책의 내용때문에 감옥에 갈 처지에 놓이게 되기도 했다. 학자가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공적인 영역에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야하는 미개한 한국 사회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박유하는  무죄가 되었고  이영훈의 책 반일 종족주의는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 보면서 절망을 하기엔 좀 이르지 않나 한다.

주위의 지인들과 이 위안부에 관해 얘기를 해 보니까 의외로 위안부가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어 성노예화되었다라는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확실히 줄었다. 위안부와 정신대조차 구별을 못하던 시절도 있었던 걸 생각하면 한국사회의 집단 지성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다.

이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서 내가 한국사회에 만연한 반일에 대해 비판을 하던 십여년전과는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걸 알고 스스로가 놀라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친일 매국노라며 쌍욕을 퍼붓고 인연을 끊은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나에게 자신이 공부가 부족했다며 사과를 하는 모습은 예전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그림이었다. 그때는 우리가 배운 일제 식민지 역사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언급만 해도 술상을 엎고 쌍욕을 퍼붓는 친구나 지인들이 대부분이있는데 그런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진실을 위해 자신의 존재가치 전부를 던지는 박유하나 이영훈 교수같이 이들의 희생의 덕이리라.

말이 좀 옆길로 샜는데 본론으로 돌아 가자.

한국인들이 위안부 강제 연행에 일본 국가의 개입을  공식화 했다는 이유로 금과옥조로 떠 받들지만 고노담화는 이미 일본사회 그 어디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사문화된 법조문같은 존재이다. 적어도 일본 사회에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