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평등한지,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경우의 수는 다음과 같다.
1. 남녀는 평등하며, 고로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x, +y)
2. 남녀는 불평등하나,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x, +y)
3. 남녀는 불평등하며, 고로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 (-x, -y)
4. 남녀는 평등하나,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x, -y)
     4-1. 남자가 이 말을 할 때 (+x, -y, +z) 
     4-2. 여자가 이 말을 할 때 (+x, -y, -z)

  (1)은 이해하기 쉽다. 맹자의 비유대로, 남녀 차이가 있다고 해봐야 이오십보 소백보(以五十步 笑百步)일 뿐이라고 볼 수 있다. 고전적 여성주의자들의 주장도 이와 같을 것이다.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것이다.

  (2)는 이상하다. 아릿토텔렛의「니코마콧 윤리학」 이래의 서양 철학의 정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접함"이 아니므로.

  (3)은 전통적인 남녀관이다. 동서고금에 보편적인 것이며, 아마도 선사시대의 모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불평등의 방향은 역사시대 부계 사회의 그것과 반대이었겠지만.

  (4)는 이 말이 누구 입에서 발화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런 부가 조건은 이미 인식론적 오류(종족의 우상)를 담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일반적으로 "A but B"라고 하면 A에 강조가 있는 게 아니라 B에 강조가 있는 것이므로, "다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후건에만 주의하면 된다. 이 후건은 Sein이 아니라 Sollen이다. Sollen에 대한 합의란 매우 어려우므로, 벌써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준다. 과연 이 말이 남자 입에서 나올 때의 의미와 여자 입에서 나올 때의 의미는 정반대이다. 남자가 이 말을 할 때는 "기여도가 다르니 여자에게 남자와 같은 봉급을 줄 수 없다"는 말이 되고, 여자가 이 말을 할 때는 "기여도가 달라도 남자와 같은 봉급을 달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 음미해 보아야 할 추가 사항이 있다. 저렇게 주겠다는 사람은 거의 항상 남자 내지 남자같은 여자("흉자"라고 한다더라.)이고, 이렇게 받겠다는 사람은 거의 항상 여자이다. 남자가 "내가 일을 적게 하기는 하나, 똑같은 봉급을 받겠다"고 나서는 경우란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이로써 알 수 있는 사항은, 남자가 일차원적(나-너)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 여자는 영차원적(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자는 오로지 '제 소리'만 해댄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할 수 없는 소이중 하나이겠다.  주객의 미분화(未分化)가 만일 없다면, 어떻게 이물질을 열 달이나 회임한 채 견딜 수 있을까? 임신중의 면역적 내성 증가가 생리 현상이듯이, 여자들의 영차원도 알고보면 무위자연(無爲自然)인 셈이다.

  용수(龍樹, Nāgārjuna)라면 아마도 중관(中觀)의 자리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같은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요, 같으면서 다른 것도 아니요,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것도 아니니라."  "같잖고, 다르잖고, 같고도 다르잖고, 같잖고 다르잖고도 아니고."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용수의 말이 먹힌 적은 없다.

2020-06-01

덧글: "마음의 이론"에서는 각각 2차 의향성(second order intentionality), 1차( first order) 의향성이라고 부른다.